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한국의 정치적 리스크가 커지며 그동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체코 원전 수주 등 핵심 국정과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들은 향후 정책 실행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기울이는 반면, 업계에서는 정치적 리스크 여파로 에너지 정책의 난항이 예고된다. 다만 큰 틀에서는 생태계 전반이 극적인 힘을 받아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원전 ‘르네상스’ 신호탄 체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경북 울진군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열린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경북 울진군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열린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체코 정부는 지난 7월 17일 체코 남부 두코바니 지역에 1000㎿(메가와트) 규모 원전 2기를 짓는 신규 원전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을 주축으로 한 ‘팀코리아’를 선정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폐기하면서 원전 생태계 정상화에 집중해왔다. 체코 원전 수출은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성과로 주목받기도 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원전 산업의 발전과 지속적인 일감 확보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SMR(소형모듈원자로) 등의 신규 원전 건설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체코 원전 사업 수주를 위해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체코를 순방,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국내 4대 그룹 총수가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지난 9월 ‘한-체코 비즈니스 포럼’에서 윤 대통령은 체코 기업인들과 만나 “이제는 ‘팀 코리아’에서 ‘팀 체코리아(Czech-Korea)’가 돼 원전 르네상스를 함께 이뤄나가자”고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시작으로 현대건설은 지난 11월 4일(현지시간)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대형 원전 설계를 수주하며 15년 만에 해외 원전 사업을 재개했다. 총사업비는 20조원으로,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액과 비슷한 규모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본 계약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체코 원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사업지가 될 전망이다.

고준위·전기본 등…“사실상 물 건너갔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사진=연합뉴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사진=연합뉴스

당초 계획에 따르면 연말까지 세부 협상을 거쳐 내년 3월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탄핵 정국을 비롯해 대외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계약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원전 산업 지원 법안들의 국회통과도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원전의 지속적 운영을 위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의 통과를 바라는 목소리를 높여 왔다. 원전 부지 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임시 저장시설 용량이 이르면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건설 기간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11차 전기본)도 국회 보고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확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회보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당초 연내 처리가 목표였지만 이조차도 어렵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까지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전(SMR) 발전 투입 등 에너지 계획이 담겼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이코노믹리뷰>와의 통화에서 “(11차 전기본) 보고가 진행돼야 전력망 신규 건설 계획, 가스 수급 계획 등 후속조치로 마련해야 할 계획이 많다”면서 “고준위 특별법 등의 사안들이 계속 미뤄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K-원전, 포기하긴 이르다

체코 테믈린 원전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체코 테믈린 원전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업계에서는 원전을 비롯한 국가 에너지 정책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극단적 상황속에서도 원전 확대에 대한 논의는 계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동욱 교수는 “(원전 산업 관련)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탄소중립을 하기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 세계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도 원전을 확대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전 산업 생태계가 과거로 회귀해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정부에 따라 지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체코 원전 수주를 계기로 국민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국 대선 당시에도 (공화당·민주당) 당선 여부에 따라 원자력 정책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면서 “체코 원전 수주를 비롯해 원자력은 한국의 유력 수출상품 중 하나다. 변화되는 것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K-원전의 순항은 추가 수주에서도 드러난다. 

한수원이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와 체르나보다 원전 1호기 설비개선사업 최종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은 월성원전과 동일한 캔두(CANDU)형 중수로인 체르나보다 1호기의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추가 30년의 계속운전을 목표로 진행되는 약 2조8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이번 수주는 한수원이 50여 년간 축적한 운영 및 정비 기술력을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다시 인정받은 사례”라며 “체르나보다 원전의 성공적인 설비개선을 통해 한수원의 글로벌 입지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국내외 불확실성에 대응해 정책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한다는 입장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9일 주요 간부가 참석하는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국내 정치 상황으로 경제 상황이 매우 엄중한 만큼, 실물 경제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신속 대처할 것”을 당부했다.

또 “대외 신인도의 안정적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상 협상 및 국가 간 협력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에너지 수급에도 문제없도록 만전을 기하는 한편, 안전 점검과 사이버 보안 관리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