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금융권 인사에서 보험업계와 카드업계가 상반된 전략을 선택하며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보험업계에서는 대부분의 CEO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유지한 반면, 카드업계에서는 금리 인하로 변화한 시장 환경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 주요 3개사가 CEO를 전원 교체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보험업계에서 안정적인 리더십을 유지하는 전략을 선택한 이유는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영진의 경험과 노련함이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필수 요소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강화된 금융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는 필요성도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카드업계는 금리 인하로 인해 변화한 시장 환경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삼성카드,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주요 3개 카드사는 CEO를 전원 교체하며 변화와 혁신을 선택했다. 디지털 전환과 신사업 발굴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려는 카드업계의 전략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기존 수익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렵다는 위기감 속에서, 보다 혁신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보험업계, 안정적인 리더십 기조 유지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그룹은 자회사 13곳 중 8곳의 사장을 교체하며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지만, 보험사인 신한라이프와 신한EZ손해보험은 예외였다. 두 회사의 대표이사인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와 강병관 신한EZ손해보험 대표는 연임에 성공하며 각 1년의 추가 임기를 부여받았다.

이영종 대표는 그간 뛰어난 경영 성과를 통해 업계 2위 도약이라는 목표를 견인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한라이프 관계자는 이 대표의 연임을 두고 "안정적인 리더십 아래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 이라고 설명했다.

강병관 신한EZ손해보험 대표도 전산 시스템 구축과 조직 정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본격적인 영업 준비를 마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신한금융 측은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리더십으로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했다"며 연임 배경을 밝혔다.

윤해진 NH농협생명 대표 또한 이달 임기 종료를 앞두고 연임 여부가 긍정적으로 점쳐진다. 업계에서는 윤 대표의 체제 아래 올해 NH농협생명이 3분기까지의 당기순이익 2478억원을 기록하고, 킥스 비율은 399.2%를 기록하며 권고치인 150%를 크게 웃돈 점을 들어 윤 대표의 연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농협금융 계열사 대표의 연임 사례가 드문 만큼, 윤 대표의 연임 여부는 그룹 전략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와 나채범 한화손해보험 대표는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한화 계열사의 연임 사례가 잦았던 점을 들어 양 대표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두 대표의 연임 여부는 내년 초 예정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종적으로 확인될 예정이다.

KB라이프생명은 이환주 대표가 KB국민은행장으로 이동하며 정문철 KB국민은행 부행장이 새 대표로 추천됐다.

삼성생명,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등 주요 보험사 대표이사들은 대부분 임기가 남아 있어 연말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삼성생명의 홍원학 대표와 DB손해보험의 정종표 대표는 2027년 3월까지, 현대해상 조용일 부회장과 이성재 사장은 2026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다.

카드업계, 주요 3개사 CEO 전원 교체


카드사들은 보험사와 달리 대대적인 리더십 변화를 선택했다.

삼성카드는 현 김대환 삼성카드 사장의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음에도 김이태 삼성벤처투자 사장을 차기 CEO로 내정했다. 김 내정자는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을 거쳐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긴 후 삼성벤처투자를 이끌어온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박창훈 페이먼트그룹 본부장을 신임 CEO로 내정했다. 박 본부장은 신한카드의 전신인 LG카드에 입사해 30년 이상 카드업에 몸담아 온 베테랑이다. 부사장 직급 없이 본부장에서 바로 사장으로 승진한 이번 인사는 업계에서도 파격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KB국민카드도 김재관 KB금융 재무담당 부사장을 신임 CEO로 선임했다. 김 부사장은 KB국민은행에서 중소기업고객부장, SME기획부장 등을 역임하며 기업금융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카드사 CEO 교체의 배경에는 달라진 시장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2022년부터 이어진 금리 인상 국면 속 카드사들은 건전성을 최우선으로 삼은 보수적인 경영 전략을 유지해왔다. 고금리 기조 속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대출과 할부 이용이 줄었고, 이에 카드사는 리스크 관리를 경영의 핵심 과제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금리가 인하 기조로 전환되며 카드업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금리 하락은 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소비 여력을 회복시켜 카드 사용 증가를 촉진시키는데, 이는 카드사들에게 시장 점유율 확대와 수익성 강화를 위한 기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카드업계는 새 리더십을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존 수익 구조만으로는 장기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위기감 또한 이번 카드사의 인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간 금융당국이 카드사의 주요 수입원인 수수료 적격비용의 인하를 지속 압박해옴에 따라 업계 전반에서는 디지털 전환과 신사업 발굴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혁신적인 리더십을 도입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이번 인사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내려가면서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는 시점에 카드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며 “새 경영진이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