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시장에서 ‘맏형’이었던 의료∙바이오가 차지하는 무게가 줄어드는 모양새다. 전체 벤처투자액에서 의료∙바이오의 비중이 4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27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작년 의료∙바이오 분야 벤처투자액 비중은 약 15%(1조8375억원)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20년 29%(2조3201억원)에서 이듬해 21%로 줄어든 뒤 2023년 전년보다 0.1%포인트 늘었지만 지난해 다시 감소했다.

이와 달리 ▲정보통신기술(ICT)서비스(20.5%→25.7%) ▲전기∙기계∙장비(8.4%→14.3%) ▲ICT 제조(8.8%→10.3%) ▲화학∙소재(5.6%→8.0%) 등은 지난 4년 동안 투자액 비중이 증가했다. ICT의 약진 등에 의료∙바이오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플랫폼·차세대 신약 개발 회사는 관심받아

업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보니 투자는 신규 모달리티(약물이 효과를 나타내는 방식)를 개발한 회사 등 상대적으로 전망이 밝은 업체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벤처투자는 항체약물접합체(ADC)·표적단백질분해기술(TPD) 등 차세대 치료 접근법을 내세운 기업들에 쏠렸다.

일례로 ADC 신약개발사인 에임드바이오는 같은 해 시리즈B(가능성을 인정받은 후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받는 투자) 단계에서 400억원을 유치했다. 항체분해 약물접합체(ADeC) 신약개발사 유빅스테라퓨틱스는 사전 기업공개(Pre-IPO)로 257억원을 투자 받았다. TPD에 기반한 신약을 개발하는 핀테라퓨틱스도 지난 12월 시리즈C(회사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한 투자)로 200억원을 확보했다.

플랫폼 기술에 대한 벤처투자사(VC)의 관심도 식지 않았다.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 등이 작년에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영향이다. 해당 기술은 신약 후보 물질과 달리 다양한 회사에 비독점적으로 수출할 수 있다. 유전자치료제 개발사인 진에딧은 시리즈B 단계에서 473억원을 투자 받는데 성공했다. 해당 업체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유전자치료제 개발에 대한 플랫폼 기술을 개발했다.

“신약개발에 30년 걸려…정부 지원해야”

파인트리테라퓨틱스는 시리즈A(신약 후보 물질 등을 시장에 공식적으로 내놓기 위해 받는 투자) 단계에서 235억원을 유치했다. 투자금은 ‘앱랩터(AbReptor) 항체 분해 플랫폼’을 활용해 여러 암·단백질을 표적하는 다중 특이성 TPD 개발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 같은 업체와 매출이 발생하는 의료기기 회사들을 제외하면 아직 의료∙바이오에 대한 투자 온기는 확산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 관계자들은 바이오산업 투자에 있어서 ‘지속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억 크로스포인트테라퓨틱스 대표는 27일 관련 간담회에서 “신약개발에 일반적으로 30년 정도 걸린다. 자본시장 투자 주기는 길어야 3년이고, VC 투자 주기가 길어야 5년인데 정부의 역할이 없으면 바이오산업을 하기 힘들다”라며 “파트너십으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