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중국이 미국의 제재와 맞물려 AI(인공지능)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자국 팹리스를 육성하는 가운데, 화웨이·바이렌(Biren) 등으로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면서 이러한 지원 정책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체 불가' 엔비디아

2022년말 오픈AI가 챗GPT를 공개한 이후 전세계는 AI 열풍에 휩싸였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등과 같은 미국 빅테크는 물론 한국의 네이버 등 각국 기술 기업들은 AI 서버를 구축하고 AI 서비스를 상용화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했다. 

이로 인해 GPU(그래픽처리장치) 시장에서 선두자리에 있던 엔비디아의 주가는 2022년말부터 현재까지 8배 이상 폭등했다. 본래 GPU는 게임 제작 등 그래픽 처리에 특화된 프로세서였으나, AI 가속기로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엔비디아의 GPU는 품귀현상을 보였다. 

한때 엔비디아의 최신 GPU인 H100의 가격은 대당 6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치솟았다. 부담스러운 가격에 빅테크를 포함한 수많은 AI 스타트업들이 AI 가속기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여전히 AI 가속기 시장에 엔비디아를 대체할 경쟁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에릭 슈미티 구글 전 CEO(최고경영자)는 최근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거대 기술기업들이 엔비디아 칩 기반 AI 데이터센터에 점점 더 많은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선도적인 모델과 다른 모델들 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AI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많은 오픈 소스 도구들이 엔비디아의 쿠다(CUDA) 프로그래밍 언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경쟁사들이 엔비디아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말했다. 

엔비다아가 H100 다음으로 선보인 블랙웰(B100) 칩에 대해서도 이미 빅테크들은 수천억달러치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설계 결함 문제로 블랙웰은 양산 지연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블랙웰은 기존 계획대로 올해 양산될 것으로 보여진다. 

인해전술 中 팹리스에 올라타는 SMIC

국가별 팹리스 점유율. 사진=KDI '반도체 경쟁력을 지켜라'
국가별 팹리스 점유율. 사진=KDI '반도체 경쟁력을 지켜라'

전세계가 엔비디아에 의존하는 가운데 중국이 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2020년 미국은 국가 보안을 이유로 화웨이가 해외에서 반도체 부품을 공급받는 길을 완전히 막았다. 이후 미국은 대중 반도체 규제를 점점 강화하고 있다.  

엔비디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재 H100은 중국 수출이 금지됐으며, 이로 인해 중국은 H20과 같은 중국 수출용 칩을 사용한다. 

중국은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중국은 7나노 공정을 활용해 AI칩을 제조하는 한편,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팹리스 산업에 집중해 AI칩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미국 제재로 7나노 이하 공정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EUV(극자외선) 장비를 수입할 수 없는 중국 파운드리기업 SMIC는 EUV 이전 세대인 DUV(심자외선) 장비를 활용해 7나노 제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더불어 화웨이의 AI 가속기인 ‘어센드 910B’는 엔비디아의 A100 성능에 필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100은 H100 이전 세대의 AI 가속기다. 

화웨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차세대 AI 가속기인 ‘어센드 910C’를 곧 선보일 예정이며, 어센드 910C의 성능은 H100에 맞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소식통을 인용해 화웨이가 잠재적인 고객에게 어센드 910C이 오는 10월 출시할 예정이며, 엔비디아의 H100과 비슷한 수준의 성능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칩과 중국 AI 반도체 칩 간 성능 비교. 사진=한국반도체산업협회 '중국의 AI 반도체 산업' 보고서.
엔비디아 칩과 중국 AI 반도체 칩 간 성능 비교. 사진=한국반도체산업협회 '중국의 AI 반도체 산업' 보고서.

화웨이뿐만 아니라 ‘바이렌 테크놀로지’등 AI 스타트업들도 엔비디아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상하이에 위치한 AI 반도체 회사인 바이렌 테크놀로지는 7나노 공정을 적용한 ‘BR100’ 칩을 공개했다. BR100은 최대연산성능 기준 A100보다 2배 가까이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 

2022년 전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9%이다. 한국이 1%인 것과 비교해 대조되는 수치다. 

중국은 2014년 ‘국가반도체산업 투자펀드(빅펀드 1기)’부터 2024년 ‘빅펀드 3기’까지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반도체 기업을 육성했다. 

그 결과 중국 팹리스 기업의 수는 작년 3400개를 돌파했다. 3000여개 넘는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한 끝에 화웨이나 바이렌과 같은 혁신 기업들이 탄생한 것이다. 

더욱 눈에 띄는 점은 팹리스와 함께 파운드리까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SMIC는 올해 1분기 사상 처음으로 전세계 파운드리에서 3위 자리에 올랐다. SMIC는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19.7% 늘어난 17억5000만달러(약 2조3600억원)을 기록하며 TSMC와 삼성전자에 뒤를 이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분기에도 성장을 지속했다. SMIC의 2분기 매출액은 1분기 대비 8.6% 늘어난 19억달러로 집계됐다. 

SMIC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자국 팹리스 기업들의 주문이 몰리기 때문이다. 2분기 SMIC 매출 중 80.3%가 중국에서 발생했다. 

이전 세대 장비를 활용해 최신 공정 제품을 생산하다보니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으나, 2분기 매출총이익이 직전 분기보다 12.5% 증가하면서 이 또한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계속되는 중국의 지원

지난 5월 제일재경 등 중국 매체는 중국 정부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반도체산업 투자펀드(빅펀드 3기)를 설립했다고 보도했다. 펀드 규모는 3440억위안(약 64조3300억원)으로, 2019년 빅펀드 2기(2041억위안)보다 68% 늘어났다. 빅펀드 3기는 중국 재정부가 최대 주주이며 국가개발은행 산하 CDB캐피탈과 공상은행, 건설은행 등 대형 국유은행이 지분을 출자했다.

2014년 처음으로 출범한 빅펀드는 SMIC, 중국 낸드플래시 제조업체 YMTC 그리고 중국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회사에 투자하며 이들 기업을 지원해 왔다. 

화웨이는 현재 5나노 기반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향후 이를 제조하는 SMIC의 손실이 더욱 커질 것으로 분석되나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화웨이·바이렌 등 팹리스 기업과 SMIC의 반도체 굴기는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