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한국 철강업계가 트럼프 2기 정권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악재를 만났다. 2023년부터 이어진 전방산업 침체와 중국산 철강재 저가 공습에 이어 무역 전쟁까지 예고되며 불확실한 시황이 점쳐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현지 기자들과의 담화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어떤 철강제품이든 25% 관세를 부과받을 것”이라며 “알루미늄도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새로 발표하는 관세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기존 관세에 추가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또한 상호관세 부과 계획도 공개했다. 상호관세는 상대국의 관세율에 맞춰 유사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상대국들이 미국에 130% 관세를 부과하는데, 우리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상황은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호관세는 트럼프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미국이 이같은 조치를 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중국이다. 현재 철강업계에서는 중국이 자국 내수로 소화시키지 못한 철강을 해외에 저가로 수출하면서 세계적으로 1억톤가량의 공급 과잉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도 중국산 철강 덤핑의 피해자로, 자국 철강산업 경쟁력 악화와 외화 유출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트럼프 정권 이전부터 있어왔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4년 4월 17일 “중국 정부와 중국 철강회사가 보조금을 매개로 부정행위를 하고 있다”며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현행 7.5%에서 세 배 이상 높인 25%로 높일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를 트럼프 정권 들어 본격 실행에 옮기고, 그 대상을 더 확대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또 다른 목표는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US스틸 경쟁력 제고다. US스틸은 올해로 설립 124년째 되는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와 존 피어몬트 모건이 설립한 이래 미국 산업 발전사와 발자국을 나란히 해왔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일본과 한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국가 차원 철강업 육성에 밀려 현재는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US스틸은 일본제철에 회사를 141억달러에 매각하는 방법으로 경영난을 탈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국가기간산업의 외국 매각을 경계하며 반대했고, 바이든-트럼프 정부도 연이어 매각에 부정적 견해를 뵈며 최종적으로 일본제철의 인수보다는 대규모 투자로 방향을 정했다.

트럼프는 정부의 반대로 단기 성장동력에 힘이 빠진 US스틸을 ‘관세’를 통해 되살리겠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그는 관세 정책을 발표하며 “관세는 US스틸을 매우 성공적인 기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산 철강이 미국 시장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동안 자국 철강업 본연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심산이다.

2024년 9월 4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US스틸 본사 앞에서 일본제철과의 합병을 지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US스틸 근로자들. 이들과 달리 US스틸 노조와 미국철강노조,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고용 불안과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합병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2024년 9월 4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US스틸 본사 앞에서 일본제철과의 합병을 지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US스틸 근로자들. 이들과 달리 US스틸 노조와 미국철강노조,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고용 불안과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합병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문제는 트럼프가 이러한 청사진을 실현하는 사이, 국내 철강업계와 글로벌 산업계엔 비상이 걸린다는 것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 철강 수출에서 미국은 물량 기준 3위(9.8%), 금액 기준 1위(12.4%)다.

최대 고객이 하루아침에 돌아설 위기다. 앞서 한국은 미국과의 철강 무역에서 한 차례 타협하고 손해를 감수한 전적이 있기에 더 뼈아프다.

역시나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일이다. 당시 한국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에 연평균 383만톤의 철강을 수출해왔다. 그러나 2018년 트럼프 정부에서 자국 철강업 보호를 명목으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내세운 후 상황이 달라졌다. 외국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역확장법 232조에는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품목의 수입을 대통령이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이 명시돼 있다. 미국의 쇠퇴한 공업지대 러스트벨트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국 철강업을 살리겠다는 포석이었다.

트럼프 1기 시절 한국은 고율 관세를 지불하는 대신, 자발적으로 수출 물량을 줄이는 쿼터제를 실시했다. 그로 인해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량은 2021년 200만톤대로 축소됐다. 반대급부로 263만톤 무관세 혜택을 받았지만, 과거 383만톤을 수출하던 때와 비교하면 손해가 막심했던 것이다.

이후 한국 철강업계는 글로벌 경기둔화와 미국·중국 등 주요 수요국의 부동산 침체가지 겹치며 업황 침체에 빠졌다. 포스코홀딩스 철강부문 영업이익은 2024년 1조4730억원으로 2023년 대비 29.3% 감소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2후판공장.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2후판공장. 사진=포스코

업계에서는 트럼프가 “미국으로 들어오는 어느 철강이든 25% 관세를 부과받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만큼, 쿼터제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미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중국산 철강이 타국에 더 심각한 덤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점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2023년 연간 조강 생산량은 10억1910만톤으로, 세계 총 생산량인 18억8270만톤의 54%를 기록했다. 지난 2020년 이후 4년 연속 생산량 10억톤을 돌파했다. 헝다 사태 등 부동산 시황 둔화로 내수 철강 수요가 감소했음에도, 전체 생산량 자체는 2022년보다 0.1% 늘어났다. 늘어난 생산량이 글로벌 덤핑으로 이어졌으며, 미주지역의 무역장벽에 막혀 다시 한국으로 몰릴 위기에 놓인 셈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타협을 끌어내기 위한 강수를 뒀다는 시선도 있다. 한 관계자는 “미국 연간 조강 생산량이 한국보다 떨어진다”며 “이는 노후화된 설비 교체, 인력 충원 만으로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자국내 철강 수요를 온전히 감당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국제적 철강 트렌드가 탄소중립과 친환경으로 흘러가는 현재, US스틸의 낙후된 설비로 제작한 철강은 국제 환경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내수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실제로 트럼프 정권은 지난 1기 시절에도 US스틸을 살리고 중국산 덤핑을 해소하고자 관세 정책을 펼쳤으나, US스틸의 경영난을 해소하진 못했다.

이번 조치로 알루미늄에도 25% 관세가 부과됨에 따라, 한국 알루미늄업계의 부담도 가중될 전망이다. 

미국은 한국산 알루미늄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지난 2023년 11월 중국산 알루미늄 제품이 한국에서 일부 공정만 거친 후 미국으로 우회수출 된다는 주장과 함께 롯데알미늄, 동원시스템즈 등 국내 알루미늄 포일 업체를 대상으로 반덤핑, 상계관세 부여 조치를 내린 전적이 있다. 

대상인 6개 사는 공동 대응에 나섰으나, 최종적으로95.15%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 예치율을 부과받아야만 했다. 해당 관세는 2022년부터 미국 내에 판매된 모든 제품에 대해 소급 적용됐기에, 수입자로선 이미 구매한 제품에 비싼 관세를 추가 부담해야 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이후 롯데알미늄은 원자재 추적 관리 시스템을 도입, 중국산 알루미늄의 유입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2024년 10월에는 미국 알루미늄 압출협회의 요청에 따라 국으로 수입되는 한국산 등 15개국의 알루미늄 압출재에 대해 반덤핑 조사가 최종 피해 없음으로 결론 나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한국철강협회에서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정부는 주미 공관을 비롯 동원가능한 모든 네트워크를 총력 가동해 구체적 내용을 파악 중에 있으며, 향후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업계와 긴밀히 공조하여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