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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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위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 ASML이 충격적인 3분기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향후 국내 반도체 장비사 실적에 업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부 파운드리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면서 ASML의 신규 수주액이 급감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장비사의 경우 매출의 대부분이 메모리 업체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나, 전반적인 메모리 수요 또한 살아나지 못하면서 최선단 노드 공정에 필요한 장비를 납품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슈퍼을 ‘휘청’

17일 업계에 따르면 ASML의 3분기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크게 하회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ASML은 3분기 매출액과 주당순이익이 각각 74억7000만유로(약 11조원), 5.28유로라고 발표했다. 이는 컨센서스를 모두 상회하는 수치다. 앞서 시장은 ASML의 3분기 매출액과 주당순이익을 72억유로, 4.88유로로 예측했다.

매출액과 주당순이익이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었음에도 불구하고 ASML의 주가는 추락했다. 실적 발표 직후 ASML의 주가는 16.26% 하락 마감했으며, 그 다음날에도 6.42% 떨어졌다. 이유는 신규 수주액이다. ASML의 3분기 신규 수주액은 26억유로로, 직전 분기 대비 53.6% 급락했다.

삼성전자와 인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고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올해 인텔은 차세대 하이NA EUV(극자외선) 장비 2대를 업계 처음으로 도입하며 ASML의 주요 고객사로 떠올랐으나, 최근에는 계속된 적자로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을 3나노에 처음으로 적용하며 TSMC를 바짝 추격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수율과 성능 면에서 문제를 겪으며 이렇다 할 주요 빅테크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해외 인력을 축소하고 공장 가동 시점을 연기하는 등 투자가 지연되는 상황이다.

ASML은 “일부 파운드리 고객의 경우 새로운 공정을 늘리는 속도가 느려졌고, 이는 노광장비 수요의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AI와 非AI

최근 AI를 제외한 반도체 분야는 수요가 주춤하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테슬라와 같은 빅테크 업체들이 인공지능 서버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으면서 AI 반도체 수요는 강세를 지속하고 있으나, 비(非) AI 반도체의 경우 전방 세트(PC, 모바일 등) 수요가 살아나지 못하면서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는 메모리 분야도 마찬가지다. AI 서버에 사용되는 HBM(고대역폭메모리)과 QLC(쿼드레벨셀) 낸드플래시의 수요는 강세이나, 일반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같은 비 AI 분야는 전망이 좋지 않다.

QLC란 낸드의 기본 저장 단위인 셀(cell) 하나에 4비트(bit)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는 구조를 말한다. 셀 하나에 4비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만큼 낸드플래시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고 칩 크기도 줄일 수 있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CEO(최고경영자)는 “AI에서 강력한 발전과 상승 잠재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다른 시장 부문은 회복이 더디고 있다”며 “예상보다 더 점진적으로 회복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모리에선 HBM 및 DDR5 등 AI 관련 수요를 지원하는 기술 전환에 여전히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용량 추가는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장비사 영향은?

한미반도체 사옥 전경. 사진=한미반도체
한미반도체 사옥 전경. 사진=한미반도체

반도체 업계 A 관계자는 “국내 장비사의 경우 대부분의 메모리향이기 때문에 삼성전자 파운드리 투자 축소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다만 메모리도 국내 메모리사들이 내년에도 HBM 위주로 투자를 집행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좋다고 보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에도 HBM 위주로 투자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HBM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납품하는 장비사와 그렇지 못한 장비사 간 실적이 갈릴 것이란 설명이다.

또 다른 업계 B 관계자는 특히 주성엔지니어링과 한미반도체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HBM을 생산하기 위해선 1a(10나노급 4세대) 이상의 공정과 여러 D램을 하나로 합치는 패키징 기술이 필요하다”며 “선단 공정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패키징 장비를 생산하는 주성엔지니어링과 한미반도체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자체 개발한 ALD(원자측증착) 장비를 갖고 있는 기업이다. ALD는 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수로 사용되는 장비로 반도체 웨이퍼 위에 얇은 화학물질을 입히는 기능을 한다. 증착 과정에서 화학물질을 최대한 얇고 균일하게 입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ALD가 막의 두께를 원자 단위로 제어해 고품질의 박막을 형성한다.

증착은 웨이퍼 표면에 얇은 막을 씌워 전기적 특성을 갖도록 하는 반도체 제조 과정이다. 박막은 박막은 D램의 필수 소자인 커패시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주요 고객사인 SK하이닉스가 HBM, DDR5(최신 범용 D램) 등 고부가가치 D램 생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1b(10나노급 5세대) 공정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주성엔지어링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10나노급 5세대, 6세대, 7세대 등으로 전환이 발전될수록 박막을 얇게 구현할 수 있는 ALD의 활용도가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주성엔지니어링의 매출은 작년 상반기 대비 53.3% 증가한 1539억원을 기록했다.

한미반도체는 3분기 매출 2085억원, 영업이익 993억원을 올리며 올해 누적 매출 4093억원, 영업이익 1834억원으로 창사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한미반도체는 올해 3분기부터 시작된 인공지능 반도체의 핵심인 HBM용 TC 본더의 본격 납품과 2025년 말 완공 목표로 추진 중인 HBM TC 본더 전용 신규 공장 증설로 향후 지속적인 매출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여러 개의 D램을 쌓아 만드는 HBM은 각각의 D램을 고정하는 것이 핵심인데 한미반도체의 TC본더가 이 역할을 한다. 고객사가 한미반도체의 듀얼 TC본더로 각 층의 웨이퍼에 열, 압력을 가해 HBM을 완성한다.

현재 한미반도체의 주요 고객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TC본더 조달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최근 ASMPT와 한화정밀기계와 협업 중이다. 이에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은 “한미반도체와 경쟁하고 있는 ASMPT는 중국 선전, 청두 공장에서 장비를 생산하고 있어 조립 품질과 장비의 성능면에서 메이드인 코리아인 한미반도체에는 확연히 뒤쳐지고 있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A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HBM 조달처를 삼성전자로 확대하려 하듯이, SK하이닉스가 TC본더 조달처를 멀티벤더로 하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면서 “다만 예상보다 경쟁사들의 진입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한화정밀기계의 SK하이닉스 납품이 연기되고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한화정밀기계가 올해 6월 SK하이닉스로부터 퀄테스트를 진행한 후 9월 구매주문이 이뤄질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아직 납품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한화정밀기계가 진행하고 있던 기존 퀄테스트는 통과했으나, 당초 예정에 없던 테스트가 추가로 이뤄져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요 반도체 장비사 대표는 “예전에는 메모리가 범용 제품으로 뭉뚱그려졌는데, 지금은 하이엔드와 로우엔드로 나눠진다”며 “장비사 또한 하이엔드 메모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있냐 없냐로 갈릴 것이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