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이앤씨 디타워 돈의문 사옥. 사진=DL이앤씨 제공
DL이앤씨 디타워 돈의문 사옥. 사진=DL이앤씨 제공

건설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 건설사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산 매각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 미분양 증가 등으로 재무 부담이 커지면서 주요 자산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안정적인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모습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공사비지수는 지난해 9월 기준 역대 최고치인 130.45를 기록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공사에 투입되는 재료·노무·장비 등 직접공사비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지표로, 2020년 지수 100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작년 11월 건설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 대비 4.0포인트 하락한 66.9를 기록했다. CBSI는 건설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기를 지수화한 것으로, 100을 밑돌면 현재의 경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사비는 오르고 건설사들이 바라보는 체감경기는 비관적인 상태다.

자산 매각으로 현금 확보에 나선 건설사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건설사들은 자산 매각을 통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체가 공시한 유형자산 양도와 타법인 주식 및 출자 증권 처분 결정 공시는 1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2건, 2022년 6건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DL그룹 지주사인 DL는 작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디타워 돈의문 매각을 통해 전체 매각대금  8953억원 중 1300억원을 확보했다. 이 빌딩은 마스턴투자운용이 2020년 펀드를 조성해 매입한 펀드로, 당시 DL은 이 펀드에 출자해 주요 투자자로 매입에 참여했다.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214억원으로, 한 분기 영업이익에 달하는 유동성을 확보한 것이다. DL 관계자는 “디벨로퍼로서 우량 부동산에 대한 선점과 관리, 매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며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 자산 효율화를 통해서 현금 유동성이 한층 풍부해졌다”고 밝혔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11월 '동탄2대우코크렙뉴스테이기업형임대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 주식 180만주를 1800억원에 매각했다. 이 회사는 대우건설이 2015년 설립한 시행사로, 기업형 임대주택 단지인 동탄행복마을푸르지오 단지를 분양하기 위해 설립됐다.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은 8년 임대 기간이 끝난 뒤 분양 전환해야 수익이 발생하는데, 지분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조기에 확보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GS건설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회사 GS엘리베이터 매각에 이어 GS이니마 매각도 추진 중이다. GS건설은 지난해 10월 GS엘리베이터 주식 412만5000주를 66억원에 매각하는 매매계약이 종결됐다고 공시했다. GS이니마는 스페인 기반의 종합 수처리 회사로, GS건설 신사업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주요 사업으로 꼽힌다. 예상 매각 규모는 1조3000억원에서 1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태영건설은 작년 9월 SK그룹 리츠 투자·운용 전문 기업인 디앤디인베스트먼트(DDI)에 서울 여의도 태영빌딩을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금액은 2251억3500만원이다. 태영건설은 워크아웃에 따른 자구안의 일환으로 사옥 매각을 추진해왔다. 코오롱글로벌도 서울 서초구 ‘서초 스포렉스’ 복합 스포츠시설 부지와 건물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4301억원에 양도한다고 공시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그룹 사옥 전경. 사진=태영그룹 제공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그룹 사옥 전경. 사진=태영그룹 제공

미분양 증가와 매출채권 확대…지속되는 재무 부담

국내 건설사들의 재무 부담은 미수금 증가로 매출채권 규모가 커지면서 심화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에 따르면, 주요 건설사들의 매출채권 규모는 2022년 말 20조5000억원에서 2024년 9월 말 31조9000억원으로 55.5% 증가했다. 이는 자체사업장 분양미수금과 공사미수금 증가, 추가 원가 발생에 따른 미청구 공사 확대 등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분양실적 부진으로 준공 후 미분양 물량도 급증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1만8644가구로, 2022년 말 약 8000가구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2020년 7월(1만8560가구) 이후 4년 4개월 만에 최대치다.

전문가들은 건설 경기 부진과 미분양 누적이 지속되면서 건설사들의 유동성 확보 노력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창수 나신평 기업평가본부 책임연구원은 “건설사들이 낮은 영업실적과 운전자금 증가로 2022년 이후 순현금유출 기조를 보이고, 순차입금 규모도 지속 증가하고 있다”며 “미분양 누적에 따른 매출채권 회수가능성 저하를 감안하면 당분간 부진한 현금창출력으로 재무부담 상승 추이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증액과 부동산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건설업계가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올해도 공사 물량과 건설투자 감소 등의 여파로 건설경기 침체가 예상돼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산 매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자산 매각으로 사업 구조 재편

한편, 자산 매각이 재무구조 개선뿐만 아니라 사업 구조 효율화와 신사업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GS이니마가 매각된다고 가정하면 재무구조 개선뿐만 아니라 신사업 재편도 탄력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GS건설은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지나치게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신사업의 종류를 보다 단순화 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한, SK에코플랜트도 자회사 매각을 통해 비용 절감과 사업구조 재편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 공시를 통해 미국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업 ‘어센드 엘리먼츠’의 주식 922만3555주를 SKS 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매각금액은 9823만달러로, 한화로 약 1316억원이다. 앞서 SK에코플랜트는 이 회사에 총 6084만달러를 투자했으나, SK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사업구조 재편에 따라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니마의 칠레 아타카마 해수담수화시설 전경. 사진=GS건설 제공
이니마의 칠레 아타카마 해수담수화시설 전경. 사진=GS건설 제공

올해도 건설 경기 부진 지속 전망…정부 역할 필요

다만, 건설 경기 부진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2025년 건설경기 전망'에 따르면 올해 건설투자 규모는 지난해 대비 1.2% 감소해 300조원을 밑돌 전망이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계 체감 경기는 물량 감소, 경쟁 심화, 이익률 저하 등으로 위축된 상황”이라며 “건축 착공이 2022~2023년 큰 폭으로 줄어들어 올해도 건설 경기 부진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건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인프라 투자 확대와 건설금융 시장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지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침체된 건설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인프라 투자 및 건설금융 시장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며 " 건설기업은 유동성 및 재무안정성 관리, 기술 투자를 통한 중장기적 경쟁력 제고 방안 모색, 포트폴리오 다변화 노력 지속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