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또다시 대한민국의 '디지털 영토'인 고정밀 지도 데이터(1:5000 축척)를 국외로 반출하겠다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2007년,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9년에 한 번 꼴로, 18년째 매번 다른 전략을 들고나와 끈질기게 요구하는 행태는 그 자체로 한국의 법과 현실을 무시하는 오만이라는 평가다. 특히 이번에는 미국의 강력한 통상 압박까지 등에 업고 더욱 노골적으로 요구 수용을 종용하고 있어 더욱 질이 나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 세금으로 구축된 핵심 자산을 공짜로 넘겨받아 이익을 취하려는 후안무치한 행태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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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위협은 '나 몰라라', 좌표 내놓으라는 적반하장
구글이 탐내는 1:5000 고정밀 지도는 골목길까지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다. 

이미 구글 어스를 통해 대통령실 등 주요 시설의 위성사진이 노출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상의 상세 정보까지 결합되면 적대 세력의 정밀 타격 가능성을 높이는 등 국가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정부가 미터(m) 단위급인 1:25,000 축척 지도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며 18년간 반출을 불허한 핵심 배경이다.

구글은 그럼에도 '마이위에'다. 안보 우려를 애써 외면하며 '다른 위성사진으로도 볼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중이다. 심지어 2025년 재신청에서는 '안보 시설을 흐리게 처리(블러)하겠다'면서도, 그 전제 조건으로 우리 정부가 해당 시설의 '정확한 좌표값'을 제공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내걸어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기만일 뿐 아니라, 오히려 국가 안보 시설 전체 목록을 해외 기업의 서버에 통째로 넘기라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2016년 당시 최병남 국토지리정보원장이 구글에 지도데이터 반출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6년 당시 최병남 국토지리정보원장이 구글에 지도데이터 반출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구글은 왜?
구글의 요구에는 단순한 지도 서비스 개선 이상의 '검은 속셈'이 깔렸다는 것이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우선 IT 업계에 따르면, 통상적인 지도 기능은 이미 제공 중인 1:25,000 축척 지도로도 충분하다. 그렇기에 도시계획이나 SOC 건설 수준의 정밀한 1:5000 지도를 구글이 '원활한 구글맵 서비스'를 위해 고집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고정밀 지도 정보는 자율주행, 디지털 트윈, 스마트시티, 로보틱스, 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미래 산업을 떠받치는 근간 데이터다. 이를 바탕으로 구글이 이 데이터를 확보해 자회사 웨이모의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 및 상용화, 비전 프로와 같은 공간 컴퓨팅 개발 등 미래 먹거리 사업 확장에 활용하려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글로벌 디지털 트윈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연평균 35.7%의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구글은 바로 이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한민국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탐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구글의 요구대로 지도 데이터가 넘어가면 국내 관련 산업 생태계는 초토화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공간정보산업 사업체 5955개 중 99%는 중소기업이다. 이들은 구글이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력으로 관련 시장에 직접 진출하거나 글로벌 기업들에 문호를 열어 국내 시장을 잠식할 것을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빅테크 기업들에게도 재앙이 될 수 있다. 네이버는 네이버 지도를 단순 검색을 넘어 리뷰, 예약, 제휴(쏘카 등), 재난 안내까지 아우르는 '슈퍼 앱'으로 키우고 있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맵에 전문가 검색, 실내 지도 혼잡도 체크, 트렌드 랭킹 등 혁신적인 기능을 도입하며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구글에 고정밀 지도가 넘어가면, 이들의 미래 먹거리 전략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과거 유튜브가 국내 시장에 뒤늦게 진출했지만 순식간에 동영상 플랫폼 시장을 장악하고, 유튜브 뮤직으로 음원 시장까지 잠식한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구글이 지도 정보를 확보하면 웨이모 등 자율주행 AI 학습이 가능해져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 등 관련 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외국 기업이 국내 기술 생태계를 통째로 잡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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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무임승차와 국부 유출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부로부터 지도 데이터를 구매하고 국내 법규에 따라 서버를 운영하며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나 구글은 국내에서 유튜브, 검색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망 사용료는 한 푼도 내지 않고, 법인세마저 100억원대 수준의 '쥐꼬리 세금'만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조 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된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공짜'로 내놓으라는 것은 상식 이하의 요구이자 명백한 역차별이라는 평가다. 정당한 사업자로서의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누리려는 '무임승차' 행태이자, 대한민국의 '디지털 국부'를 공짜로 유출해가려는 시도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편의를 위해 지도 반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구글의 본심을 가리기 위한 얄팍한 명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관광객 편의 증진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지도 반출로 인해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지도 플랫폼이 몰락하고 미래 먹거리인 공간정보산업 전체를 글로벌 기업에 내주는 결과는 훨씬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안보는 물론 국내 산업과 미래 먹거리가 통째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상황에서, 실익 없는 주장을 펼 명분이 없다.

무엇보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국가의 중요한 자산이자 대한민국의 '디지털 영토'다. 구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이 디지털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해외 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한 데이터 종속은 심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장기적으로 '디지털 식민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주권 침해 문제다. 

다른 나라에서는 특정 규제를 준수하면서 유독 한국에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이미는 구글의 이중적인 행태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미국 정부와 일부 이익 단체의 통상 압박 또한 부당하다.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동맹국의 정당한 안보 및 주권적 권리 행사를 문제 삼는 것은 외교적 결례이자 압력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며 부당한 힘의 개입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더욱 철두철미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도 "국토부 주관 협의체에서 관계부처들이 함께 안보산업까지 고려해 국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정부도 더 이상 구글의 오만한 요구와 부당한 압력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좌표 제공'이라는 위험천만한 꼼수는 단호히 거부하고, 국가 안보와 데이터 주권을 최우선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제언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구글이 진정으로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국내 법규를 준수하고 서버를 설치하며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는 책임부터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눈 앞의 소소한 이익과 협박에 무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