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한 중국발전고위급포럼(CDF)에 참석하며 글로벌 경영 무대에 복귀했다. 이번 방문은 2023년 이후 2년 만으로, 이 회장은 22일 늦은 오후 베이징에 도착해 포럼 전날부터 본격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CDF는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중국발전연구재단(CDRF)이 2000년부터 매년 3월 주최하는 국제 포럼으로 올해는 23일부터 24일까지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발전 동력의 전면적 발산, 세계 경제의 안정적 성장 공동 촉진’을 주제로 이틀간 진행된다. 

이 회장은 23일 오전 행사장인 방화원(芳華苑)에 도착, 양위안칭 레노버 회장과 환담하며 밝은 표정을 보였다. “베이징 방문 소감이 어떠신가요?”라는 취재진 질문에는 답변을 삼가며 신중한 모습을 유지했다. 2023년 포럼에서 동일한 질문에 “베이징 날씨 좋네요”라며 가볍게 응했던 태도와 대비된다.

이재용 회장이 CDF에 참석해 레이진 샤오미 CEO와 만나고 있다. 사진=SNS 갈무리
이재용 회장이 CDF에 참석해 레이진 샤오미 CEO와 만나고 있다. 사진=SNS 갈무리

'종횡무진'
이 회장은 중국 현지에 도착한 후 종횡무진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다양한 글로벌 CEO들과 만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중국 고위 관계자들과의 협력도 타진하는 중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2012년 이후 30조 원 이상을 투자해 낸드플래시 공장을 쑤저우에서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운영 중이다. 그리고 이 회장의 이번 방문은 현지 사업 확장과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일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순간은 포럼 개막 전날인 22일 샤오미 자동차 공장에서 레이쥔 샤오미 CEO와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CEO를 만난 장면이다. 

중국 매체 신랑과학기술에 따르면, 이 회장은 샤오미의 베이징 공장을 방문해 레이쥔 CEO와 린빈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전기차 생산 라인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 만남은 현장 방문객들에 의해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화제를 모았다. 삼성전자와 자동차 산업의 오래된 인연을 돌아보면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특히 삼성의 전장(차량용 전자장비) 사업 확대 가능성이 점쳐진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경쟁자지만 2021년 전기차 시장 진출 이후 급성장하며 연간 6만 대 이상을 판매했다. 그리고 삼성은 샤오미에 디스플레이와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하며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CEO의 동행은 삼성-퀄컴-샤오미 간 삼각 협력의 가능성을 열었다. 중국 매체는 “이 만남이 모바일과 전기차 산업의 미래를 논의한 자리”라고 보도하며, 샤오미 공장의 일반 공개 특성을 감안해도 이 회장의 방문이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샤오미와의 협력은 삼성의 성장 동력을 다각화하는 데 핵심적이다. 전기차 시장은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으며, 삼성은 삼성SDI와 삼성디스플레이를 통해 이 분야를 공략 중이기 때문이다. 레이쥔과의 만남이 단순한 공장 방문 이상으로,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미국의 압박을 상쇄할 파트너십을 모색한 결과로 보이는 이유다.

이재용 회장의 CDF 참석과 샤오미 CEO 만남은 미·중 패권전쟁 속 삼성의 생존과 도약을 위한 결정적 승부수로도 평가된다.

미·중 갈등은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으며, 삼성은 중국과 미국 양쪽에서 동시에 사업을 운영하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이 회장은 최근 내부 회의에서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과감히 행동해야 한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는 반도체 수출 감소와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삼성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함을 시사한다.

샤오미와의 협력은 이 승부수의 핵심이다. 중국 내 전기차와 AI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며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고, 동시에 미국 텍사스 공장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충족하는 이중 전략이다. 시진핑 주석과의 잠재적 만남 가능성도 제기되며, 이 회장의 방문은 정치적·경제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한 포석으로 보인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삼성의 미래를 설계하는 이재용의 행보는, 단순한 비즈니스 행사를 넘어 글로벌 위상을 재정립하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포럼 개막식에서는 리창 중국 총리와 10개월 만에 재회했다. 지난해 5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당시 리 총리와 신라호텔에서 양자 회동을 가진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이 회장은 행사 시작 30분 전 도착해 리 총리의 연설을 경청했으며, 이후 주제별 심포지엄과 비공개 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CDF 참석자 명단에는 팀 쿡 애플 CEO,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아민 나세르 아람코 CEO 등 79명의 글로벌 CEO 외에도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등 석학, 존 소튼 아시아소사이어티 이사장, 존 노이퍼 미국반도체협회 대표 등 경제기구 인사가 포함됐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스티브 데인스 상원의원이 20일 베이징에 도착해 포럼에 참석하며 시진핑 주석과의 회동 가능성이 제기돼, 미·중 대화의 물꼬를 틀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CDF는 미·중 패권 경쟁의 축소판이자,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무대다. 트럼프의 관세 공세와 중국의 반발 속에서 삼성전자는 중국 내 대규모 생산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제재를 피해가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이재용 회장의 참석은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삼성의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상징적 행보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회복력이 보이지 않는다”며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과감히 투자하라”는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변화를 꾀하고 있다. CDF는 중국 정·재계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미·중 갈등의 균형점을 찾는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회장. 사진=연합뉴스

"무엇을 원하는가"
CDF는 중국이 글로벌 기업 리더들을 초청해 경제정책 방향을 공유하고 투자 유치를 모색하는 연례 행사다. 2000년 상무부총리 주관으로 시작됐으나, 지난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총리 기자회견이 폐지되며 총리급으로 격상됐다. 

올해 포럼은 주제별 심포지엄 8개와 비공개 회의로 구성되며 ▲거시 정책과 경제 성장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신품질 생산력 ▲빅헬스산업 발전 ▲글로벌 산업·공급망 협력 ▲인구 구조 변화의 도전과 기회 ▲경제 세계화와 제도적 개방 ▲AI의 포용적 발전 ▲소비 진작과 내수 확대 등 주제를 다룬다. 리창 총리는 개막 연설에서 “중국은 예기치 않은 외부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며 “42조위안(약 8480조원) 이상의 지출과 양적완화 정책으로 경제를 안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춘절 소비 활황, 딥시크와 같은 AI 혁신, 녹색 경제 확산을 성장 동력으로 제시하며 5% 안팎의 성장률 목표를 강조했다.

리 총리는 특히 기업가들에게 “경제 세계화를 유지하고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를 배격하라”고 촉구하며,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간접적 비판을 내놨다. 그는 “단일 기업의 힘은 작지만, 협력하면 강한 시너지를 발휘한다”며 글로벌 CEO들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이번 포럼은 중국 경제의 현주소와 미래 비전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외국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올해 CDF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패권 경쟁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열렸다. 

실제로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20%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전쟁을 재점화했고,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을 주고 있다. 당연히 일차 타깃은 중국이다. 이번 CDF가 '민감한 시기'에 열렸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중국도 상황이 좋지 않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지난해 27%, 올해 1~2월 20% 이상 감소하며 경제적 고립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외국계 기업 124만 곳이 중국 고용의 7%, 세수의 14%, 수출입의 33%를 차지하지만, ‘탈(脫)중국’ 움직임이 가속화되며 경제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국이 CDF를 통해 개방 확대와 투자 유치를 약속하며 글로벌 기업의 신뢰를 회복하려 한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리 총리는 양회에서 “서비스업, 통신, 의료 등 분야를 개방하고 외국 기업의 재투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트럼프의 강경 정책은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기술 접근을 차단하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 외에도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AI 메모리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은 올해 1월 22.5%, 2월 31.8%, 3월 30%대로 급감하며 양국 간 줄타기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이 회장의 중국 행보를 두고 특히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미중 패권전쟁이 여전한 상황에서 미국의 손을 잡은체 중국과도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하는 어려운 난관을 해결해야 하며, 이를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