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대주주 영풍과 고려아연 경영진의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영풍이 지난 12일 초대형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서겠다고 밝힌 데에 고려아연이 격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입가경이다.
MBK 손잡은 영풍의 기습공격
MBK파트너스(MBK)는 12일 영풍,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 등과 주주간 계약을 체결해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기로 하고 영풍 및 특수관계인 소유 지분 일부에 대해서는 콜옵션을 부여받기로 했다. 장씨 일가가 보유한 33.13% 지분의 절반을 넘겨받는다. 장 고문 측보다 1주를 더 많이 보유하면서 최대주주가 된다는 뜻이다.
MBK는 13일부터 본격적으로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를 시작했다. 오는 10월 4일까지 최소 144만5036주(6.98%)에서 최대 302만4881주(14.61%)까지 공개매수한다는 계획이다. 공개매수가는 66만원이다.
영풍과 MBK가 14.61% 지분을 확보한다면 총 지분율은 52%로 급상승하게 되며 이런 방식으로 경영권을 넘겨받겠다는 의중이다. 이날 지분 매수로 고려아연의 주가는 전날 종가 대비 20% 급등하며 마쳤다.
영풍은 지분 매수와 동시에 고려아연을 상대로 회계장부 등 열람 등사 가처분을 신청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앞으로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한 조사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회계장부 및 서류 등에 대한 열람 및 등사를 청구하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라며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하는 사모펀드 투자 관련 배임 등 의혹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관여 의혹 ▲이그니오 홀딩스 투자 관련 선관주의의무 위반 의혹 ▲이사회 결의 없는 지급보증 관련 상법 위반 혐의▲씨에스디자인그룹을 향한 일감 몰아주기 관련 의혹을 꼽았다.
고려아연이 원아시아파트너스에 이사회 동의 없이 6040억원을 투자한 점과, 지난 4월 1일 종속회사로서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카타만 메탈스에 대해 이사회 결의 없이 대표이사 승인 및 내부품의만 완료한 채 2694억원 상당의 지급보증을 결정한 점을 문제 삼았다. 또한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 중인 하바나 1호 펀드가 SM 주가조작에 연루된 점 등도 공격했다.
영풍 관계자는 이번 움직임에 대해 “고려아연의 위법행위 여부를 확인하고 법적 대응으로 전체 주주의 이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으나, 업계에서는 최윤범 회장을 향한 압박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장 고문 측과 최윤범 회장 측의 보유 지분은 각각 33% 수준으로 큰 차이 없다”며 “우호 지분을 당장 늘리기 힘든 최 회장을 압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의 지분은 15.9% 수준이며, 자사주를 교환한 LG화학·한화와 한국타이어, 조선내화 등 우호 지분이 17.3%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과의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우호 지분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숙제가 뒤따른다.
문제는 MBK의 존재다. 영풍과 고려아연의 공통된 목표는 유통 지분 23%다. 양사 경영진 일가의 지분과 국민연금 지분(7.6%), 자사주 2.4%를 제외한 물량이다.
장재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고려아연 측이 지분율 과반을 넘기기 위해서는 16.02%를 추가 매수해야 하며, 영풍이 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적으로 유통물량 중 6.05%를 추가 취득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약 7000억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하지만 현재 매입을 수행해야 하는 최윤범 회장 측은 자본시장법에 묶여 공개매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자본시장법 140조에는 “공개매수자 및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공고일부터 종료일까지 공개매수에 의하지 않고는 그 주식을 매수하지 못한다”고 명시됐다. 최윤범 회장 측은 현재 대주주 영풍에 특수관계인 ‘출자자’로 엮였다. 영풍과 MBK의 공개매수 기간인 10월 4일까지 별도 공개매수나 기타 방법을 통한 지분 매수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려아연이 영풍과 계열사로 엮인 관계이기에 발생하는 허점을 영풍과 MBK가 날카롭게 찌른 셈이다.
결국 최 회장 측에서는 우호 지분 추가 확보를 통한 간접 방어만이 해답인 셈이다. 다만 여기서도 너무 ‘비싸진’ 고려아연의 주가가 발목을 잡는다. 공개매수 이후 주가가 고점을 뚫은 상태에서 새로운 백기사가 영풍의 지분 매입 방해를 목적으로 수백~수천억원을 투자한다면, 배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영풍 경영능력 없어…경영권 해외 매각 우려”
영풍의 기습공격 이후 고려아연은 “영풍이 기업사냥꾼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매수에 반대한다”며 “공개매수 시도가 국가 기간산업인 비철금속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경쟁력을 보유한 당사에 대한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약탈적 M&A”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고려아연의 현재 생산능력은 아연 87만톤, 연43만톤 수준으로 각각 세계시장에서 6%와 4%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아연 국내시장 점유율은 56%에 이르는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비철금속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특히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들이 경영에 적합한 능력을 갖췄다”고 말한다.
최기호 창업자를 시작으로 최창걸, 최창영, 최창근 명예회장에 이어 현 최윤범 회장까지 전현직 경영진과 임직원이 수십 년간 합십해 비철금속 세계 1위 기업을 만들었고, 최근엔 국가 미래 전략산업인 이차전지 분야로 진출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BNK투자증권 역시 13일 기업분석 리포트를 통해 “고려아연의 실질 경영은 최씨가 담당하면서 글로벌 2위 제련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최근 2차전지 소재로 확장하는 사업 기틀도 최윤범 회장의 경영 능력과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게 작용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반면 대주주 영풍은 잦은 환경법과 중처법 위반, 대규모 적자도 겹치는 등 경영 능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영풍이 포제련소를 운영해 오면서 각종 환경오염 피해를 일으켜 지역 주민들과 낙동강 수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빈발하는 중대재해 사고로 최근 대표이사들이 모두 구속됐고, 또 다른 문제인 카드뮴 누출 등 환경오염으로 현재 구속된 대표이사들에게 추가로 실형이 구형되는 등 사회적 지탄이 이어지고, 매년 개선도 되지 않아 국정감사에 단골 출석한다”고 거세게 꼬집었다.
영풍이 석포제련소 문제 해결과 경영정상화에 전념하는 것이 아닌, 고려아연의 지분과 경영권 확보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시선이다.
특히 MBK의 참여에 대해서도 날선 반응을 보였다. “MBK파트너스가 그동안 수차례 국내에서 시장 경쟁력 있는 회사를 인수한 다음 핵심 자산을 매각하거나 과도한 배당금 수령 등을 통해 투자금 회수에만 몰두했다”고 지적했다. 뒤따르는 인력 구조조정과 기업가치 저해 사례도 거론했다.

고려아연은 MBK의 참전과 경영권 획득은 장기적 국익에도 악영향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최윤범 회장 취임 후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통해 전통 제련 사업과 더불어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신재생 에너지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며 “콜옵션을 보유한 MBK가 경영권을 인수할 경우, 해외 재미각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 기간산업인 비철금속과 이차전지 소재 관련 핵심 기술 역량이 해외로 유출되는 최악의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일련의 사건은 지난 2022년 발발한 양사의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이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고(故) 장병희·최기호 영풍그룹 공동 창업주가 설립한 이래 최씨 일가가 경영을 맡아왔으며 영풍그룹과 전자계열사는 장씨일가가 담당했다.
양 집안은 지난 70년간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이어오며 무난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최윤범 고려아연 현 회장이 취임한 후 서로의 지분을 사들이며 싸움에 돌입했다.
양사는 올해 3월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정관 개정을 놓고 표대결을 펼쳐 무승부로 끝난 이후, 본격적인 분쟁에 돌입했다. 고려아연이 영풍 사옥을 떠난 일부터 시작해 지난 4월에는 원료 공동구매 계약도 종료했다. 비철금속 해외 유통·판매 계열사 서린상사의 경영권 싸움에서도 고려아연이 경영권을 차지하며 서린상사의 이름이 KZ 트레이딩로 바뀌기도 했다. 최근에는 고려아연이 영풍과의 황산 취급대행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며 법적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