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으로 갈아타는 이른바 '탈(脫) 국장'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앞으로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강화와 보조금 철폐 등으로 한국 산업 여건이 악화돨 것이란 우려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증시와 가상 자산 강세 대비 한국 시장의 상대 약세가 계속되며, 국내 투자자들의 박탈감이 커졌다. 지금이라도 국내 시장을 떠나야한다는 비관론이 팽배한 분위기다.
다만, 삼성전자가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서기로 하면서 이같은 국내 주식시장으로부터의 자금 이탈이 멈춰질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가 10조 원에 가까운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것은 2017년 이후 7년여 만이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선 배경은 주가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주가는 8월 초 8만원대를 기록한 이후 4개월간 지속해서 하락세를 보였다. 올해들어서만 하락률이 33%에 달한다. 이달 14일 주가는 4만9900원을 기록하며 2020년 6월 이후 4년 5개월 만에 '4만 전자'를 기록했다.
16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세이브로)에 따르면 13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주식 보관잔액은 1017억4600만달러(약 142조5718억원)로 한 주 전(7일) 1013억6570만달러보다 3억8030만달러 늘었다.
이는 삼성전자의 같은 날 기준 시가총액 302조709억원의 47.2%에 달하는 금액이다. 코스피 2위인 SK하이닉스의 시총(133조1천516 억원)을 추월한 규모다.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미국 주식은 테슬라로, 185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엔비디아(135억3000만달러), 애플(44억5000만달러)이 뒤를 이었다.
S&P500 1년새 32% 급등...코스피는 되레 하락
미국 주식 보관액은 2019년 말 84억달러를 겨우 넘었지만 이후 2022년 말 442억달러, 작년 말 680억달러를 거쳐 이달 초 처음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과 막대한 자본에 힘입은 미국 증시의 상승 탄력이 박스권 하단을 지속적으로 낮춰온 한국증시와 대조적이다.
미국 S&P500 지수는 14일 기준으로 최근 1년 새 32.33%가 뛰었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는 0.67%, 코스닥지수는 13.70% 하락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한국 증시가 그간 기업공개(IPO)에서 첫거래일 주가가 공모가 대비 '따따블(공모가 네배)'을 기록할 경우 시가총액이 이를 그대로 반영하면서 개별 종목들의 가치는 상승하지 못한채 시총만 커지는 현상이 이어져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물적분할 역시 한국 증시의 펀더멘턴 제고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혀 왔다.
오랜 기간 박스권에 갇힌 한국 증시는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에 따른 한국 주력 산업의 업황 악화 우려와 IPO 시장의 한파로 인해 더욱 위축된 분위기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보조금 철폐 정책이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 미칠 악영향 우려로 당분간 국내 증시가 약세장에서 탈출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제기됐다.
한동안 활력이 있었던 기업공개(IPO) 시장도 지난달 말부터 찬바람을 맞고 있다.
지난 달 24일 상장한 AI 로봇 회사 씨메스의 상장 당일 주가가 공모가 대비 23% 급락한 이후 신규 공모주들의 '흥행 실패'가 잇달았다. 씨메스 외 상장일의 주가가 공모가보다 9∼30%씩 하락한 종목은 지금껏 12개에 달한다. 반대로 주가가 오른 경우는 유명 방송인인 백종원 대표의 인지도를 등에 업은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더본코리아가 유일했다.
다만 15일 오후 발표된 삼성전자의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방침이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 속도를 늦출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취득 계획 발표...반등 '신호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향후 1년 내 분할매입 방식으로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할 계획이다. 목적은 주주가치 제고 등이다.
이 가운데 3조원의 자사주는 3개월내 사들여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위탁 중개업자는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투자증권, KB증권이다.
공시 발표 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고 3조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및 전량 소각 방안을 승인했다. 이사진 10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사외이사인 허은녕 이사는 기권했고 나머지 이사들은 안건에 동의했다.
1차 매입 시점은 이달 18일부터 내년 2월 17일까지다. 장내매수 방식으로 매수해 소각한다. 매입 대상 자사주는 보통주 5014만4628주, 우선주 691만2036주다. 나머지 7조원어치를 매입할 시점과 활용 방안은 향후 별도 이사회를 열어 정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미 15일 외국인 매도세가 멈추고 강하게 반등한 상황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면 추가 상승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재 삼성전자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9배까지 내려가 자사주를 매입하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올 4분기와 내년 실적까지 감안할 때 자사주 매입이 주가가 추가 상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시장, 탈출이 아니라 진입이 필요한 시점"
정말 지금이라도 국내 시장을 떠나는 것이 맞을까?
삼성증권은 이에 대해 "역발상이 필요한 시기"라며 오히려 한국 주식시장으로부터 탈출하기 보다는 진입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신승진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국내 시장이 상대 약세를 겪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반도체/자동차/2차전지 등 미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 구조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른 수출 불확실성 부각 ▲해외 주식, 가상 자산 등 대안 투자처 확대에 따라 얇아진 국내 시장 수급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신 팀장은 "트럼프 당선자인 정책 기조가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과도하게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 팀장은 ▲미국의 소득세, 법인세 인하 ▲에너지 생산확대를 통한 물가 압력 완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을 위한 노력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은 한국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신 팀장은 "지금은 역사적 저점 밸류에이션에 근거한 역발상 대응 전략이 유효하다"며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와 엔 캐리 트레이드 가능성으로 급락했던 지난 8월 초 코스피가 장중 2400포인트를 일시 하회했지만 2441포인트로 마감한 뒤 급반등한 사례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증시의 하락세에 대해서는 "시스템 리스크가 아닌, 미국 정책 불확실성 우려가 과도하게 반영된 구간"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신 팀장은 "트럼프 2.0 시대에 수혜가 예상되는 업종과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기업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미국의 생물 보안법의 수혜가 기대되는 바이오 ▲인프라 투자 확대와 글로벌 군비 증강 정책의 효과가 기대되는 조선·방산·기계 등 산업재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엔터·미디어·콘텐츠 등 경쟁 우위 산업에 대한 선별적 접근을 고민해 볼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신 팀장은 이와 관련한 주식으로는 SK하이닉스(HBM으로 차별화 될 실적 모멘텀), 스튜디오드래곤(K-콘텐츠 리더) 삼성바이오로직스(美 바이오 정책 수혜 대표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방산+우주 최고의 결합체), LIG넥스원(美 수출+2025년 MSCI 편입 기대), HD한국조선해양(트럼프 당선인, 윤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조선업 분야에서 한국의 도움 필요하다고 언급), 와이지엔터테인먼트(올해 2분기 이후 中 앨범 판매량 회복, 글로벌 로제 APT 흥행, 2025년 블랙핑크 완전체 컴백 등) 등을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