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이 선보인 군 급식 메뉴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풀무원이 선보인 군 급식 메뉴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약 10년 전 강원도 해안부대에서 조리병으로 근무했다. 당시 조리병 직무는 일반적인 조리와 다른 대량급식 특성상 힘들고 어려운 직무로 통했다. 이따금 하자가 발견되는 식재료와 만성적으로 부족한 조리병, 높은 위생관리 난이도가 겹치며 장병들의 입맛과는 다소 거리가 먼 식사를 내놓곤 했다.

군 급식이 바뀌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된 지상방산전시회 ‘KADEX 2024’에 장병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군 급식업체들이 대거 눈에 참가했다. 풀무원, 대상 청정원, 동원 F&B, 아워홈 등 시중에서도 잘 나가는 업체들이 부스를 차리고 관람객들에게 무료 시식 기회를 제공했다. 시식시간마다 맛있는 음식 냄새에 이끌린 관람객들의 대기열이 장사진을 이뤘다.

대상이 전시한 각종 찌개류.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전시회에 참여한 업체들은 조리 ‘간편성’과 ‘맛’에 주안점을 뒀다. 이들이 공개한 반조리·완전조리 형식의 ‘밀키트’는 조리병들에게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식재료 전처리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단순 볶음밥부터 꼬리곰탕, 소시지야채볶음 등 장병들에게 인기 높은 메뉴, 심지어는 붕장어구이 같은 ‘특식’까지 모두 간편화돼 맛과 편의성을 한 번에 잡았다.

기자는 청정원, 미원 등을 운영하는 대상 부스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조리병들의 피·땀·눈물을 상징하는 ‘계란프라이’가 냉동 완제품으로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원예비군 훈련 당시 1000명분의 계란프라이를 하기 위해 조리병 3명이 새벽 4시부터 4시간에 걸쳐 프라이만 부쳤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 때는 말이야”를 중얼거리며 진일보한 군 급식 환경에 다시금 감탄했다.

계란프라이와 오믈렛이 냉동 완전조리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계란프라이와 오믈렛이 냉동 완전조리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대상 관계자는 “군 병력 감소로 조리병 역시 부족해지고 있기에, 일손이 부족해도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며 “국이나 탕류는 50인분어치 물에 농축액만 넣고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료로 쓰이는 채소와 고기류 등도 전부 손질된 상태로 포장 돼서, 별다른 전처리 없이 해동 후 즉시 조리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상은 이밖에도 대용량 볶음밥, 각종 찌개와 디저트류도 전시했다.

군 급식시장 1위에 빛나는 풀무원은 전문 요리사들이 직접 풀무원 제품을 조리해 ‘병영 식당’ 콘셉트로 관람객들에게 배식했다. 직접 받아 먹어봤더니, 직접 조리한 음식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관람객들이 풀무원 부스에서 배식받고 있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관람객들이 풀무원 부스에서 배식받고 있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풀무원은 특히 ESG와 건강을 모두 챙긴 ‘지구식단’으로 주목받았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닭고기로 만든 치킨너겟과, 두부로 촐깃하고 바삭한 텐더 식감을 낸 두부텐더, 콩으로 만든 다이스 햄 등 환경·사회 친화적 제품을 선보였다.

이날 풀무원 부스에서 배식받은 국군 장병 A씨는 “부스에 전시된 메뉴들을 실제 급식에서 먹어봤다”며 “매일 먹고 싶은 맛”이라고 평가했다.

아워홈 역시 ‘군 급식 인프라 특별관’에서 ▲아워홈 인프라 ▲병사를 위한 맞춤형 메뉴 ▲인력 효율 솔루션 등 3가지 세부 콘셉트를 내세웠다. 건강 관리에 관심 많은 MZ 장병들을 위해 고단백 식단 등을 선보였다.

잠수함 및 해군 선박 등 조리가 어려운 환경에 맞춘 제품 구성을 소개하고, 조리로봇 등 푸드테크 도입 솔루션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다수공급자계약과 부대계약 등으로 납품되는 풀무원 제품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다수공급자계약과 부대계약 등으로 납품되는 풀무원 제품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군 급식 메뉴가 이처럼 개선된 데에는 조달청에서 시행하는 ‘다수공급자계약(MAS)’의 도입이 주효했다는 평이 나온다.

다수공급자계약은 수요기관(군부대)가 ‘나라장터’ 사이트에 등록된 다수의 급식업체 중에서 필요와 상황에 따라 물품을 선택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다양한 업체들의 다양한 제품 중 최적의 구매 물품을 선택할 수 있어, 공급자 간 품질 경쟁을 유도한다. 자연스레 특정 업체의 납품 독과점에 따른 품질 저하를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급식업체 관계자는 “소시지를 예로 들면, 기존에는 소시지 중 돼지고기 함량이 기준치만 충족한다면 납품이 허용되는 방식이었다. 납품업체들은 원가 소모를 줄이기 위해 기준치만 간신히 넘긴 제품을 납품하고 품질이 저하됐다”며 “반면 MAS는 수많은 경쟁제품 중 가장 저렴하고 질 좋은 제품을 선택 발주할 수 있어 업체간 품질·가격 경쟁이 일어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KADEX 현장에서는 조리병의 편의와 군 조리시설 효율화 솔루션을 제시하는 업체도 볼 수 있었다.

조리기구와 배식기구등을 제작하는 ‘HK’는 ‘병영식당 환경개선 스마트 솔루션’을 소개했다. 온열·냉각 기능이 탑재된 배식대가 장병들의 급식 만족도를 올려주고, 대량의 쌀을 씻는 세미기 등이 조리병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설명이다.

음식 찌꺼기와 각종 기름 및 소스, 물 등으로 쉽게 오염되는 조리장 바닥 청소에 최적화된 청소도구도 전시됐다. HK 관계자는 “실제로 일선 부대 근무자들 사이에서 수요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병영식당 환경개선 스마트 솔루션을 제시한 HK.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병영식당 환경개선 스마트 솔루션을 제시한 HK.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10월 2일부터 10월 6일까지 충남 계룡대에서 열리는 KADEX 2024에서는 방위산업 장비의 첨단화와 더불어 진일보하는 군 급식과 장병 처우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