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부터 고액 법인 차량은 의무적으로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부터 고액 법인 차량은 의무적으로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고가의 법인차에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하는 제도가 시행된지 10개월이 지났다.

연두색 번호판 의무화 이후 고가 법인차 판매량이 유의미하게 줄었으나, 이를 피하기 위한 ‘꼼수’도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제도 시행 이전부터 편법과 같은 문제는 ‘예견된 일’이었다고 지적한다.

10일 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000만원이 넘는 고가의 법인차는 의무적으로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해야 한다. 각종 세제 혜택이 적용되는 법인차를 경영진들이 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자동차 등록번호판 등의 기준에 관한 고시 일부 개정안’을 통해 출고가 기준 8000만원 이상의 법인 승용차엔 연두색 번호판을 적용한다고 고지했다.

신규 등록 차량은 물론 이전에 등록된 차량을 중고로 양도받는 경우도 연두색 번호판 부착 대상이다. 1년 이상의 장기 렌터카나 리스 혹은 관용 차량도 8000만원을 넘는다면 번호판을 부착해야 한다. 다만 2024년 이전에 등록된 고가 법인차는 제외된다.

시행 초기 국토교통부는 “일반 번호판과 구별되는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함으로써 업무용 법인차를 용도에 맞게 운영하도록 유도하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배기량이 아닌 가격으로 기준을 설정한 이유에 대해선 “고가의 전기차를 포함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밝혔다.

연두색 번호판 의무화 이후 고가 법인차 판매 ‘급감’

실제로 고가의 법인차에 연두색 번호판이 붙기 시작하면서 올해 8000만원 이상의 법인차 등록 대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10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가 집계한 1~7월 법인차 등록 현황에 따르면 8000만원 이상의 신차 등록 대수는 2만74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7.7% 급감했다. 같은 기간 법인차 전체 등록 대수는 24만1172대로 전년 동기 대비 4.2% 줄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는 “최근 5년 동안 고가 법인차 감소폭이 가장 컸다”며 “최저가 모델도 억대를 호가하는 법인 슈퍼카, 럭셔리카가 눈에 띄게 줄어 연두색 번호판이 뚜렷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매량이 가장 급격하게 감소한 브랜드는 애스턴마틴이다. 애스턴마틴 법인차는 올해 1~7월 1대가 등록되며 전년 동기 대비 96.2% 감소했다. 그 밖에도 맥라렌(37대) 85.0%, 벤틀리(123대) 65.0%, 롤스로이스(89대) 44.4%, 마세라티(104대) 42.2% 등 1억원을 호가하는 고급차 브랜드의 법인차 등록이 나란히 줄었다. 

일명 ‘회장님 차’로 불리는 현대차 제네시스의 G90과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 또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5.6%, 63.9% 감소했다.

수입차 관계자는 “연두색 번호판 제도가 시행되기 전 차량을 미리 구매한 법인 고객들이 많다”며 “정책 시행 이후 판매량이 줄어든 것도 분명하지만 지난해 기저효과로 인해 더 급격하게 감소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운 계약서 등 등장한 각종 편법에 ‘골머리’

연두색 번호판을 피하기 위한 편법도 등장했다. 지난 8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등록된 법인차 중 수입차는 4만7242대로 이중 판매가격이 8000만원 이상인 승용·승합차는 1만8898대로 집계됐다.

그 중 차량 가격을 8000만원 이하로 판매가보다 낮게 신고해 연두색 번호판을 달지 않은 차량은 6290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차들은 모두 신차로 법인이 최초 취득가를 신고했다.

연두색 번호판을 피하기 위해 실제 거래되는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다운 계약서’를 작성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로 A 법인이 취득가 5690만9091원에 신고한 BMW ‘M8 쿠페 컴페티션’의 실제 차량가는 2억49400만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A 법인은 다운 계약서를 통해 구매가를 낮게 신고해 2000만원 가량의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은 물론 연두색 번호판 부착도 피할 수 있었다.

이는 현재 자동차 등록을 ‘신고제’로 실시하고 있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차량 구매자는 차를 등록할 때 제조사가 만들어 발급한 차량 제작증에 적힌 ‘자동차 출고(취득) 가격’을 신고하면 된다. 다운 계약서가 만연하자 수입차 업체가 법인차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차대 번호를 조작, 할인 판매의 근거를 만들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은혜 의원은 “차량 가액을 불러주는 대로 인정하는 제도를 악용한 신종 범죄가 횡행하고 있어 정부가 대처하지 못한다면 국민 신뢰가 흔들릴 것”이라며 “객관적인 차량 가액을 기준으로 꼼수 등록을 막고 세원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차량 등록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자동차 보험 가입자를 일반에서 법인으로 바꿔치기하는 방식도 확인됐다. 차량 등록시 개인 명의로 보험에 가입한 후 일반 번호판을 발급받고, 이후 법인 명의로 변경해 연두색 번호판을 피하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차량 가격을 기준으로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하는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김필수 교수는 “가격을 기준으로 법인차에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한다고 했을때 이미 이와 같은 편법은 예견됐다”며 “새로운 번호판을 도입하면서 낭비되는 세금은 물론 근본적으로 법인차의 사적 사용을 막는 효과도 미미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필수 교수는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서는 법인차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비싼 법인차라면 연두색 번호판을 의무적으로 달아야 한다는 제도는 법인차를 제 목적에 맞게 올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주홍글씨와 같은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