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전설화나 민담에는 으레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억하기 힘든 옛날부터 담배는 있었다는 뜻이다. 오래 전부터 존재해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담배는 시대의 흐름처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연초를 넣어 피우던 곰방대는 궐련형 담배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로 진화했다. 담배의 이번 변신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담뱃잎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때문이다. 지금껏 담뱃잎에 기초했던 담배가 액상형 전자담배로 넘어가며 주요 물질을 ‘니코틴’ 혹은 ‘니코틴 유사물질’로 바꿔 끼우고 있다.
이 과정을 놓고 세상은 의견이 분분하다. 유해물질 논란 비롯해 현재 공산품으로 취급되는 합성 니코틴의 세금탈루와 청소년 접근성 문제, 여기에 최근 마약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성 니코틴 규제가 임박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지난 10월 22일 국회의사당 인근 카페에서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을 만나 담배업계 흐름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선에 대해 물었다.
Q.담배 안전과 관련한 활동을 몇년째 해오고 있나
“올해로 20년 됐다. 석사학위 논문 주제가 담배라는 인연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담배를 보는 우리나라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흡연자들의 금연에 초점이 맞춰진 단순한 가정의학과 영역이었다면 정책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정책적으로 접근하며 자연스럽게 제품, 산업을 보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Q.액상형 니코틴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자연히 시장, 제품, 산업을 보게 된다. 이 가운데 액상형 전자담배가 들어오며 우리나라 담배 시장이 많이 바뀌었다. 도입 당시에는 금연보조제로 사용될 정도였으나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려고 할 때마다 그 모습을 바꿨다. 용액에 과세를 하니 니코틴 원액을 분리 판매하고, 담뱃잎이 아니라며 줄기‧뿌리 니코틴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며 편법을 써 팔기 시작했다. 정부가 세법 변경으로 대응하자, 담배 시장에서 만든 것이 합성 니코틴이다. 어설프게 대응하면 안 된다.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다.”
Q.액상형 전자담배가 연초 보다 덜 해롭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잘못된 생각이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기존 연초 담배보다 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유해물질이 덜 첨가됐기 때문이다. 주의해야할 점은 사람마다 독성 물질에 반응하는 것은 다 다르다는 점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에 1000만명 이상이 노출됐지만 정말 생명을 잃거나 장애를 입은 분들은 아주 어리거나 아주 고령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일한 독성 물질에 노출돼도 건강한 사람은 큰 문제가 없지만 약한 사람에게는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안전성 시험 중에 호흡기 관련 실험이 없었던 측면도 있다.”
Q.액상형 전자담배가 기존 연초와 다르게 위험한 부분도 있나
“당연하다. 이 제품에는 코일이 들어있다. 코일은 액상을 기화할 때 사용되는 전달물질로 중금속이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면 중금속을 계속 태우는 꼴이다. 또 니코틴을 액상형으로 만들 때 증발하지 않도록 기름 성분으로 만든다. 폐에 기름이 직접적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이상의 계속 폐로 기름이 들어오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라, 삼겹살을 1시간마다 구워먹는 사람은 없어도 담배는 다르다. 이미 해외에는 2012년에 유사 니코틴을 쓴 사람의 폐에 기름이 가득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청소년 시기에 접하게 되면 뇌 성장 저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 뇌는 20세까지 자라는데 이성적인 판단 학습 등을 처리하는 전두엽이 니코틴에 노출되면 성장이 지체된다. 마약의 통로로 사용되는 것도 문제다.”
Q.마약과 액상형 전자담배는 어떤 관계가 있나
“이 제품 안에 마약을 넣어서 쓰면 이것은 액상형 전자담배가 아니라 마약이다. 현재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부모님들 중에 예전에 연초 담배 몰래 피우던 시절을 생각하며 크게 우려하지 않는 분도 계시다. 그러나 매우 큰 문제다. 청소년들은 액상형 전자담배를 주로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그러면 마약 범죄자들이 액상형 전자담배를 파는 것처럼 홈페이지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마약을 넣어 판매한다. 그럼 청소년은 뭔지도 모르고 쓴다. 흡입했을 때야 마약이 들어있는 걸 느낄 수 있다. 이후에는 협박을 받거나 충성 고객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얼마 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우리나라 전국 2위 대학 연합 동아리도 마약이 문제였다. 회장이 처음에 가져온 마약은 액상형 전자담배에 담겨있었다.”
Q.담배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맞다. 이미 시장은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변했다. 먹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산업계는 목숨 걸고 변화를 따라간다. 온라인 플랫폼상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자담배 시장도 계속 변하고 있다. 산업계는 담배사업법 정의 변경을 이미 기정사실화 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담배 정의 개정으로 단순하게 ‘합성 니코틴만 잡으면 돼’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 이미 줄기‧뿌리 니코틴 선례가 있다. 법을 개정해도 세수 확보 영향은 거의 없었다. 최근 한 의원실에서 담뱃세 4조원 이상을 못 거뒀다고 자료를 냈는데 훨씬 더 크다고 본다. 합성 니코틴만 잡아넣으면 세금이 많이 걷히겠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안 된다.”
Q.현재 업계에서는 뭘 준비하고 있나.
“무(無) 니코틴이다. 제보로 들었다. ‘무 니코틴’이라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 니코틴이 있다. 추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학 구조를 바꾼거다. 원래 니코틴이라는 화학 분자식에 다른 물질 하나를 붙여 분자 구조식을 니코틴과 다르게 만들지만 니코틴의 역할은 동일하게 하는 물질이다. 이미 중국에서 개발됐고 한국에 수입 업체가 있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올해 4월에 세계보건기구 회의에 갔을 때 FDA(미국 식품의약국) 대표가 미국이 지금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조사 해보니 이미 시중 판매 제품에서 관련 성분이 발견됐다. 합성 니코틴 다음 단계까지 포괄적으로 잡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노력들이 다 허사가 되는 거다.”
Q.법안과 관련해 국회와 협업 하고 있나
“정부기관과 10년 넘게 일을 해오고 있는데 요즘 국회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국회의원실에 있는 보좌관, 비서관들도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전문가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다. 문의를 하면 답변하는게 전문가로서 기쁨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누구도 물어보지 않는다. 현재 나온 담배사업법 개정안 중 소통한 의원실은 한 곳도 없다. 정말 법안을 통과 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로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발의된 법안은 모두 사각지대가 있다.”
Q.관련 법안이 많이 올라온 것은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뜻 아닌가
“일단 법안이 많은 게 절대 좋은 게 아니다. 정말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으면 주로 의원실 한 곳이 안을 모아서 제대로 된 걸 하나 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소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이 짧아진다. 의원 법안이 많아지면 소위원회에서 100% 병합 심사를 해야 한다. 모든 법안을 앉혀놓고 뭐가 좋은지 따져야 한다는 거다. 이게 다 시간이다. 한편으로는 시간을 끌기 위해 이런저런 법안들을 막 던지기도 한다. 다른 이슈로 논점을 흐려 법안 통과를 지연시키는 흔한 방법이다.”
Q.기획재정부(기재부)가 법안 통과 발목을 잡는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으로 안다
“기재부 입장에서는 법안 통과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현재는 일부 담배회사와 소통하면 되지만 합성 니코틴으로 영역이 넓어지면 관리해야 할 대상자가 몇명인지도 알 수가 없다.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자, 액상형 전자담배 제조자, 액상형 수입사 등은 현재 대한민국에 몇개나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상태다. 이들 중 누구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담당자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액상형 전자담배 기계 장치가 마약에도 쓰인다는 사실이다. 액상형 담배를 마약으로 바꾸면, 마약을 흡입하는 셈이다.”
Q.현재 나온 법안 중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전문가가 보기에 지금까지 나온 법안 중에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은 없다.”
Q.그렇다면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하나
“그나마 김태년 의원실에서 나온 법안이 니코틴 유사 물질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둔 점이 긍정적이라 본다. 합성 니코틴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니코틴 자체를 규제해야 한다. 실제 미국은 합성 니코틴이 아니라 ‘담배가 아닌 니코틴(Non-Tobacco Nicotine)’을 금지하겠다고 말한다. 이는 합성 니코틴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고 또 다른 형태의 니코틴이 끊임없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쉽게 얘기하면 담배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니코틴 그 자체에 대한 규제를 하기 시작하는 거다.”
Q.법안이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한다고 보나
“세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먼저 접근성 측면이다. 담배에 부과하는 세금은 가격을 높이고 접근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세금을 제대로 못 걷으면 가격이 낮아져 접근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두번째는 마케팅 측면이다. 원래 담배는 마케팅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 이들 제품들(합성 니코틴 등)은 담배로 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케팅을 할 수 있어 문제다. 마지막으로 공급자가 많아지는 문제다. 담배사업법상 담배소매점은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신고를 하고 각 지자체장들이 허가를 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조례로 100m라고 하는 간격이 있다. 전자담배사업자들은 ‘합성 니코틴을 팔기 때문에 담배 판매 소매점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각 지역에 있는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번호만 받으면 바로 사업이 가능하다. 우리 동네 전자담배 매장이 몇개나 있는지 지자체는 모른다. 학교 정문 앞에도 매장이 있을 정도다.”
Q.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담배는 진화하고 있다. 담배도 진화하고 담배를 쓰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담배가 진화한다는 걸 인정하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동안 강의 제목이 ‘라떼 시절의 담배를 잊어주세요’다. 선생님께 들킬까 봐 젓가락으로 잡고 피우던 때는 지났다. 이 액상형 전자담배를 들고 있으면 들킬 이유가 없다. 변화를 인정하고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