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이 문제다.”
8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열리기 전 만난 일부 금융통화위원은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를 꼽았다. 금통위원 대부분은 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결정보다는 최근 주택 가격 상승과 가계대출 증가세를 고려해 어떤 메시지를 낼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금통위 이후로도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 및 만기 단축(최장 50년 →30년), 전세대출 한도 제한(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이내 등), 보증보험 상품(MCI·MCG) 취급 중단 등 가계 대출을 줄이기 위한 여러 대책들을 잇달아 내놨다.
특히 오늘(9월 1일)부터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가 시행된다. 스트레스DSR 제도는 변동금리 대출 등을 이용하는 차주를 대상으로 DSR 산정 시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축소하는 것이다.
2단계가 시행되면 스트레스 금리가 수도권은 1.2%, 비수도권은 0.75%가 적용된다. 새로 취급하는 모든 가계대출이 대상이다. 이에 따라 연소득이 가구당 평균소득 수준인 차주는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최대 5500만원 줄어들게 된다.
앞서 한국은행은 8월 22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통위원 7명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했다. 지난해 2월 이후 13회 연속 금리를 유지하며, 역대 최장기간 동결 기록을 다시 썼다. 8월 금통위에서 기준 금리를 동결한 가장 큰 이유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수준만으로는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된 상태지만, 금융안정 측면에서 가계부채 증가세를 지금 막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기준금리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심상치 않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누르기 위해 은행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중은행은 지난달부터 가계대출 금리를 줄줄이 높이고, 취급을 제한하는 등 ‘가계대출 조이기’에 돌입했다.
최근 금융당국까지 나서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대출 증가세는 쉽게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기보다는 대출 수요를 억제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이달 14일까지 4.2조 ↑
신한은행은 8월 23일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0.4%포인트(p) 추가로 높였다. 우리은행은 오는 8월 26일부터 가계 주택자금대출 금리를 최고 0.4%p 추가 인상했다다. 이후에도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 전세자금대출 제한 등 각 시중은행들은 여러 대책을 쏟아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은 지난 7월부터 8월 중순 무렵까지 무려 20여차례 이상 주담대 금리를 앞다퉈 올렸다.
인터넷전문은행도 주담대 금리를 연이어 올리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 7월부터 이달까지 아파트담보대출(아담대) 5년 주기형 상품의 가산금리와 변동금리를 총 다섯 차례에 걸쳐 0.15%p 인상했다.
카카오뱅크는 8월 26일 주담대(혼합‧변동) 금리를 0.50%p, 전월세대출 금리를 0.10%∼0.50%p 올린다고 밝혔다. 다음 달 3일부터는 주담대 상품에 대출 실행 후 5년마다 금리가 달라지는 ‘5년 주기형 변동금리’를 신설한다. 기존 5년 고정형 혼합금리 상품은 판매를 중단할 예정이다.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도 8월 27일부터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각각 0.45%p, 0.4%p 올리며 금리 인상 행렬에 동참했다. 기업은행이 주택 관련 대출 가산금리 조정에 나선 건 올해 들어 처음이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올해 7월 이후 은행권이 여러 차례에 걸쳐 대출 금리를 인위적으로 높였지만, 대출 증가세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8월 14일 기준 719조9725억원으로 집계됐다. 7월 말 715조7383억원에서 8월 들어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4조2342억원 더 불었다.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를 이끌었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559조7501억원에서 3조2407억원 늘어난 562조9908억원을 기록했다.

“가계대출 잡아라”…당국 특명에 ‘대출 중단’까지
가계부채 급증세가 멈출 조짐을 보이지 않자, 금융당국도 황급히 칼을 빼 들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 21일 취임 후 첫 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은행권이 가계부채에 경각심을 갖고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할 시점”이라며 “은행권 자율적으로 상환 능력, 즉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기반한 가계부채 관리 체계를 갖춰달라”고 당부했다.
금융위원회는 2단계 스트레스 DSR 금리를 은행권의 수도권 주담대에만 당초 계획한 0.75%p에서 1.2%p로 상향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수도권 DSR 차등 적용 후에도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강화 등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8월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서 최근 은행권이 주담대 등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는 추세와 관련해 “수도권 집값과 관련해서는 개입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최근의 은행 가계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선제적 가계부채 관리’를 주문하고, 개입 필요성을 시사하면서 각 은행은 금리 인상 외에 다른 대출 억제책을 고민하고 있다. 은행권에서 가계대출 잔액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은 지난 7월 29일부터 다주택자(2주택 이상) 주담대를 무기한 중단했다.
신한은행은 8월 26일부터 임대인(매수자) 소유권 이전, 선순위채권 말소 또는 감액, 주택 처분 등의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당분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갭 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입)’ 등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한 조치다. 신한은행은 또한 모기지신용보험(MCI)과 모기지신용보증(MCG) 취급도 중단하기로 했다. MCI·MCG는 주담대와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이다. 보험이 없으면 소액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해 사실상 대출 한도가 지역별로 2500만∼5500만원 줄어든다. 다른 은행들도 이같은 제한 조치에 동참하기로 했다.
일부 은행은 주담대 거치 기간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치 기간은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납부하는 기간으로, 현재는 주택 구입 시 최대 1년까지 거치가 가능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금리 인상만으로는 가계대출 급증세가 잡히지 않자 대출 한도 축소나 대출 제한 등으로 관리 방향을 바꾸고 있다”라며 “가계부채 관리 상황을 지켜보며 금리 인상 외 추가 대책을 고민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가계부채 근본 원인은 ‘집값’…교통 인프라 확충해야”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기준금리 인하가 예고된 상황에서 시장금리를 인위적으로 올리는 등의 대책은 효과가 일시적이라고 본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지 않고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일만으로는 폭증하는 가계대출 수요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한은이 지난 8월 20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한 달 전보다 3p 오른 118로 나타났다. 지난 2021년 10월 125를 기록한 이후 2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택가격전망지수는 소비자의 1년 뒤 집값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는 지표다. 주택가격전망지수가 100을 넘으면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소비자 비중이 더 크다는 뜻이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매매가 증가하고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주택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가 커진 결과로 한은은 분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서울 주택 종합(아파트·연립·단독주택) 매매가격은 지난 6월보다 0.76% 올랐다. 상승 폭이 전월(0.38%)의 두 배로 0.86%였던 지난 2019년 12월 이후 4년 7개월 만에 가장 컸다.
대출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시장금리는 미국의 기준 금리 인하 기대를 반영해 떨어지는 추세다. 이달 초 은행채 5년 만기(무보증·AAA) 금리는 연 3.101%로 2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픽스도 두 달 연속 내림세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하락세인데, 당국의 압박으로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려 인위적으로 대출 금리를 조절하는 상황”이라며 “가계부채가 늘어난 근본적 원인은 정부가 부동산 가격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인데, 은행의 대출 문턱 높이기만으로 가계부채 증가세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은행이 단기적으로 대출 금리를 인상해 가계대출 규모를 조절하더라도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고 본다”면서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가 큰 상황에서 1금융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 저축은행과 대부업 등 2금융권이나 불법 사금융 등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금리 조정이나 대출 규제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대출을 막는 정책은 서민이 내 집 마련할 기회를 뺏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일”이라면서 “근본적으로 집값을 안정시켜야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방안으로 ‘교통 인프라 구축’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최근 주택가격이 오르는 원인으로 ‘건축원가 상승’을 꼽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건축 원자재 비용과 인건비 등이 오르면서 건축비용이 비싸져 분양가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기존 주택 가격 상승이 예상되자 주택 매입 수요가 늘며 집값이 오른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부동산 가격 안정의 핵심은 서울 주택 수요를 줄여 가격을 낮추는 일”이라며 “교통 인프라를 확충해 수도권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시간을 줄여야 수도권으로 주택 수요가 분산되고 서울의 높은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