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이 전례 없는 격변기를 맞고 있다. 인공지능(AI)발 수요 폭증과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심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업계 판도를 뒤흔들 빅딜설이 연이어 터져 나오며 시장 전체가 거대한 합종연횡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 1위 TSMC와 반도체 제왕의 귀환을 노리는 인텔의 파격적인 협력 가능성이 제기된 데 이어, 중위권 강자인 글로벌파운드리(GF)와 대만 UMC의 인수합병(M&A) 시나리오까지 부상하면서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첨단 공정과 성숙 공정 양쪽 전선에서 동시다발적인 경쟁 구도 재편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세계 2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행보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생존과 성장을 위한 근본적인 전략 수정과 새로운 가능성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TSMC-인텔, 손잡나?… 美 패권 야욕과 대만 딜레마 사이
TSMC와 인텔의 동맹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양사가 미국 내 인텔의 반도체 생산 시설 공동 운영을 위한 예비 합의에 도달했다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 TSMC가 합작법인 지분 20%를 확보하고, 자사의 검증된 칩 제조 기술 노하우 일부를 인텔과 공유하며 교육까지 진행할 수 있다.
이 파격적 시나리오의 배후에는 미국의 치밀한 지정학적·경제적 노림수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정부는 칩스법(CHIPS Act) 등 막대한 정책 지원을 등에 업고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아시아, 특히 대만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랫동안 제조 공정에서 고전하며 자존심을 구긴 국가대표 인텔을 TSMC와의 협력을 통해 단숨에 부활시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글로벌 기술 패권을 공고히 하겠다는 다층적인 포석이다.
문제는 대만이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TSMC는 대만의 경제 버팀목이자 유사시 외세의 개입을 유도할 수 있는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로 여겨져 왔다. 이런 가운데 TSMC의 핵심 제조 기술과 노하우가 잠재적 경쟁자인 인텔, 특히 미국 기업으로 이전될 경우 장기적으로 대만의 기술적 우위가 잠식당하고 경제·안보적 지렛대를 잃을 수 있다는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TSMC 역시 미국의 정책적 지원과 시장 확대라는 실리를 얻는 대신, 핵심 기술 유출과 호랑이 새끼(경쟁자)를 키우는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텔 내부에서조차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과 자체 기술 개발 동력 약화에 대한 우려, 그리고 과거 인텔의 제조 실패 전력을 고려할 때 TSMC 기술의 성공적인 이식 여부에 대한 회의론이 존재하는 등 실제 성사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첩첩산중이다.
그럼에도 TSMC-인텔 동맹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첨단 공정에서 TSMC를 따라잡고 애플, 엔비디아 같은 큰 손 고객을 유치해야 하는 삼성전자에게는 그야말로 치명타다. 세계 최고 기술력에 더해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은 인텔의 부활은 삼성의 고객 유치 경쟁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고, 미국 시장에서의 활동 역시 크게 제약할 수 있다.

글로벌파운드리-UMC, 뭉쳐야 산다… 성숙 공정 규모의 경제 실현하나
첨단 공정 경쟁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동차, IoT, 전력 반도체 등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28나노 이상 성숙(레거시) 공정 시장에서도 거대한 합병설이 부상하고 있다. 세계 4위권 파운드리인 미국 글로벌파운드리(GF)가 5위권인 대만 UMC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구체적인 보도(울트론 프로젝트)가 나왔기 때문이다.
UMC 측은 공식 부인했지만, 양사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들의 잠재적 결합은 선택과 집중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천문학적인 투자와 극심한 경쟁이 요구되는 최첨단 공정 대신, 여전히 방대하고 안정적인 수요를 가진 성숙 공정 시장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급성장하는 중국 파운드리(SMIC, 화홍반도체 등)의 도전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계산이다.
시너지는 명확하다. GF가 강점을 가진 12/14나노 공정과 UMC의 주력인 22/28나노 공정 기술은 상호 보완성이 높아 고객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뉴욕), 독일(드레스덴), 싱가포르를 비롯해 잠재적으로 대만, 중국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생산 거점 확보는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과 공급망 다변화를 원하는 고객사들에게 강력한 어필 포인트가 된다. 팬데믹 이후 공급망 안정성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만큼, 이는 상당한 경쟁 우위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자본이다. 특히 현실화 장벽 역시 만만치 않다. 우리 돈 수십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인수 자금 마련은 GF에게 큰 재정적 부담이다. 또한, 국경 간 M&A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복잡한 절차, 특히 대만과 중국이라는 민감한 지역의 규제 당국 승인 여부가 최대 관건이다. BofA 등 일부 투자은행은 GF의 기존 강점(중국·대만 리스크 최소화)이 희석될 수 있다는 점과, 상이한 기업 문화 및 운영 시스템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통과 비효율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기로에 선 삼성전자… 초격차 흔들, 근본적 방향 전환 모색해야
현재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사면초가에 놓였다.
2024년 4분기 시장 점유율은 8.1%까지 추락하며 TSMC(67.1%)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고, 연간 조 단위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등 수익성 악화도 심각하다. 세계 최초 3나노 GAA 공정 양산이라는 기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율 문제와 핵심 고객 확보 난항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25년 설비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절반 이상 감축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는 소식은, 비록 단기적인 재무 부담 완화 조치일 수 있으나 TSMC의 공격적인 투자 기조와 대비되며 장기적인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 텍사스 신규 공장의 본격 가동 시점 지연 가능성 역시 이러한 어려움을 방증한다.
설상가상으로 외부에서는 TSMC-인텔 동맹설(첨단)과 GF-UMC 합병설(성숙)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동시에 밀려오고 있는 형국이다. 최첨단 기술 리더십은 TSMC에 밀리고 중위권에서는 잠재적 거대 경쟁자의 출현 가능성에 직면한, 그야말로 샌드위치 또는 고립무원의 위기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고 미래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개선을 넘어선 근본적인 전략적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3나노 및 차세대 공정의 수율을 경쟁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기술적 난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며, 큰 손 팹리스 고객을 다시 끌어올 수 있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 맞춤형 설계 지원 강화 등 고객 중심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모든 전선에서 TSMC와 정면 대결하기보다, 삼성이 강점을 가진 특정 응용 분야(예: 자체 모바일 AP 연계, 특정 HPC, 차량용 반도체 등)에 역량을 집중하는 틈새시장 공략도 고려해야 한다. 때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부와의 과감한 기술 제휴나 전략적 M&A 카드를 만지작거릴 필요성도 제기된다. 마지막으로, 자체 칩 설계 및 생산 능력을 동시에 갖춘 IDM(종합반도체기업)으로서의 강점을 파운드리 사업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시너지를 창출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