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PSA항에서 하역 작업 하는 HMM 오슬로호. 사진=HMM
싱가포르PSA항에서 하역 작업 하는 HMM 오슬로호. 사진=HMM

2025년은 세계 해운업계에 있어 유독 불확실성이 큰 해가 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권 출범과 미-중 관세전쟁을 필두로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여부 등 다양한 변수가 산재했다.

변수에 편승해 시장에서 새롭게 중심지로 떠오르는 지역들이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아세안’ 지역과 ‘중동’ 지역이다. 이들은 홍해사태로 인해 대체 항로로 주목받은 데 이어, 최근 오프쇼어링(제조업 해외 이전)과 니어쇼어링(제조업 인접국 이전)으로 대표되는 국제적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받고 있다.

아세안, 유럽과 아시아 잇는 차세대 제조업 허브로 부상

글로벌 수출입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는 지난 10일 글로벌 해운시장의 대전환을 전망하는 ‘2025 글로벌 해운시장 전망 - STORM 시대의 항해’ 리포트를 발간하고 아세안과 중동 신흥국의 물류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허브화가 가속되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삼성전자, LG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베트남은 2024년에만 5.6%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2025년에도 5.4%가량 고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전자제품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로 전환을 이끌고, 다시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됐다.

인도네시아 역시 2024년 5.1% 2025년 5.2%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2억7000만명에 달하는 막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관광산업부터 천연자원 수출,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 산업단지 구축까지 적극 추진 중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도 이어진다. 인도네시아 투자청(BKPM)의 자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해외기업 직접투자 현황은 2023년 기준 503억달러(72조원)으로 2022년 대비 10% 증가했다. 이 중 제조업 등 2차 산업이 287억달러로 57%, 3차 산업이 148억달러로 29%를 차지하며 떠오르는 ‘세계의 공장’이 됐음을 입증했다.

태국은 2024년과 2025년 나란히 2.9%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전기차 산업 부문에서 타국보다 빠르게 투자를 유치하고 있어 향후 전기차 밸류체인 관련 물류의 요충지로 떠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아세안 지역의 성장세는 지역 주요 항만들의 물동량 증가에서도 나타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후티 반군이 홍해를 봉쇄하자 대체 항로의 필요성이 증대되기 시작했고, 동서양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인 데다 현대적 물류 인프라를 갖춘 싱가포르항이나 말레이시아 포트클랑 등이 주요 허브항으로 떠오른 것이다.

컨테이너 시장정보업체 ‘라이너리티카’가 제공하는 글로벌 컨테이너선 항만 혼잡 현황을 보면, 12월 8일 기준 싱가포르항에 32만4309TEU가 적체되며 45만7349TEU를 쌓아놓은 중국의 상하이/닝보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중동, 오일 머니 범국가적 첨단 물류 투자

아세안 지역이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와 제조업 허브화로 성장한다면, 중동은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첨단 물류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부상하고 있다.

WTO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중동의 수입량이 19.3%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연합국(UAE)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 물류 허브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빈 살만 왕세자를 주축으로 대규모 도시 개발 프로젝트 ‘네옴’을 추진 중이다. 여기엔 연간 150만TEU의 컨테이너 처리 능력 확보도 포함돼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이러한 대규모 투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2025년 성장률을 4.7%로 견인할 것으로 예상했다.

UAE의 두바이 다국적 물류회사 ‘두바이 포츠 월드(DP 월드)’는 디지털화와 자동화 기술을 도입한 물류 효율화를 추구한다. 트레드링스는 리포트에서 “DP 월드는 AI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프로세스를 최적화 하고, 항만 작업의 실시간 모니터링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처리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다”고 설명했다.

중동 지역이 물류 인프라 확장에 힘쓰는 이유는 오일머니의 한계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으로 미국이 거대 산유국이 되면서 OPEC+가 유가 결정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가 반등을 위해 수년간 감산을 추진했으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사우디 국부펀드 PIF의 현금 보유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약 75%가량 감소한 상황이다. 일련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동서양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특성을 살려 물류산업 강화에 나선 셈이다.

다만 중동은 여전히 홍해사태라는 변수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만큼, 트럼프 2기 정권 출범 이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향방에 따라 성장세가 결정될 전망이다.

미국 디커플링 악재 맞은 멕시코, 농산물 공급자로 각광 받는 남미

중남미 역시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에서 남미산 농산물 수요가 증가하며 농산물 교역이 확대되고, 항만 현대화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브라질의 대중국 수출은 대두 및 옥수수가 중심이 되며, 2022년 전체 수출 기준 61%에 달한다. 이런 기조는 2025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며, 브라질은 늘어나는 수요와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생산량 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산투스 항만의 디지털화와 자동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북부 회랑’ 프로젝트를 통해 아마존 지역의 새로운 수출 루트를 개발하고 운송 시간을 최대 7일까지 단축하는 것을 꾀한다.

아르헨티나는 2025년 경제 성장률 4.8%가 예상된다. 수출 부문이 다시 정상궤도에 오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로사리오 항만 대규모 확장 프로젝트를 통해 2025년까지 곡물 수출 터미널의 처리 능력을 40% 이상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한다.

남미 농산물 수출은 아시아 지역의 수입 성장률과도 맞물린다. 아시아의 수입 성장률은 2024년 4.3%, 2025년 5.1% 전망이다. 세계적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식량 생산과 수출 능력을 대거 상실하면서 생긴 공백을 남미가 채우는 그림이다.

반면 2023년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한 멕시코의 상황은 미묘하다. 트럼프 2기 정권이 노골적으로 멕시코의 이권을 제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권은 기존 중국-멕시코-미국으로 이어지는 삼각무역을 통해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한다고 판단한다. 최근 중국에 60%의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멕시코에도 25%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이유다.

미국과의 디커플링이 현실화되면 글로벌 선사들이 앞다퉈 노선을 신설하던 멕시코의 성장세가 주춤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농산물 교역을 바탕으로 성장한 남미 국가들이 중남미 물류 허브로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