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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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위기, 내수 약화, 수출 둔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정치권의 탄핵 공방으로 인해 667조원 규모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안개 속에 갇혔다. 주요 경제연구원들은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내년 한국경제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와중에 야권은 오히려 예산안을 추가 삭감하겠다고 언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1월 2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에서 정부 예산안을 4조원 이상 감액한 수정안을 단독 처리했는데, 비상 계엄 사태로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된 야당 대표는 예산안을 더 삭감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단기 경기부양책 도입 통해 성장 경로 이탈 막아야"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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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구원은 8일 '한국경제 수정전망' 보고서에서 수출 둔화 등으로 내년 한국 경제가 올해보다 1.7%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경기부양책을 통해 성장 경로 이탈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내년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1.7%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9월 당시 2.2%보다 0.5%포인트(p)나 낮아진 수준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에 머물 것으로 예상됐다.

민간소비에 대해서는 "금리 하락과 가계 가처분소득 확대, 기저효과 등에 따라 소폭이나마 회복될 것"이라면서도 "고용 환경 악화와 자산시장 불안정 등이 소비 회복세를 제한할 가능성이 커 본격적인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수출과 관련해서는 "세계 경제가 중(中)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주요국 수입 수요가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경기 회복세도 지속돼 수출 증가세가 유지될 것"이라며 "올해 큰 폭 증가세의 기저효과로 증가율은 다소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내년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을 하회할 정도로 성장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성장 친화적 정책 기조를 강화하고 단기 경기부양책 도입 등을 통해 성장 경로 이탈을 막는 동시에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IB들도 한국경제의 전망에 대해 한층 더 어두운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달 5일 발간한 보고서에 "2025년 한국 경제는 글로벌 경기 순환에 따라 다른 지역보다 강달러와 높은 장기 금리, 관세 불확실성 등의 역풍에 더 많이 노출돼 있어 거시경제 환경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며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계엄 사태에도) 수출 약세와 소비 회복 지연에 대한 기본 전망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7%로 이미 하향 조정했다.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의견은 '중립'에서 '비중 축소(매도)'로 낮춘 상태다.

더 나아가 모건스탠리는 "불확실한 정책 환경을 고려할 때, 탄핵 가능성과 대통령 교체가 경제 전망에 대한 가계와 투자자들의 우려를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내수·투자 활동의 하방 리스크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암울한 한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예산 투입을 통해 경제 회복을 위한 마중물을 넣어줘야 한다. 주요 경제연구소에서 단기 경기부양책 도입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만큼 시기가 급하기 때문이다. 

경제팀 "경제 문제만큼은 여야 관계 없이 조속히 처리해 달라" 호소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관계부처 합동 성명을 통해 야권을 향해 경제 문제만큼은 여야와 관계 없이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2025년 예산안이 내년 초부터 정상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신속히 확정해 주시길 요청드린다"며 "경제안정을 이루고 대외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도 국회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가 성명을 발표하기 몇시간 전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담화문에서 "내수부진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이 적지 않다"며 "비상시에도 국정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통과가 필요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대국민 담화문이지만 이 대목에서는 사실상 야권을 향한 간절한 읍소에 가까웠다.

여야 간 예산안 합의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달 2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민주당의 증액 없는 '감액 예산안'을 국회 본회의에 올리는 것을 연기하며 오는 10일까지 처리를 예고했지만,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선포 이유로 야당의 '예산 폭거'를 지적하면서 예산안 처리는 불투명해졌다. 12월 정기국회(418회) 회기는 이달 10일 종료된다.

박찬대 원내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의원 170명 전원의 소집 요구로 바로 다음날인 이달 11일 임시국회(418회)가 소집되지만, 야권이 임시국회를 곧바로 소집하는 이유는 윤 대통령 탄핵안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주된 목적이다. 여야간 예산안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커보이지 않는다는게 정계 안팎의 시각이다. 

계엄 사태에 주도권 잡은 야권 "총리 협조 요청 불쾌...오히려 추가 삭감조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대국민 공동 담화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대국민 공동 담화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달 10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예산을 추가 삭감하겠다고 밝히면서 여야 합의는 더 멀어졌다.

오히려 이 대표는 "예결위에서 필요한 것들을 했지만 지금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추가 삭감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 총리의 공동 담화문 발표 이후 "한 총리가 필요한 것은 적절한 수사기관에서 국무회의 내란 가담 여부를 수사받는 것"이라며 사실상 여당과 예산 논의에 선을 그었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허영 민주당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정부안 통과에 협조를 구한 것을 두고 모 경제지에  "상당히 불쾌하다"며 "탄핵이 이뤄졌으면 경제가 점프업할 기반이 마련됐을 텐데 이걸 걷어찬 게 한동훈 체제와 여당"이라고 비난했다.

또다른 경제지에는 "더 많은 삭감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이 자진하야하든, 여당이 탄핵안을 받든 해야 제대로 된 예산안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를 살릴 골든타임을 놓고 윤 대통령의 거취 문제와 연계해 협상하는게 상식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산을 볼모로 탄핵을 흥정하려는게 아니냐"라는 시각도 있다.

초유의 '준예산 편성' 가능성...주요 경제 법안 좌초 위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내년도 예산안 확정이 무기한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 점이다. 

헌법 제54조에 따르면 새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하면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다음 항목에 대해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다.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이 성립되지 못할 경우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 의무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 등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하는 것을 '준예산'이라고 한다. 

준예산 체제로 갈 경우 내수부흥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각종 경제정책인 '재량지출'은 발이 묶인다. 정부 재정지출은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나뉘는데, 준예산은 의무지출에 대해서만 집행되기 때문이다. 내수 관련 예산은 대부분 재량지출에 해당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보호무역기조 강화, 수출·내수 동반 약화, 달러 초강세 등 한국경제 안팎으로 유례 없이 악화된 환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 예고됐다.

이 뿐 만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시급히 처리돼야 할 반도체특별법과 상속세제 개편안 같은 주요 경제 법안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고 밸류업과 양극화 해소 정책도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비상계엄 선포 과정의 불법은 철저히 따져 묻되 경제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자세로 예산과 경제 법안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학계와 경제·산업계 곳곳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