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기존 추진해온 수준보다 한층 강화된 상법개정안을 예고했다.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주식 저평가) 해소를 위한 취지지만, 기업 경영권 불확실성과 경영활동 위축을 심각하게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21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서유석 금투협회장과 17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등과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열고 상법개정안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재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 뿐만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고, 전자주주총회를 의무화하는 기존 상법개정안의 내용 이외에도 ▲대규모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 적용 ▲대규모 상장사 감사위원 분리선출 강화 등의 내용도 추가하기로 했다.
앞서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한 상법 개정안은 3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4월 1일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로 돌아왔고, 같은달 17일 재표결 끝에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며 자동 폐기됐다.
폐기된 상법개정안에서는 기업의 우려와 반발이 크다는 이유로 대규모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 적용, 대규모 상장사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강화 등의 조항들이 제외됐었다.
집중투표제는 회사의 이사 선임 시, 주주가 보유한 주식 1주당 선임될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부여받아, 이를 특정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또는 여러 후보에게 분산해 행사할 수 있는 투표 방식이다. 1주당 여러 표를 얻어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고, 여러 후보에게 분산해 투표할 수도 있다. 현재 상법에서는 집중투표제 적용 여부를 회사가 정관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이를 의무화할 경우 모든 기업에 집중투표제를 적용하게 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는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별도로 선임하는 것인데, 선임 과정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상법상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3인 이상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이 중 최소 1명은 분리선출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같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상을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그간 추진해 왔다.
이날 이 후보는 "대한민국 자산 시장이 부동산 중심인 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본시장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라며 "저도 꽤 큰 개미 중 하나였고, 정치를 그만두면 주식 시장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99%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복과 성장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주가지수 5000시대 열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폐기된 이사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언급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이를 재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기존 안보다 더 강화된 상법 개정안 추진을 예고하며 "이번에 상법 개정에 실패했는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해야 한다, 이기적인 소수들의 저항이라고 생각되는데 당연히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법이 개정되면 지배 대주주의 횡포가 줄어들고 비정상적 경영 판단도 중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 후보가 상법개정안 강화를 언급한 이유는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를 선임하고 경영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자 이 후보가 동학개미들의 표심을 위해 정책을 수정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 후보는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던 최근까지도 '기업 주도 성장'을 강조하며 우클릭 행보를 보여왔다. 재계 반발을 우려해 상법개정안 재추진에 있어서도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이날 이 후보의 발언은 이 예상이 한참 빗나갔다는 점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이 후보는 이밖에도 쪼개기 상장 시 모회사의 일반주주에게 신주를 우선 배정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상장회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이 후보는 국내 시장의 낮은 배당성향에 대해서도 지적하면서 배당소득세 완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유석 금투협 회장은 "기업 총수가 경영자인 경우가 많은 국내 재계 특성상 배당을 늘리고 싶어도 고율의 배당소득세가 걸림돌로 작용한다"며 는 세제 개편 필요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배당소득세 개편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배당소득세 완화가 실제 배당성향 상승으로 이어질지, 국가세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보고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시세조종 등 국내 시장에 만연한 불공정 거래에 대한 강력한 대응도 피력했다. 그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한 번이라도 주가조작에 가담하면 주식시장서 퇴출, 임직원과 대주주의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불공정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이 후보는 선진국 대비 지나치게 많은 종목 수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들을 언급하면서 시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가총액은 세계 15위인데 종목 수는 세계 5위다. 이건 함의가 있지 않냐"며 "실제 가치가 없는 종목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PBR이 0.1배로 낮은 기업들이 많다"며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사서 청산하면 10배 넘는 수익을 거둘 수 있는데 이런 주식이 왜 있어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서 회장은 "미국, 일본 시장과 비교하면 국내 상장 기업수는 세계적인 수준이며, 백화점처럼 좋은 상품을 팔수 있도록 잘 솎아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서 회장은 "PBR 역시 현재 국내 코스피 지수 기준 0.8배가 깨졌다"며 "(PBR)1.6배로만 만들어도 코스피 지수는 5000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국내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 장들이 대거 참석해 자본시장 개선 방안과 제도 보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최광혁 LS증권 ▲윤여철 유안타증권 ▲이종형 키움증권▲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조수홍 NH투자증권 ▲윤석모 삼성증권 ▲김영일 대신증권 ▲노근창 현대차증권 ▲고태봉 IM 증권 ▲김혜은 모건스탠리 ▲최도연 SK증권 ▲김학균 신영증권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김동원 KB증권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이승훈 IBK 투자증권 등 국내 대표 리서치 헤드 17명이 총출동했다. 당초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했던 행사는 이 후보자의 권유로 일부 공개로 진행됐다.
리서치센터장들은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를 파이프라고 한다면 주가 상승에는 수압이 중요하고, 돈에 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법 개정과 밸류업 정책이 수압 세기를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사외이사 선임 조건 완화를 제언했다. 그는 "우리나라 상장사의 사외이사 선임 조건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야 한다"라며 "상법상 우리나라의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회사는 동일 업종 출신의 사외이사를 임명할 수 없고, 임기도 3년, 3년씩 총 6년으로 제한된다"고 짚었다.
김 센터장은 "우리나라 30대 기업 사외이사를 보면 교수가 49%, 관료가 17%로 전체의 66%가 거수기로 전락한 현실"이라며 "반대로 애플 등은 사외이사의 80%가 업계 CEO 출신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사인 마이크론이 대만의 TSMC 회장을 사외 이사로 영입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후보는 사외이사 선임 조건을 완화하면 "결국 자기 식구들 뽑지 않나" 라고 반문했고, 김 센터장은 "시행령으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재명 캠프 대변인을 맡은 강유정 의원은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책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자리였다"며 "여러 참석자들이 '코리아 밸류업' 종합대책과 주주중심 경영 문화 확대에 강한 기대감을 보였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