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호주 줄기세포 기업인 메조블라스트가 개발한 줄기세포치료제 ‘라이온실’의 자국 내 판매를 승인한다고 지난해 말 발표했다. 줄기세포치료제가 미국에서 승인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이온실은 세포를 이식한 뒤에 나타날 수 있는 이식편대숙주반응을 치료한다. 이식편대숙주반응은 인체에 들어온 다른 사람의 세포가 수혜자를 공격하는 면역 반응에 따라 나타나는 합병증을 의미한다.

지난해 말 바이오스타그룹의 라정찬 회장(왼쪽부터 첫번째)이 일본 도쿄 긴자클리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줄기세포 치료 성과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라 회장은 앞서 2013년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이에 앞서 황우석 박사 사태로도 한국은 줄기세포 불모지가 된 바 있지만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나름 줄기세포 강국이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말 바이오스타그룹의 라정찬 회장(왼쪽부터 첫번째)이 일본 도쿄 긴자클리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줄기세포 치료 성과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라 회장은 앞서 2013년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이에 앞서 황우석 박사 사태로도 한국은 줄기세포 불모지가 된 바 있지만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나름 줄기세포 강국이다. 사진=연합뉴스  

세포치료제 승인, 줄기세포보다 카티세포가 먼저…킴리아, 34개국서 사용

이처럼 줄기세포치료제 인·허가에 보수적이던 미국 현지 분위기가 최근 변하고 있다. 최근엔 줄기세포에 우호적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트럼프 2기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취임하기까지 해 관련 바이오 업체들은 임상 시험에 속도를 냈다.

세포치료 중 줄기세포치료보다 먼저 FDA의 승인을 받은 것은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다.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 치료(이하 카티세포 치료)는 기존 항암제와 개념이 다르다. 항암 효과 약을 투입해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게 아니라 환자의 면역 세포를 활용한다.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 기능 주력군은 T세포(감염된 세포를 물리치는 백혈구)다. 하지만 암세포는 교묘하게도 T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하지 못하게 교란한다. 주력군 T세포가 있어도 적을 인지하지 못해 암과의 전쟁에서 진다.

이에 카티세포 치료는 환자 몸에 있는 T세포를 꺼내 실험실에서 유전자를 투입한 뒤 암세포가 가진 특정 항원(항체 형성을 유도하는 물질)을 찾아 달라붙게 설계한다. T세포에 암세포를 찾는 길 안내 장치(내비게이션)가 붙은 셈이다. 이를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면 전신을 돌며 암세포에 붙어 T세포로서 위력을 떨친다. 암세포만 죽여서 후유증도 심하지 않다. 1번 제조해 투여하면 치료가 끝난다.

2012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병원서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세계 최초 카티 세포 치료제 후보 물질인 ‘킴리아’가 백혈병 소녀를 살려내면서 기적의 항암제로 떴다. 현재 여러 국가의 바이오사가 각종 암 치료를 위해 관련 치료 개발에 뛰어들었다. FDA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과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소포성 림프종(FL) 등에 치료 효과를 승인했다. 4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34개국에서 사용할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코리아'에 참석한 국내 바이오사 관계자가 세포치료제 생산 기기를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코리아'에 참석한 국내 바이오사 관계자가 세포치료제 생산 기기를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카티세포 치료, 건강보험 적용에도 회당 수천만원

미 국립 의학도서관이 운영하는 논문 검색 사이트인 ‘펍메드’에 의하면 킴리아는 2022년 말까지 임상시험이나 실제 진료환경에서 7000명 이상의 환자에게 투여됐다. 국내에서는 2020년 DLBCL 환자를 위해 승인된 뒤 2021년 FL로 치료 범위가 확장됐다. 이에 보건 당국은 킴리아를 ‘장기 추적 조사’ 대상으로 지정해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

최근에 국내외 바이오사와 병원은 자가 카티세포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범용(동종) 카티세포를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미 시애틀 아동병원 연구진은 미국 혈액 관련 학술지인 ‘헤마톨로지’에 동종 이 세포를 기존 카티세포 치료제의 대안으로 꼽기도 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자가세포와 달리 오염될 가능성이 없고 단순한 물류 사슬로 임상에 빠른 적용이 가능하다. 한 살배기 영국 여아의 백혈병을 치료한 신약 후보 물질인 UCART19가 대표적이다.

이런 임상 시험이나 연구 단계에선 치료가 무상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보건 당국의 허가를 받아 시중에 판매되는 치료제는 약값이 비싸다. 이날 약학정보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킴리아의 회당 치료 비용은 3600만원이 넘는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측이 약값의 일부만 부담하는데도 가격이 비싼 것이다. 이에 적용 대상임에도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받지 못해 세상을 뜨는 환자들이 나온다.

다행스럽게도 카티세포는 혈액암을 넘어 위암처럼 장기에 걸리는 고형암(암세포가 덩어리를 이룬 암) 치료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국내 업체인 앱클론은 “회사가 개발 중인 카티 치료제(AT101)의 임상(2상) 시험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고형암을 목표로 ‘스위처블 카티 AT501’을 비롯해 여러 후속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