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가 본격적인 인사철을 맞은 가운데, 국내 주요기업 오너일가 3·4세들이 잇달아 승진하며 ‘세대교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의 변화로 신사업 발굴이 주 과제로 꼽히면서 ‘젊은 피’ 수혈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젊은 피로 ‘세대교체’

28일 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단행된 인사를 종합했을 때 ‘세대교체’와 ‘쇄신’이 주 키워드로 뽑힌다. 올해 국내 100대 기업 임원 중 1970년대 생의 활약이 돋보이는 상황에서 오너일가 3·4세를 전면 배치해 분위기 반전을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6일 발표된 LS그룹 임원 인사가 그 예다. LS그룹은 오너가 3세를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내세웠다.
고(故) 구자명 전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장남인 1977년생 구본혁 예스코홀딩스 대표이사는 부회장으로 승진,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1982년생 구동휘 LS MnM 대표이사가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다. 구자철 예스코홀딩스 회장의 장남인 1984년생 구본권 LS MnM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최근 HD현대 사장단 인사에서는 ‘범(凡)현대가’ 3세로 1982년생인 정기선 부회장이 승진 1년 만에 수석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LX그룹에서는 그룹 경영개발원 역할의 LX MDI를 이끌어온 1987년생 구형모 대표이사가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앞서 조기 인사를 단행한 1983년생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도 한화임팩트 투자부문 대표이사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인사 조치로 재계에서는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소통되는 오너, 경영 평가 기준은?

전문가들은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혁신적 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경영인 대신 오너가 3·4세들에게 경영권 승계가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경영인을 내세워 신사업발굴에 더욱 속도를 낸다는 전략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이코노믹리뷰>와의 통화에서 “(전문경영인 대신) 오너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 사업을 주도하면 의사 결정 과정의 속도감이 강하다”면서 “문제 발생시 이들을 중심으로 해결하고 교체하는 부분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회의와 보고, 결제의 시스템 속에서 더욱 효과적인 사업 진행을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임원진의 ‘세대교체’에도 더욱 집중하는 분위기다. 최근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임원 7400여명 중 1975년 이후 출생자는 18.7%로, 내년에는 해당 사례가 2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젊은 오너와 소통할 수 있는 임원진을 배치해 원활한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글로벌 정세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트럼프 2기’에 본격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등에 대한 폐지 및 축소를 공언한 바 있다. 전기차, 반도체, 태양광 등 국내 기업들에 민감한 정책변화인 만큼 빠른 대응을 진행한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내각 구성이 30대부터 50대 사이의 ‘젊은 피’로 구축돼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트럼프2기 내각과 백악관의 장관급 인사 총 22명의 평균 나이는 약 56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너가 3·4세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을 통해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산업 기술의 이해도도 높은 편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위기 돌파를 넘어 신사업발굴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달라지는 경영 환경 속에서 이들을 평가하는 기준 또한 더욱 세밀해질 전망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국 대선 결과로 인해 수출입 등 국내외 환경이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실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예방적 대응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해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올해를 시작으로 변화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기초를 잘 닦아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베테랑, 또는 올드맨…“인재 직접 키운다”

젊은 인재 대신 베테랑 경영진을 내세워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기업 전략도 돋보인다. 지난 27일 삼성전자는 경영 역량이 입증된 베테랑 인력 위주의 인사를 단행했다. 일명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 되는 상황 속에서 증명된 ‘경험’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쇄신은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이번 삼성전자 인사에 대해 “일부 올드맨이 전면에 나선 것은 삼성전자 내 최상급 인재풀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기업들은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내에 자체 대학원을 만들어 회사 인력을 육성하는 한편, 해외에서 인재를 구하는 등 다방면으로 해법을 강구하고 있다.
LG그룹은 AI 전문가 양성을 위한 LG AI대학원을 지난 2022년 정식 개원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석사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해 사내대학 ‘삼성전자공과대학교(SSIT)’를 운영하고 있다. 1989년 설립 이후 SSIT를 거쳐간 졸업생은 총 1297명으로, 전문 학사 졸업생은 55명, 학사 졸업생은 539명, 석사 졸업생은 605명, 박사 졸업생은 98명이다.
SSIT는 리서치 기능까지 담당해 궁극적으로는 현업을 지원하는 조직으로서 기능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동승훈 SSIT 교수는 “사업부 간 시너지가 필요하거나 SSIT 전임교원이 추진하면 좋을 미래기술 과제를 발굴해 가르침과 미래기술 리서치 기능까지 담당할 수 있게 준비했다”면서 “기술 이슈 없이 현업을 서포트하는 조직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