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어떻게 우주가 되고 인간이 되는가?
막을 내린 공연의 리뷰는 독자와 창작자, 누구에게도 쓸모없다. 그래도 ‘기억’해둔다. 누군가 그 무대를 다시 만나길, 아니라면 서울시무용단의 다음 무대를 경험하길 소망하는 ‘기록’이다.
윤혜정 단장이 이끄는 서울시무용단은 <스피드>를 2025년 4월 24일(목)부터 27일(일)까지 세종S씨어터 무대에 올렸다.
안무, 음악, LED 아트, 의상, 분장. 각각이 독립된 완성도를 가진 채 속력(Speed)을 만든다. 시간이 흐르고 요소들이 뭉치고 때론 충돌하며, 우연하지만 우연하지 않게 가운데로 향하자 속력은 방향성을 얻어 속도(Velocity)가 된다. 그러다 폭발해, 우주가 펼쳐진다. <스피드>는 그런 이야기다.
그 장면을 무용수들로만 다시 묘사하면 이렇다. 무용수들은 칼군무를 하지 않는다. 자유도가 높은 독자적인 움직임 위에 작은 리프트가 충돌처럼 연출된다. 그러다 서로가 흐름이 되어 중심으로 향해 빅뱅하고, 다시 불규칙하게 부유한다. 그들 사이로 누군가 태양처럼 자리 잡자 그들은 다시 간격을 유지한다. 우리가 인지하는 우주가, 그렇게 탄생한다.
12명의 무용수가 원을 이루고 그 안으로 단 한 명의 무용수가 들어서는 이 구도는 사도들과 예수를 연상시킨다. 동시에 동양의 우주이다. 무대 조명은 하얀 음(陰)에서 출발해 붉은 양(陽)으로 치솟는다. 불교의 세계일 수도 있다. 그 빠른 속력에서 우리가 속도라고 목격하는 건 그래봐야 방향 따윈 없는 찰나의 속력에 불과하다.
<스피드>가 표방한 테마는 ‘장구’와 ‘시간’이다. 초반에는 굳이 장구, 그것도 라이브 연주여야 하나 싶다. 미디 패드여도 괜찮고 녹음이어도 상관없다고 여길 때, 무용수와 장구의 경계가 무너진다. 장구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끌어낸다. 혹은 그 반대가 된다. 장구는 전면 무대가 됐다가 어느 새 소품도 된다. 2장과 3장 무대, 특히 인상적이다. 멈춰 선 시간 속에서 장구채를 든 무용수가 깨어난다. 2인, 3인, 4인, 6인의 움직임으로 불어난다. 한국 관객이라면 ‘얼쑤’ 하고 싶은 순간도 분명 연출된다. 그 대목이 흥미롭다. 외국 관객은 어떤 추임새를 넣었을까? 그렇게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감각을 관객은 경험한다.
황민왕의 타악과 해미 클레멘세비츠의 전자음악은 이질감 없이 하나의 음(音)으로 협업한다. 전통 장단과 현대 전자음은 각자의 몫이 아니라 하나의 향(響)으로 작동한다. 장면 전환을 주도하거나 무용수의 에너지를 밀어올리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웬만한 영화 OST 이상의 서사적 긴장감을 자아낸다.
반대로, 무음의 무대가 백미다. 무용수들의 숨소리! 그것을 음악에 묻을 수 없던 그때, 그들은 끊임없이 격렬하게 움직이면서도 숨소리를 죽인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 단 번에 끝내려는 듯! - 동시에 들이쉰 숨소리들이 강력한 라이브감을 만든다. 도대체가 녹화될 수 없고,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의도치 않은 정적이었다면, 관객으로선 오히려 행운이다.
LED 아트도 시간을 안무한다. 신체의 궤적을 시각화하는 무대의 확장 공간으로 작동하면서, 무대는 단일 프레임이 아니라 입체가 된다. “이 공연은 이 극장이 아니면 안 된단 말이다!”, 그렇게 선언한다.
민천홍 디자인 감독의 의상도 무용(舞踊)한다. 흰색, 검은색, 그리고 발끝의 붉은 천으로 무용수 몸에서 흐르며 그 나름으로 시간과 속력을 구축한다. 그러면서 의상은 무용수의 몸을 감추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도구라는 것도 확실히 한다. 성별 구분을 최대한 지우려는 듯, 무용수 개개인의 근육을 드러내면서 무용의 본질을 전한다.
결국 <스피드>의 장구와 시간이 그리는 건 사람이다. 사람을 태초에 하나였던 존재로, 종말로 가는 길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의 존재(人間)로, 그리고 영원히 하나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 그린다. 그러면 왜 스피드일까?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속력, 시간, 방향이 존재하겠는가.
한국무용 장단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밖으로 나간 <스피드>. 마지막으로 그 무대를 처음 완성한 이들을 기록한다. 최태헌, 유재성, 오정윤, 김민정, 박정훈, 김민지, 한지향, 노연택, 김은경, 정다은, 김서현, 강범석, 박희주, 김건우.
서울시무용단의 다음 무대는 8월 21일 개막하는 <일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