예멘 후티 반군의 이스라엘 공항 탄도 미사일 공격을 명분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점령을 공식화했다. 5일(현지시간) A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안보 내각은 하마스를 상대로 가자 지구를 완전히 장악하고 구호 물자까지 통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군사 작전명 ‘기디온의 전차’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이스라엘 공영 방송 칸은 이번 군사 작전이 수개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초기에는 가자 지구 내 특정 지역에 집중적인 군사 활동이 전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긴급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번 작전은 과거의 단발성 기습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하고 지속적인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더 많은 주민들이 가자 지구 남부 지역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차주 중동 방문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이 같은 중대 발표를 감행한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스티븐 위트코프 미국 중동 특사는 “이스라엘은 주권 국가로서 스스로의 안보를 위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인질 석방과 휴전 협상에 긍정적인 진전이 있기를 희망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방문을 앞두고 하마스를 정치적으로 최대한 압박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로 가자 지구 점령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는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공포의 공포
현재 이스라엘군은 이미 가자 지구의 약 3분의 1을 점령하고, 해당 지역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뒤 감시 초소와 망루를 촘촘히 설치하여 철저한 보안 구역으로 통제하고 있다.
‘기디온의 전차’ 작전은 여기서 더 나아가 가자 지구 전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남부로 이동한 민간인들에게 하마스의 구호 물자 탈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분리된 방식으로 배급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제기구와 UN이 주도해 왔던 구호 물자 분배마저 민간 기업으로 이관될 예정이며, 라파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배급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마스는 반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번 발표에 대해 하마스의 고위 관계자인 마흐무드 마르다위는 “어떠한 형태의 압박과 공갈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완전한 휴전과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철수, 가자 지구 재건, 그리고 양측의 모든 포로를 동시에 석방하는 포괄적인 합의 외에는 그 어떠한 대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예멘 서부 해안 도시 호데이다 항구에 무려 20대의 전투기를 동원하여 50발의 포탄을 쏟아붓는 대규모 보복 공습을 감행했다. 후티 반군 측 보건 당국은 이번 공격으로 최소 1명이 사망하고 35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후티 반군을 직접적으로 공격한 것은 지난 1월 이후 약 4개월 만이며, 특히 지난 3월 트럼프 행정부가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을 개시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이번 이스라엘의 강도 높은 공습은 전날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의 심장부인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을 향해 탄도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것에 대한 명백한 보복 조치로 풀이된다. 후티 반군은 가자 지구 전쟁 발발 이후,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홍해를 지나는 이스라엘 관련 선박들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등 이스라엘과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점령 공식화와 후티 반군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 공습은 이미 불안정한 중동 지역의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평가다.

가자, 4000년의 비극
지중해 연안의 좁고 인구 밀도 높은 땅 가자지구는 수십 년간 이어진 분쟁과 인도주의 위기의 중심지다. 200만 명 이상이 살아가는 이곳의 비극은 점령, 실향, 봉쇄, 반복되는 전쟁으로 점철된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가자의 역사는 고대 가나안 정착지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의 교역 중심지로 번성했고 이후 블레셋, 아시리아,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칼리프조, 십자군, 맘루크, 오스만 제국 등 수많은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중요한 교역로이자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끊임없는 정복과 지배의 역사를 낳았고, 이는 현대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실제로 맘루크 시대에는 지역 수도로서 중요성을 누렸다. 비록 1517년 오스만 제국 지배 하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변적인 위치로 밀려났으나 그럼에도 19세기 말까지 팔레스타인 남부의 중요한 경제, 교통, 종교 교육 중심지 역할을 유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국의 위임통치 하에 들어갔다.
영국은 교활했다. 아랍 민족에게 독립 국가 지원을 약속(후세인-맥마흔 서한)하는 동시에, 시오니스트들에게 팔레스타인 내 "유대 민족의 집" 건설 지원(밸푸어 선언)을 약속하는 모순된 정책을 펼쳤다. 이 이중적 약속은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문서에도 반영되어 유대 민족의 집 건설 지원과 비유대인 공동체의 권리 보호라는 양립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갈등의 씨앗이 비극의 땅에 뿌려지는 순간이다.
결국 위임통치 기간 동안 유대인 이민 증가와 토지 매입은 아랍인들의 저항을 불렀고 두 공동체는 분리되어 갈등은 격화되었다. 1936-1939년 아랍 대봉기는 영국에 의해 무력 진압되었고, 이는 팔레스타인 정치 지도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모순된 정책은 갈등 해결은커녕 오히려 심화시켰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 후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하게 된다.
파국은 심해졌다.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안(결의안 181호)은 아랍 측의 거부 속에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나크바(Nakba, 대재앙)'를 겪는다. 약 75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집과 고향에서 쫓겨나거나 도망쳤고, 400개 이상의 마을이 파괴되었다.
전쟁 전 약 8만 명이 살던 좁은 가자지구로 20만 명 안팎의 난민들이 밀려온것도 그 즈음이다. 순식간에 가자는 세계 최고 인구 밀도 지역 중 하나가 되었고, 인구의 70% 이상이 난민으로 구성되는 특수한 지역이 됐다. 오늘날 가자가 겪는 과밀, 빈곤, 실업, 원조 의존 문제의 직접적인 뿌리다.
유엔은 난민 구호를 위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 기구(UNRWA)를 설립했지만(1949년), 난민들의 귀환권(유엔 결의안 194호)은 오늘날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렇게 1949년 휴전 후 가자지구는 이집트의 군사 행정 관리 하에 놓였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집트는 가자를 병합하지 않았고 주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아 대다수 난민들은 사실상 무국적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열악한 사회경제적 상황, 극심한 빈곤과 실업 속에서 주민들은 UNRWA 구호품에 의존해야 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일부 젊은이들은 '페다인(fedayeen)' 저항 전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이는 이스라엘의 보복을 불러 국경 지대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 시기 야세르 아라파트 중심의 파타(Fatah) 운동이 창설(1959년)되고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결성(1964년)되는 등 민족주의 운동의 명맥은 이어졌다.

이스라엘과의 악몽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집트로부터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 요르단으로부터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 시리아로부터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가자지구는 이집트 통치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군사 점령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약 4만 명 이상의 가자 주민들이 피난하거나 추방당하며 나크바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유엔 안보리는 점령지 철수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 242호를 채택했지만, 해석 논란과 이행 메커니즘 부재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점령은 장기화되었다.
이스라엘 군정 하에서 가자 주민들의 삶은 통제되었다. 이스라엘은 국제법에 반하여 가자지구 내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는 토지 잠식과 자원 갈등을 유발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샀다. 억압과 절망이 누적되던 1987년 12월, 가자 북부 자발리야 난민 캠프에서 제1차 인티파다(민중 봉기)가 발발했다. 이는 점령지 내부의 대중적 저항의 힘을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파국은 더욱 몸부림쳤다. 바로 이 시기 이슬람 저항 운동 하마스(Hamas)가 무슬림 형제단에서 분파하여 설립되었기 때문이다(1987년 12월). 하마스는 이스라엘 파괴와 이슬람 사회 건설을 목표로 내걸며 세속주의 PLO/파타와 다른 노선을 걸었고, 팔레스타인 내부 정치 지형은 격변의 순간을 맞이했다.
흘러내린 피를 또 다른 피로 닦아내는 질곡의 시간. 그 처절한 순간에도 희망은 있었다. 1993년 이스라엘과 PLO는 오슬로 협정을 통해 상호 인정하고 가자지구와 서안 지구 일부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A)를 수립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초기 평화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조심스럽게 안식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기대는 무참히 파괴됐다. 국경, 예루살렘, 난민, 정착촌 등 핵심 쟁점 해결이 미뤄지고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이 계속되면서 평화의 비둘기는 지옥의 화염에 타버렸기 때문이다. 하마스 등 무장 단체의 자살 폭탄 공격과 이츠하크 라빈 총리 암살(1995년) 등으로 평화 프로세스는 동력을 잃었다.
결국 2000년 9월, 더욱 격렬한 양상의 제2차 인티파다(알-아크사 인티파다)가 발발했다. 이스라엘군의 강경 진압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의 공격으로 양측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군대와 약 9000명의 정착민을 일방적으로 철수시켰다.
팔레스타인과의 합의 없이 이루어졌으며 이스라엘은 여전히 국경, 영공, 영해 통제권을 유지하며 가자지구를 압박했다. 가자지구의 고립 심화와 이후 하마스 장악, 봉쇄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파타를 누르고 압승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하마스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제재를 가했으며 파타와의 내부 갈등은 격화되었고, 외부 세력의 개입 속에 결국 2007년 6월 가자지구에서 파타-하마스 간 내전('가자 전투')이 벌어지는 파국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엿새 만에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무력 장악했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와 파타/PA가 통치하는 서안 지구로 양분되었다. 이 분열은 팔레스타인 민족 운동을 약화시키고 가자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포위된 섬, 질식하는 경제
하마스의 가자 장악 직후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를 단행했다.
이스라엘은 가자를 '적대적 실체'로 규정하고 육상, 해상, 공중을 통한 이동을 극도로 제한했다. 이집트도 라파 국경 검문소를 사실상 폐쇄했다. 이스라엘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집단 처벌'이자 국제법 위반이라 비판하며 가자를 '노천 감옥'에 비유했다.
봉쇄는 ▲국경 통제(인력/물품 이동 극히 제한) ▲물품 반입 제한(특히 건설 자재 등 '이중 용도' 품목 통제) ▲수출 전면 금지 ▲해상/공중 봉쇄(어업 구역 축소) 등을 통해 가해졌다.
가자 경제는 완전히 붕괴했다. 제조업과 농업은 마비되었고, 실업률은 세계 최고 수준(2023년 전쟁 전 45%, 이후 80% 육박)으로 치솟았다. 주민 80% 이상이 국제 원조에 의존하며 빈곤 속에 살아가게 되었다(UNCTAD 보고서). 필수 서비스 역시 마비 상태다. 만성적인 전력난(하루 12-16시간 정전), 심각한 식수 오염 및 부족, 열악한 위생 환경, 의약품 및 의료 장비 부족으로 붕괴 직전인 보건 시스템, 이동의 자유 박탈 등은 주민들의 삶을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2010년 봉쇄를 뚫으려던 '가자 자유 선단' 유혈 사태는 봉쇄의 비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반복되는 전쟁은 물리적 파괴뿐 아니라 주민들의 정신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민간인 거주지, 병원, 학교, UN 시설에 대한 반복적 공격은 국제인도법 위반 논란을 낳았고, 특히 높은 민간인 사상자 비율과 어린이들의 피해는 이 분쟁의 가장 비극적인 단면이다.
한편 가자지구의 비극은 일상화된 인도주의 위기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2023년 10월 하마스와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터지며 그 위기는 절망으로 변해가고 있다. 당장 필수 서비스는 완전히 붕괴했다. 깨끗한 물 부족과 오염은 재앙 수준이며 수인성 질병이 창궐하고 있다. 전력과 연료 부족은 모든 것을 마비시켰다.
식량 부족은 기근 위기로 번졌고 영양실조도 심각하다. 의료 시스템은 마비되어 기본적인 치료조차 불가능하다. 모든 학교는 문을 닫아 교육은 중단되었다.
UNRWA 등 국제 구호 기구들은 필사적으로 활동하지만 이스라엘의 접근 제한, 불안정한 안보, 구호 인력 및 시설 공격, 인프라 파괴, 자금 부족 등으로 극심한 제약에 직면해 있다. 특히 2023년 이후 가자에서 사망한 구호 활동가 수는 유례없이 많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폭력, 죽음, 상실, 실향은 주민들에게, 특히 어린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정신적 트라우마(PTSD, 불안, 우울 등)를 남기고 있다. 이는 세대를 넘어 전달될 수 있는 '만성적 트라우마 스트레스 장애(CTSD)'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넘어선 근본적인 해법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국제법에 기반한 정의로운 정치적 해결이 절실하다.
이스라엘도, 하마스도, 미국도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아니다. 냉정한 상황판단과 현실적 해결방안. 이를 관통하는 정치적 대의명분과 경제적 합리성을 전제한 대전략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가자의 눈물을 멈추려는 국제적 연대의 결단도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