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마트.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 사진=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후 탄핵 정국이 길어지고 있다. 예기치 않은 국정 공백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던 유통 관련 규제 개혁 역시 길을 잃었다. 지난해 고물가와 인구 감소로 홍역을 앓았던 유통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표류하는 유통산업발전법

지난 12일 강서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 앞. 굳게 닫힌 철문과 꺼진 실내 등에 장을 보기 위해 마트를 찾은 이들이 연신 “아 맞다!”를 외치며 발길을 돌렸다.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인 탓이다.

2013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공휴일 중 매월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정해야 한다. 의무휴업일 당일에는 온라인 배송도 모두 금지된다. 다만 이해당사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평일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유통산업 구조가 이커머스 중심으로 바뀌며, 해당 규제가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잇따른 규제 혁파 요구에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 완화를 ‘규제 개혁 1호’ 과제로 지정했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공휴일 중 월 2일을 의무휴업일로 정하는 원칙을 폐지하고 영업 제한 시간(0시~10시)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은 계류하다 시안을 넘겨 폐기됐다. 14일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개정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모두 9건 발의된 상태지만 탄핵과 여소야대 정국으로 처리가 쉽지 않아 보인다.

유통법 시행 이후 대형마트의 매출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개발연구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1월 전체 매출에서 대형마트와 온라인 마켓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8.1%와 44.1%였다. 그러나 2024년 11월 이 비율은 대형마트 11.0%, 온라인 마켓 53.0%로 나타났다. 점포 수 역시 유통법 시행 이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이에 유통법이 소비자들의 불편을 키운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커머스 이용이 어렵거나 전통시장 접근성이 낮은 소비자의 장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 서초구·동대문구, 충북 청주시 소비자 520명을 대상으로 ‘의무 휴업일 평일 전환’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1%가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절반 이상(53.8%)은 의무휴업 평일 전환이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돼야 한다고 답했다. 대형마트 폐점은 주변 상권의 매출 하락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통법 도입 취지와 달리 이제 전통시장이 대형 마트의 대체제가 아닌 시대가 됐다."며 "절대 강자인 온라인 시장의 등장으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상호를 보완하는 존재가 됐다."라고 말했다. 또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은 더이상 효용성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면세점 특허 수수료, 산정 기준 놓고 갈팡질팡

롯데백화점 면세점. 사진=연합뉴스
롯데백화점 면세점. 사진=연합뉴스

멈춰있는 규제로 몸살을 앓는 것은 대형마트뿐만이 아니다. 고환율과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트렌드 변화로 불황을 맞은 면세점업계는 해묵은 ‘특허 수수료’ 산정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허 수수료는 면세점 이익의 사회 환원을 위해 이익의 일정 비율을 징수하는 제도다. 초반에는 사업장의 ‘면적’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산정했으나, 2014년 이후 선정 기준이 ‘매출액’으로 바꿨다. 업계 호황으로 대기업 중심의 면세점이 큰 매출을 기록한 데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최근 면세점 매출이 감소하며 회사마다 자구책으로 점포 수를 줄이고 중국인 보따리상과의 거래를 중단하고 있다. 사정이 어려워짐에 따라 현행대로 특허 수수료를 산정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가 지난해 말 매출 감소를 이유로 특허 수수료 50% 인하 방침을 발표했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수수료 감면이 근본적은 해결책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4월 대한상공회의소는 ‘2024 킬러·민생규제 개선과제’를 정부에 전달하며 면적 또는 영업이익으로 부과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건의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일본은 면적을 기준으로 태국과 호주는 정액제로 수수료를 부담한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이미 영업료를 내는 상황에서 특허 수수료를 내는 것은 일종의 이중 과세라고 생각한다”며 “몇 년 동안 영업이익 역시 마이너스 수준이라 수수료 산정 방식이 개선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유통업계를 옥죄는 규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가맹점주의 단체교섭권 부여를 골자로 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며 프랜차이즈 업계와 가맹점주 간의 공방이 뜨겁다. 정부가 지난 10월 전후로 공언한 홈쇼핑 경쟁력 강화 방안 발표 또한 미뤄지며, 홈쇼핑업계 역시 송출 수수료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민생 법안 처리 시점에 유통업계와 소비자들의 불편과 불안이 장기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