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과학 실험실’ 오늘날 유통 산업 현장을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국내 유통업계가 속속 AI를 산업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특히 과거 유통업계에서 AI 기술이 소비자 개인의 취향과 행동을 분석하는 데 주로 사용돼 왔다면 최근에는 재고 관리와 상품 선별, 매장 운영으로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대형마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신선식품의 상태를 분석하고, 최고 품질을 엄선에 소비자에게 선보다. 백화점은 고객 불만 분석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유통업계의 AI 도입에 따른 소비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기술을 활용해 비용 절감과 고객 확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전략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유통 공룡들의 AI 전쟁은 2025년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롯데, 상품부터 매장까지 AI로 관리

세븐일레븐에서 매장 관리 등에 사용 중인 생성형 AI기반 챗봇 AI-FC. 사진=세븐일레븐
세븐일레븐에서 매장 관리 등에 사용 중인 생성형 AI기반 챗봇 AI-FC. 사진=세븐일레븐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지시에 따라 10년 전부터 AI 전환을 추진해 오고 있다. 롯데의 전 계열사는 롯데이노베이트가 2024년 8월 새롭게 선보인 ‘아이멤버(Aimember) 2.0’을 업무에 활용 중이다. 직원들은 아이멤버 2.0을 활용해 문서 번역과 요약, 회의록 자동 생성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아이멤버 2.0의 경우 기업 내부 정보를 학습해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어 직원들 사이에 만족도가 높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수 분이 걸리던 작업 시간이 아이멤버 도입으로 수 초대로 줄어들었다”라며 “시간 할애가 필요한 작업을 진행할 할 때 아아엠버를 찾게 된다”라고 말했다.

각 계열사도 AI 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롯데마트는 지난 2022년부터 고객에게 고르지 않아도 실패 없는 신선식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신선식품 품질 개선 프로젝트 ‘신선을 새롭게’를 시행하고 있다. 딥러닝에 기반한 AI 선별 시스템과 비파괴 당도 선별기를 사용해 과일을 가르지 않고 ▲당도 ▲병충해 ▲돌연변이 ▲수분 함량 ▲색상 ▲크기 등을 파악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AI 선별 시스템을 적용한 과일 품목도 계속해서 확대 중이다.

소비자 반응도 뜨겁다. 시스템 도입 후 지난해 롯데마트의 인공지능 선별 과일 매출은 3년 만에 4배 늘어 100억원을 넘어섰으며 고객 불만 건수도 도입 전과 비교했을 때 30%가량 줄었다. 지난 여름 롯데마트에서 해당 기술로 선별한 수박을 샀다고 밝힌 김모씨(55세)는 “수박은 두드려보거나 감을 믿는 것 이외에는 당도나 상태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늘 복불복을 하는 느낌”이었다면서 “과일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 시스템으로 검증된 맛있는 상품을 살 수 있는 건 큰 장점인 것 같다”라고 밝혔다.

세븐일레븐은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AI-FC(AI Field Coach, 인공지능 운영관리자)’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AI-FC는 편의점 운영 효율 개선을 위해 세븐일레븐, 롯데이노베이트, 랭코드가 협업해 개발한 점포 어시스턴트 챗봇이다. 기존 챗봇 서비스의 경우 대부분 시나리오 기반으로 짜여 있어 질문을 단계별로 선택해 접근해야 했다. 그러나 AI-FC는 직접 대화하는 형식으로 질의할 수 있어 사용자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가맹점 점주와 직원은 ‘운영 매뉴얼’, ‘시스템 매뉴얼’ 등 총 700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학습한 챗봇을 통해 POS 사용법부터 발주, 복리후생 제도 등 다양한 정보를 한 번에 얻을 수 있게 됐다. 실수로 오타나 다소 부정확한 내용을 기재해 문의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해 최적의 답변을 제시한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AI-FC를 통해 가맹점주와 내부 직원의 운영, 업무 효율성을 증대하고 만족도를 향상해 장기적으로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는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신세계, 자체 개발 기술로 승부수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유통산업 전시회 NRF APAC 2024에서 관람객이 신세계아이앤씨의 스파로스 스캔케어(AI 카메라)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이마트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유통산업 전시회 NRF APAC 2024에서 관람객이 신세계아이앤씨의 스파로스 스캔케어(AI 카메라)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이마트

정용진 회장이 이끄는 신세계그룹도 AI 기술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리테일테크 전문회사인 신세계 아이앤씨(I&C)는 2019년 5월 AI 전담 부서 ‘AX 센터’를 신설해 이마트, 이마트24 등 리테일 산업에 특화된 AI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해 왔다.

대표적으로 이마트는 AX센터가 개발한 ‘AI 신선 마크다운’과 ‘AI 카메라’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AI 신선 마크다운은 AI가 판매 실적과 재고 등을 고려해 최적 할인율을 추천하고 할인 라벨까지 자동으로 발행해 주는 기술이다. 해당 기술은 2024년 기준 델리(즉석조리) 코너 23개 점과 수산 코너 53개 점에서 활용 중이며 올해 적용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상품 스캔 누락 또는 계산 오류를 감지하기 위해 매장 셀프 계산대에 AI 카메라도 설치해 운영 중이다. 지난해 파일럿 테스트를 마친 AI 카메라는 올해 약 50개 점에 설치될 예정이다.

이마트24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부터 ‘AI 상품추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해당 점포와 유사한 점포를 AI 알고리즘으로 찾고, 현재 판매되지 않고 있는 상품 중 유사점포에서 판매량이 높은 상품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다. 경영주들은 서비스를 통해 최근 일주일간 유사점포에서 가장 판매량이 높았던 상품 25개를 추천받게 된다. 이때 단순 판매뿐 아니라 날씨와 행사 요일, 계절 등 복합적인 요인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SSG닷컴은 이미지 검색 서비스인 ‘쓱렌즈’에 상품 사진 정보, 이름, 브랜드, 세부 특징 등 문자 정보까지 학습한 인공지능 모델 ‘멀티모달 AI’를 탑재했다. 기존 쓱렌즈에서는 이미지 정보만을 활용해 비슷한 상품을 찾는 검색이 가능했다면, 멀티모달 AI가 적용된 쓱렌즈에서는 ‘검색어 추가’ 기능을 더해 이미지 검색 결과에 텍스트를 추가로 입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의류 이미지를 검색한 후 텍스트로 베이지색, 꽃무늬 등 상품 속성과 관련된 추가 검색어를 입력해 찾고자 하는 상품을 좁혀 나가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비슷한 상품을 빠르게 비교하며 쇼핑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쓱렌즈를 활용해 가방을 구매했다고 밝힌 직장인 경모씨(29)는 “친구들이나 연예인이 착용한 제품이 마음에 들어 상품을 구매하고자 할 때, 제품명 검색에 한 시간 넘게 할애한 적 있는데 쓱렌즈를 통해 단 몇 초 만에 원하는 제품을 찾았다”라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편해 앞으로도 자주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그룹, AI 기술로 효과적인 고객 관리

현대백화점 직원들이 스마트TV를 활용해 AI 카피라이터 '루이스'를 시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백화점그룹
현대백화점 직원들이 스마트TV를 활용해 AI 카피라이터 '루이스'를 시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백화점그룹

현대백화점그룹은 백화점업계의 특성을 반영해 광고 문구 제작, 고객 관리 등의 영역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023년 광고 문구, 판촉 행사 소개문 등 마케팅 문구 제작에 특화된 초대규모 AI 카피라이팅 시스템인 ‘루이스’를 도입했다. 연중으로 판촉 행사가 진행되는 백화점 업계 특성상, 자사의 색깔을 입힌 시스템을 실무에 투입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루이스는 현대백화점이 최근 3년간 사용한 문구 중 고객 호응을 얻었던 데이터 1만여 건을 집중적으로 학습했다.

놀라운 점은 루이스는 타깃 연령대까지 고려해 문구의 톤과 어투를 조절한다는 점이다. 같은 ‘아트페어’ 행사를 두고 타깃을 20대로 설정하면 ‘인싸가 되고 싶다면 현백으로 모여라’, 50대가 타깃인 경우에는 ‘예술이 흐르는 백화점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로 결과가 도출되는 식이다.

지난해에는 효과적인 고객 대응과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AI 시스템 ‘인사이트 랩스’를 도입했다. 인사이트 랩스는 현대백화점 홈페이지 ‘고객의 의견’ 메뉴에 컴플레인을 비롯한 고객 의견이 등록될 경우, 실시간 키워드 분석을 통해 카테고리에 따라 분류하고 글의 핵심을 도출한 뒤 해결 가이드를 안내하는 프로세스다.

예를들어, 백화점 내부에서 미끄러졌다는 의견이 올라오면 인사이트 랩스는 ‘안전사고’ 컴플레인임을 감지해 즉시 담당자에게 알림을 발송한다. 또 고객이 게시한 문장을 바탕으로 사고 장소와 원인, 경과, 부상 여부를 파악한 뒤 유사 사례 등을 분석해 적절한 대응 방식을 안내한다.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고객이 처한 불편함에 공감을 표현하면서 명확한 보상 방안과 재발 방지 노력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때 보상 방안으로는 치료비, 보상금, 세탁비, 추가 편의 제공 등 다양한 보상 종류와 범위 중 피해 고객 상황에 최적화된 보상안을 제시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해당 서비스에 대해 “리테일의 경쟁력은 고객의 쇼핑 경험을 얼마나 세심하게 관리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라며 “인사이트 랩스는 만족스러운 쇼핑 경험 제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쿠팡·GS리테일, “우리도 AI 자신 있어”

쿠팡이지난 2월부터 제주도 지역에서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사진=쿠팡
쿠팡이지난 2월부터 제주도 지역에서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사진=쿠팡

AI 도입 움직임은 빅3기업 뿐 아니라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먼저 쿠팡은 AI 시스템이 도입된 물류센터 구축으로 더 빠른 배송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구 풀필먼트 센터에서는 상품 진열, 포장, 분류 등의 작업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존에 직원이 일일이 수많은 상품이 담긴 선반 사이를 오가며 주문한 상품을 찾아다녀야 했다면, 이제는 무인 운반 로봇(AGV)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쿠팡은 AI에 기반해 고객의 주문 수요를 예측해 주문량이 많은 상품을 보관하는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을 구축해 지난 2월 유통업계 최초로 제주도에서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GS리테일도 AI 활용을 점포 관리와 상품 패키지 디자인뿐 아니라 무인 매장 운영, 안전 관리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GS25가 2023년 개점한 AI 기반 스마트 편의점 ‘GS25 DX LAB 가산스마트점’이 대표적이다. 해당 점포는 스마트폰 QR코드 등을 통해 입장하고 원하는 상품을 들고나오면 자동 결제되는, 이른바 ‘테이크앤고’(Take&Go) 편의점이다. 점포에는 ▲고객 행동과 상품 정보를 분석하는 딥러닝 AI 카메라 ▲상품 이동 정보를 수집하는 정밀 무게 감지 센서 ▲통합 자료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클라우드 POS 등 다양한 기술이 접목돼 있다.

아울러 CCTV에 AI 기술을 접목해 위험 상황을 자동으로 분석해 관리자에게 알람을 송출하는 ‘스마트 지능형 안전관리 시스템’도 도입했다. CCTV가 개점과 재단장 등 공사 현장 내 화재나 응급 호출, 안전모 미착용 등을 감지하면 클라우드 AI 플랫폼을 통해 GS25 관제센터에 자동으로 비상 알림을 보내고 이를 본사 안전 관리 책임자가 확인해 조치하는 방식이다.

유통업계에 부는 AI 바람은 올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AI 기술은 내부적 업무 효율화를 넘어서 더 편한 경험을 제공하는 필수적인 기술이라며 앞으로 유통기업의 AI 활용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