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10조원 규모 '필수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을 추진하겠다고 30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 25만원 소비쿠폰 등 35조원 추경을 제안한 바 있으나, 예산 편성권을 가진 정부가 추경안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산불 피해 대응과 내수 진작 등 여야의 입장차가 크지 않은 필수 사안에 재정을 신속하게 투입할 계획이다. 그동안 추경에 다소 소극적이라고 평가받은 정부가 총대를 메고 나서면서 '벚꽃 추경'이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다만, 여당은 산불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10조~15조원 규모 추경이 적절하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대규모 소비 진작 사업을 포함한 35조원 규모 추경을 공언하는 등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국회 심사 과정에 험로가 예상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영남권 중심의 동시다발적인 산불 피해를 복구하자는 '산불 추경'의 범주를 뛰어넘어 미국발(發) 통상리스크, 내수 부진 등에 대응하는 '필수 추경'의 취지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여야가 이같은 취지에 '동의'한다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추경안을 편성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통해 추경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는 종전의 입장에서 반발짝 진전된 제안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추경과 관련해 여야 협상이 이뤄진 뒤 정부가 추경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산불로 7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재정 소요가 커지면서 결국 입장을 선회했다. 이에 따라 산불 대응과 취약 서민·소상공인 지원 방안 등이 추경안에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국민의힘은 영세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추경을 하자고 제안했다. 영세 소상공인 1인당 100만원 상당의 에너지공과금 바우처 지원 등이 국민의힘 제안에 포함됐다.
기존 국민의힘 추경안은 15조~20조원 규모로 추진됐는데 최근엔 규모를 줄이더라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이달 28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재난 대응을 위한 '원포인트 추경'을 제안했다.
이날 오후 최 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긴급현안 관련 경제관계장관간담회'에서 "정부는 시급한 현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속하게 집행 가능한 사업만을 포함한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3대 분야로는 ▲재난·재해 대응 ▲통상 및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을 제시했다.
최 부총리는 "산불로 약 4만8000ha(헥타르)에 이르는 산림 피해와 75명의 사상자 등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며 "피해 지역민들의 조속한 일상 복귀를 위한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과 지원이 긴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대외적으로 미국 신정부의 관세 부과 등 통상리스크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주력산업의 생존이 위협받고 AI 등 첨단산업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며 "내수 회복이 더딘 가운데 수출 둔화가 중첩되면서 서민·소상공인 취약부문의 민생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 부총리는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기존 가용재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넘어 신속한 추가 재정투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조 필수추경의 세부 내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은 '예비비 2조원 증액'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민주당은 산불복구 뿐만 아니라 민생회복 소비쿠폰 또는 지역화폐 할인지원 등 소비진작 패키지까지 아우르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정부 발표만으로 추경의 현실화를 낙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여야 동의를 전제로 편성할 수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최 부총리는 "산불피해 극복, 민생의 절박함과 대외현안의 시급성을 감안하면 '필수 추경'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여야가 필수 추경의 취지에 '동의'해 준다면 정부도 조속히 관계부처 협의 등을 진행해 추경안을 편성·제출하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최 부총리는 "국회 심사과정에서 여야 간 이견 사업이나 추경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의 증액이 추진된다면 정치 갈등으로 인해 국회심사가 무기한 연장되고 추경이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다"며 4월 중으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여야의 초당적 협조를 거듭 요청했다.
여야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선 정부 편성안을 제출하더라도 국회 단계에서 전면적으로 수정되거나 아예 통과가 불가능한 정치 지형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정부가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더라도 실제 집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추경을 뒷북 제출하면서 '급하니 국회의 심사 과정은 생략해달라'는 태도는 묵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향후 추경안 심사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날 정부가 추경 방안을 발표한 이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빠른 추경 추진과 '필수 추경'이라는 편성 방향 모두 환영한다"며 "정부 안이 국회 추경 편성 과정에서 확정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은 산불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예비비 증액 추경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