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이 성과주의에 기반한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현대차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는 동시에 장재훈 현대차 사장이 그룹의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업계에서는 외국인 임원이 국내 대기업 CEO로 발탁된 것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15일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24년 대표이사, 사장단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현대차를 비롯해 건설, 엔지니어링, 트랜시스, 케피코 등 상당수 계열사 CEO들이 교체됐다.
국내 대기업 최초 외국인 CEO 발탁…글로벌 ‘리스크’ 대응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인사는 호세 무뇨스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을 그룹의 핵심인 현대차 CEO로 발탁한 것이다. 토요타 유럽법인과 닛산 북미법인을 거친 무뇨스 사장은 2019년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 및 미주권역담당으로 합류한다. 당시 무뇨스 사장의 마케팅 능력을 높게 평가한 정의선 회장이 그룹 내 최초로 외국인이었던 그를 사장급으로 영입했다.
무뇨스 사장이 현대차 CEO로 발탁된 배경엔 눈에 띄게 개선된 북미 시장의 실적이 있다. 무뇨스 사장의 합류 이후 현대차는 북미 시장에서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한다. 2018년 67만8000대 수준이던 현대차 북미 판매량은 2021년 78만대, 2023년 87만대까지 늘어났다.
무뇨스 사장은 북미 시장 딜러 경쟁력 강화와 함께 수익성까지 크게 끌어올렸다. 2018년 현대차 미국 법인은 3301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무뇨스 사장은 취임 이후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고부가가치 차종으로 판매 체질을 개선하며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2조70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남겼다.
현대차와 제너럴모터스(GM)의 포괄적 동맹 체결 과정에서도 무뇨스 사장이 핵심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9월 현대차는 GM과 승용차부터 상용차, 친환경 에너지, 배터리 원자재 등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한 상호 협력을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무뇨스 사장이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GM과의 소통을 담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무뇨스 사장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커진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리스크 해결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제네시스)은 북미 시장에서 총 165만대의 차량을 판매한다. 지난 10월에는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의 가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친환경차 판매 확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고율 관세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를 주장하는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당선되며 친환경차 판매 또한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정의선 회장 또한 현대차 주력 시장인 북미에서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미국에 정통한 무뇨스 사장을 선임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외국인을 핵심 계열사 CEO로 발탁한 것은 현대차가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은 “성과주의, 글로벌 최고 인재 등용이라는 인사 기조에 최적화 인재라는 판단 아래 현대차 창사 이래 최초 외국인 사장으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정의선 회장의 ‘믿을맨’ 부회장 승진…“최대 실적 성과 인정”

정의선 회장의 ‘믿을맨’으로 불렸던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현대차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다. 2020년 12월 현대차 CEO 대표이사 사장직에 올랐던 장재훈 사장은 4년 만에 그룹 부회장에 오르게 된다. 정의선 회장이 취임한 2020년 당시 윤여철, 김용환, 정태영 부회장이 있었으나 2021년 윤여철 부회장의 퇴임으로 사라졌던 ‘부회장’ 직위가 장재훈 사장의 승진으로 3년 만에 부활하게 됐다.
장재훈 부회장은 코로나 펜데믹 등 복잡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공격적인 사업 전략을 기반으로 현대차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고 평가 받는다. 장재훈 사장이 이끈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 162조7000억원, 영업이익 15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하이브리드, SUV 모델을 중심으로 전년 대비 개선된 실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재훈 부회장은 현대차 인도법인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이끈 성과도 인정받았다. 현대차그룹은 인도 증시 사상 최대 규모로 이뤄진 인도법인 IPO를 주도했다는 평가에 기반해 장재훈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했다고 설명했다. 장재훈 부회장은 향후 그룹 내 완성차 상품 기획부터 공급망 관리, 제조 및 품질에 이르는 밸류체인 전반을 관할하게 될 전망이다.
사업 운영에 있어 ‘최적화’를 강조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인사 원칙으로 성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 또한 인사에 있어서 “실력이 있으면 국적과 나이,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혔다.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성과로 검증된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성과주의 원칙은 계열사 인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송호성 기아 사장의 경우 유임을 통해 기존보다 임기가 늘어났다. 기아 국내생산담당 겸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 최준영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여러 기업들이 글로벌로 나아가고 있지만 임원 인사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측면이 강했다”며 “이례적으로 외국인 CEO를 발탁한 현대차그룹의 경우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함께 글로벌 시장 진출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