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18일(현지시간) 사우디라아비아에서 우크라이나전 종식 협상에 착수한 가운데 유럽 등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특사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등 러시아 대표단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종전협상을 시작한 상태에서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와 달라진 미국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결정은 강대국이 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종전협상에 우크라이나는 빠졌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기는 했으나 협상 자체는 미국과 러시아 주도로 이뤄지는 분위기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 담당 보좌관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 측과 협상하러 왔다"며 "순전히 양자 협의며 3자 간 회담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개전 초기 벌어진 수도 키이우에 대한 위협을 차단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여전히 전체 국토의 25%를 러시아에 점령당한 상태다. 크림반도부터 동부 요충지 대부분이 러시아의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당사국을 뺀 종전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공개된 독일 ARD방송 인터뷰를 통해 “미국 정부가 종전 협상안을 그냥 협상 테이블에 올려서는 안 된다”며 “아프가니스탄 2.0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은 물론 상실된 국토 수복에도 미온적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이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당사국을 뺀 후 기존 방식대로 협상을 진행하면 제2의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 셈이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국제 외교가에서는 일단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미국과 러시아의 종전협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물론 두 국가가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기에 선명한 종전 답안지를 이른 시일에 도출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연합의 강력한 비판에도 미국과 러시아가 일대일 종전협상을 강행한 행간에는 "모든 결정은 강대국이 내린다"는 메시지가 깔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복잡한 협상의 연결고리를 일단 무시하고 선명한 힘의 논리로 사태를 해결한다는 의지이자, 오래된 국제사회의 기본 대원칙이 또 한번 재확인됐다는 분석이다. 20세기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국제 대리전을 치른 대한민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들리는 대서양 동맹
미국과 유럽은 2차 세계대전 후 대서양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의 틀을 만들어 왔다. 패권국의 지위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온건하게' 넘어간 상태에서 굳건한 대서양 동맹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시대는 다르다. 1기 집권 당시에도 나토 분담비 문제 등으로 미국과 유럽은 날을 세웠으며, 2기 집권의 초반부인 지금도 분위기는 냉랭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이 유럽연합에 대한 관세부과 원칙을 재차 강조하며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지고 있다.
이번 종전협상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러시아와 일대일 종전협상에 들어가자 유럽연합이 강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소집으로 17일 파리 엘리제궁에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폴란드 등 8개국 정상이 집결해 종전협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종전 이후 미국의 도움 없이 러시아의 재침략을 막으려면 유럽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미국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유럽연합의 반대가 이어지고 있으나 협상 강행 의지를 꺾지 않는 중이다. 물론 어느정도 의식하고 있다는 액션플랜은 나오지만 유럽연합의 뜻에 그대로 따를 가능성은 낮다. 유럽연합 정상들이 핏대를 올리며 종전협상에 반대하고 있으나 커다란 임팩트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연합 정상들이 모여 지금의 종전협상을 반대하면서도 공동선언문은 채택하지 않고, 심지어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책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은 점에도 잘 드러난다.
추후 협상 과정에서 변수는 있으나 대서양 동맹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은 명확하다. 최근 영국과 독일 정치에 깊숙히 개입하는 트럼프 당선 일등공신 일론 머스크에 대한 현지의 반발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한편 종전 협상에 들어가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로부터 광물·항만 인프라 비용을 청구하는 한편 현지에 매장된 희토류 지분을 요구한 것 자체가 그의 '동맹도 비즈니스'라는 성향을 잘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우크라이나에게 지원에 대한 대가로 5000억달러(약 720조원)를 갚으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맹은 곧 비즈니스다. 대서양 동맹도 예외는 없다.

최종 상대는 중국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장담한 바 있으며, 실제 당선 이후 파격적인 행보로 이를 현실로 만드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미국의 국력 낭비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깔렸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중심으로 미국의 부흥을 꾀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국력을 갉아먹는 행위 그 이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토 분담금 인상 압박 및 해외 주둔 미군 비용 문제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비슷한 행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은 역시 중국에 꽂혀있다. 관세를 시작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가해야 위대한 미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경제적 측면에서는 미국을 압박하기 어려운 러시아와의 껄끄러운 문제는 해결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더 나아가 미국의 국력을 보전하면서 밀착행보를 보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도 일정부분 흔들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 및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러시아를 압박하자 러시아와 중국은 그 어느때보다 밀착했지만, 종전협상을 바탕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접점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러시아와 연대하기 시작한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종전협상에 돌입하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종전 협상에 탄력이 붙어 어느정도 성과가 나온다면 두 정상의 만남까지 성사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단계에 이르면 미국은 가자지구 문제까지 단박에 턴키로 정리한 후 본격적인 중국과의 결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