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플스토리가 새로운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출시 20년이 지난 게임에 '과도기', '성장통' 등을 빗대기란 일견 어색할 수 있으나, 사실이다. 지난 2010년 첫 출시 이후 14년간 BM(수익모델)의 핵심을 담당하던 '큐브'를 2024년 상반기 내로 전격 삭제하겠다는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이후 IP(지식재산권)확장과 글로벌 시장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전반적인 체질개선을 시도 중이다.
특히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표가 대폭 성장하며 기존의 확률형 아이템 일변도 수익구조에서 탈피해 IP 파워가 뒷받침되는 게임으로 변모하리라는 기대감이 싹트고 있다.
국내 내실 다지고 해외서는 '승승장구'
메이플스토리를 서비스하는 넥슨은 지난 1월 3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16억원42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확률형 아이템인 큐브에서 특정 인기 옵션이 중복으로 나오지 않도록 게임사가 확률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파장은 컸다.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유저가 대거 게임을 이탈했으며, 게임의 인식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넥슨과 메이플스토리는 대대적 쇄신을 약속했다.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위 권고에 따라 피해를 입은 모든 유저에게 최대 217억원에 이르는 보상을 지급하고, 악성 BM의 상징이었던 큐브를 과감히 없앤 것이다. 지난 6월 마지막 유료 큐브인 '에디셔널 큐브'를 삭제했다.
넥슨의 2024년 2분기 실적은 큐브 삭제 이후 처음 받아드는 성적표였다. 당초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메이플스토리 사업이 핵심 BM의 이탈로 인한 단기적 수익 감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고, 일부 적중했다. 실제로 넥슨은 2분기 실적발표 당시 "국내 매출이 예상치를 밑돌았다"며 큐브의 공백을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매출을 제외한 나머지 지표는 오히려 우호적이다.
먼저 국내서버는 '매운 맛 BM' 삭제 효과로 복귀 유저가 증가했다. NPS(순고객추천지수)는 1분기 대비 13포인트 올랐다. 유저들의 과금량이 줄어들며 매출은 감소했지만, 메이플스토리 IP에 대한 순수 충성도는 더 높아진 셈이다.
글로벌 메이플스토리 서비스는 약진에 성공하기도 했다. 한국을 제외한 북미·유럽·동남아시아까지 모두 매출 신기록을 경신했다. 일본에서만 PC 메이플스토리의 매출 규모가 지난해 동기 대비 79% 성장하면서 강세를 보였다.
북미에서는 49%의 성장세를 기록했으며, 기타 중남미와 서구권·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이 35% 늘어났다. 중국서버에서도 넥슨 게임 중 던전앤파이터에 이은 매출 2위를 기록했다. 모바일로 출시된 메이플스토리M 또한 글로벌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43% 상승했다.
이처럼 글로벌 서비스에서의 흥행을 바탕으로 2분기 메이플스토리 전체 프랜차이즈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9% 성장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앞으로도 국내 서비스에서도 단기적인 수익 향상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메이플스토리 관계자는 "국내 서버 운영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며 고객 만족도 향상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고 말했다. 소비자들과의 잃어버린 신뢰를 먼저 되찾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최근 유저들간 갈등의 주범인 '리부트 월드'의 실패를 인정하고, 유저들에게 공개 사과하며 리부트 월드 삭제를 결정하는 등의 행보가 이를 뒷받침한다.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부터 하나씩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장수게임' 저력, IP 파워로 증명한다
현재 메이플스토리는 제2의 던전앤파이터(던파)로 거듭나고자 한다. 현재 던파 IP는 명실상부 넥슨의 킬러콘텐츠다.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을 홀로 창출하며, 국내보다 해외서의 수익이 압도적으로 많다. 메이플스토리도 여기에 착안해 해외 진출과 IP로 승부를 본다는 방침이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던파 모바일은 출시 이후 한달간 410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며 세계 모바일 게임 중 매출 1위를 달성했다. 던파 모바일이 국내 출시된 2022년 3월부터 2024년 6월 30일까지 벌어들인 2316억원을 압도하는 수익을 단 한 달 만에 거둔 것이다. 던파는 향후에도 IP를 확장해 '퍼스트버서커: 카잔', '프로젝트 DW' 등 다양한 게임을 출시할 예정이다.
메이플스토리 M은 지난해 중국 시장에 출시된 이후 넥슨 게임 중 던파의 뒤를 이어 현지 매출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글로벌 수익성을 끌어올려 국내 매출에 연연하지 않는 견고한 버팀목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자체 IP 파워를 강화하고 있다. 그 선봉이 '메이플스토리 월드'다. 메이플스토리의 방대한 리소스를 활용해 누구나 나만의 월드 콘텐츠를 직접 제작, 공유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지난 2022년 9월부터 국내 시범 서비스를 이어오다 2024년 4월 25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빅뱅 패치 전 옛날 메이플스토리를 구현한 메이플랜드, 아르테일 등 옛 유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유저 제작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며 메이플스토리 IP 자체에 대한 접근성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비단 RPG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게임으로도 IP를 구현할 수 있으며, 해외 메이플스토리만의 독자 리소스 역시 사용할 수 있어 유저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넥슨이 메이플스토리 월드를 개방하며 얻는 수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클라우드 서비스 운영 비용과, 플랫폼을 이용하는 창작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며 지출이 발생한다. 창작자 플랫폼인 만큼 매출이 발생해도 일반 창작자들에게 돌아간다는 모토다. 이 점이 더 많은 창작자들을 유입시키고, 이들이 메이플스토리 IP 기반으로 만드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더 많은 유저를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결과적으론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월드 운영으로 파생되는 수익 역시 분기별로 점차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밖에도 넥슨은 블록체인 프로젝트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를 통해 메이플스토리 IP 기반 블록체인 생태계도 선보인다. 블록체인 요소가 결합한 MMORPG다. 캐시샵을 이용하지 않고 한정 수량 NFT를 활용한 자유 시장 경쟁을 추구한다. 유저 대상 첫 테스트에서 평균 82%의 높은 잔존율을 보였으며, 하루 평균 게임 이용자 비율(DAU)은 92%로 참여율도 긍정적이었다. 20년 넘게 장수하며 플레이어들에게 '옛날 게임'으로 비춰지던 메이플스토리가 차세대 기술을 만나 신선한 파급효과를 누리고 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력도 대거 충원한다. 8월 20일부터 9월 2일까지 '2024 메이플 다 함께 집중채용'을 실시 중이다. ▲게임기획 ▲게임아트 ▲게임프로그래밍 ▲프로덕션 ▲게임사업 ▲해외사업 ▲엔지니어 ▲경영 지원 등 총 8개 직군에 세 자릿수 규모에 이르는 대규모 채용이다. 인건비 지출을 늘려서라도 메이플스토리의 전성기를 다시 되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지름길 없어…진정성이 관건
글로벌 시장과 IP 파워를 바탕으로 재도약을 준비하는 메이플스토리지만, 해결과제도 남아있다.
먼저 단기 수익을 내려놓고 '길게 바라보는' 국내 서비스지만, 수익 악화의 장기화는 피해야 한다.
기존처럼 지나친 과금을 유도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대체 BM 마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실 확률형 아이템 중심 BM은 효과 하나만큼은 뛰어났다. 게임 캐릭터의 스펙 요소와 연계해 유저들의 경쟁심을 자극해 과금을 유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트렌드가 바뀌었다. 기존 확률형 아이템으로 유명하던 게임들도 하나씩 착한 BM을 내세우고 있다. 메이플스토리는 아직 대체 BM을 확정짓지 않았다. 타 RPG 장르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시스템과 플레이 스타일을, 그래픽 디자인을 자랑하는 메이플스토리인 만큼 치장형 아이템과 패스 등 다양한 방면에서 부드럽게 녹아드는 대체 BM을 설정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받는다.
큐브 삭제로 인한 인게임 혼란도 해결과제다. 과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잠재능력 설정을 메소로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인게임 경제상황이 바뀌고 있다. 리부트월드 삭제로 리부트월드 유저들이 기본 서버로 유입되며 일어나는 변화도 변수다. 메이플스토리는 오는 10월 신규 콘텐츠 '아즈모스 협곡'을 추가하며 메소나 기타 강화 수단을 획득할 수 있는 콘텐츠 역시 출시하며 인게임 혼란을 바로잡겠다는 계획이다. 과연 메이플스토리가 시도하는 대격변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앞으로의 업데이트가 주목된다.
메이플스토리는 오랜 기간 서비스 해오며 수많은 부침을 겪어왔다. 그 과정에서 수차례 지름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큐브로 대표되는 과도한 BM도 수익을 보장하는 지름길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메이플스토리 국내 서비스 부문은 다가올 3분기에도 고전할 예정이다. 유저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랑을 되찾는 데에는 지름길이 없다. 진정성 있는 운영과 업데이트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그리고 큐브 삭제는 그 첫 걸음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