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지 50주년을 앞두고 위기론에 빠진 삼성전자가 다시 한 번 초격차를 확보하기 위해 고삐를 쥔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에게 힘을 몰아주고, 연구개발(R&D)에 집중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업계 관심이 주목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6일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지 50주년을 맞이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과감한 투자와 꾸준한 연구개발로 ‘초격차 경쟁력’을 선보이며 D램 용량과 반도체 매출 규모를 50만배로 늘리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 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1974년 12월 6일 당시 삼성 계열사 이사였던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시작됐다. 이후 시계와 TV에 들어가는 단순 기능의 칩만을 만들던 삼성은 1983년 ‘도쿄선언’을 기점으로 최첨단 칩 생산에 나선다.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에 나선 삼성은 기흥 공장을 지은 후, 6개월 만에 64Kb(킬로비트) D램을 독자 힘으로 개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첨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1989년까지 일본의 도시바, NEC,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이어 4위를 기록했던 삼성은 1992년 마침내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올랐다. 이후 삼성은 계속해서 메모리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줄곧 1위 자리를 고수했던 삼성전자의 자리가 위협받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 시작됐다. 2022년말 챗GPT가 등장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AI붐이 불자 AI서버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작년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사실상 독점으로 HBM3를 납품한데 이어 올해에도 HBM3E 납품 물량 대부분을 가져갔다. 반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HBM 기회를 놓치게 됐다. 엔비디아는 AI 서버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의 반도체 회사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2019년 HBM 연구개발팀 해체를 결정했고, 이 같은 실기가 지금의 격차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파운드리 분야에서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TSMC와의 기술 격차로 인해 현재 애플, 퀄컴, 구글 등 미국 주요 고객사의 수주를 못 따내고 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가동률 하락으로 조단위의 영업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반도체 경쟁력 회복에 초점을 맞춘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며 메모리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강화하고 파운드리 사업부 수장을 교체했다. 이에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이 7년 만에 메모리사업부장을 겸하기로 했다.
업계는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게 뒤지고, 범용 메모리에서 중국 기업의 추격을 허용한 메모리 사업부를 새인물에게 맡길 것으로 전망했으나, 삼성전자는 전영현 부회장에게 힘을 몰아주는 결단을 내렸다.
전 부회장은 메모리 사업부장 자리와 함께 SAIT 원장 자리도 함께 맡으면서 기술 개발부터 사업전략까지 메모리 반도체 전 영역을 직접 이끌게 된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빠른 의사결정으로 속도감 있게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AIT는 삼성전자의 최상위 연구조직으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삼성전자의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한 파운드리 사업부장으로 한진만 DS부문 미주총괄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선임했으며, 파운드리 사업부의 기술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사장급 CTO(최고기술책임자) 자리를 신설했다.
파운드리 사업부 CTO 자리에 오른 남석우 사장은 반도체 공정개발 및 제조 전문가로, 반도체연구소에서 메모리 전제품 공정개발을 주도했고 메모리/파운드리 제조기술센터장, DS부문 제조&기술담당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선단공정 기술확보와 제조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향후 고객 공략은 한진만 사장이, 기술 개발 주도는 남석우 사장이 책임지면서 TSMC와의 격차를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어 삼성전자는 반도체 성공 신화의 근원인 혁신 기술 개발을 통해 초격차를 되찾을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달 경기 용인시 기흥캠퍼스에서 차세대 R&D 단지 ‘NRD-K’의 설비 반입식을 개최했다.
NRD-K는 2030년까지 20조 원이 투자되는 최첨단 반도체 R&D센터다. 연구소가 들어선 기흥캠퍼스는 삼성전자가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 선언’ 이후 반도체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한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전 부회장은 설비 반입식 자리에서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근원적 연구부터 제품 양산에 이르기까지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연구소 구축을 통해 삼성의 쇄신에 가속도가 붙을 것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