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칩 시장이 격변하는 가운데 소프트뱅크가 인텔에 AI칩 협력을 타진했으나 최종적으로 결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 맞춤 승부수를 띄우고 화웨이는 새로운 AI칩 발표 초읽기에 들어가는 등 정신없는 대난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각 기업들이 최근 급변하는 업계 트렌드속에서 협력과 결렬을 반복하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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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인사이드의 여명
소프트뱅크가 인텔과 AI칩 협력을 타진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4일(현지시간) "소프트뱅크가 엔비디아에 대항할 목적으로 인텔과 AI칩 협력에 나서려 했으나 협상은 결렬됐다"면서 "AI칩 시장이 성장하며 두 기업이 재차 협상을 벌일 가능성은 열렸으나 당분간은 결렬된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 보도했다.

두 기업의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인텔이 소프트뱅크의 요구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프트뱅크가 엔비디아 AI칩에 필적할 수준의 설계와 제작을 인텔에 제시했으나, 막상 인텔은 인상적인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는 인텔과 AI칩을 제작할 경우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인텔이 축적한 AI칩 제작 능력을 십분살리면 '반 엔비디아 전선의 맹주'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꿨을 것으로 추정된다. Arm의 지분 90%를 가진 상태에서도 굳이 인텔과 손을 잡으려 했던 중요한 배경이다. 

그럼에도 협상이 결렬된 것은 결국 인텔의 '실력 부족'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장 네이버와 협력하는 AI 가속기 가우디를 띄우며 AI칩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큰 반향이 없다. 6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에서 가우디3를 엔비디아 제품의 3분의 2 가격에 공급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시장 점유율은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2021년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 선언 후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가우디3 생산을 대만 TSMC에 맡기기로 결정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최근 인텔이 Arm 지분을 매각한 것을 두고 자금 확보 차원을 넘어 일종의 '시장 재편을 염두에 둔 전략적 판단'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와 인텔의 '결렬'을 두고 최근 5G 정국에 있었던 애플과 인텔의 파국을 떠올리기도 한다.

애플이 2017년 퀄컴과 라이선스 분쟁에 돌입했을 당시, 인텔은 아이폰 오리지널부터 아이폰4까지 모뎀칩을 제공했던 인피니온을 인수하며 갑자기 애플과 브로맨스를 자랑한 바 있다. 그 결과 애플은 퀄컴과의 분쟁과는 별도로 인텔과 협력해 5G 모뎀칩 개발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퀄컴으로부터 부품을 제공받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인텔과의 협력으로 5G 모뎀칩 개발에 성공, 일종의 '탈퀄컴'을 노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애플의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텔 모뎀칩 사업부를 10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발 빠른 행보에 나섰으나 막상 중요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변죽만 울렸을 뿐 가시적인 성과는 전무했다.

그러는 사이 2019년을 기점으로 삼성전자 등은 빠르게 5G 스마트폰을 출시했으나 애플은 5G 아이폰을 출시하지 못했고, 급한 마음에 2019년 초 삼성전자에 5G 모뎀칩 공급을 요청했으나 물량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중국 화웨이가 애플에 자사 5G 모뎀칩을 제공하겠다며 손을 내미는 이색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결국 애플은 퀄컴에 백기투항하며 라이선스 분쟁을 급하게 마무리한 후에야 5G 아이폰을 뒤늦게 출시할 수 있었다. 

인텔에 대한 시장의 실망감이 커지는 이유다. 최근 충격과 공포에 가까운 저조한 2분기 실적을 받아든 상황에서 인텔 인사이드에 여명이 깃드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1968년 산타클라라에서 노이스-무어 일렉트로닉스(Noyce-Moore Electronics)로 창립된 후 사명을 인텔로 변경, 지금까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이자 상위 포식자로 군림한 역사가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편 인텔과 ARM의 미묘한 관계도 눈길을 끈다. 

종합 반도체 기업인 인텔과 IP 기반의 Arm은 서로 성격이 다른 회사지만, 반도체 산업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속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산업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물론 Arm의 위력은 막강하지만, 퀄컴이 스마트폰용 차세대 SoC(시스템반도체) 스냅드래곤8 4세대(가칭)를 기존 Arm IP(지적재산권) 기반 크라이오 아키텍처가 아닌 오라이온(Oryon) CPU로 교체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벌이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누비아 인수부터 시작된 Arm 몰아내기 흐름이 오라이온의 PC 접목을 통한 스냅드래곤X 엘리트 탄생에 이어, 주력인 스냅드래곤8 4세대까지 집어삼키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리스크 파이브(Risc-V) 생태계 확장이 Arm에게 점진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인텔도 '탈인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플이 2020년 8개의 CPU 코어, 8개의 GPU 코어, 그리고 16개의 코어를 자랑하는 뉴럴엔진에 D램이 하나로 통합된 M1을 처음 공개한 후 본격적으로 탈인텔의 길을 걷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초반 IBM이 16비트 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표준을 완성한 후 CPU와 같은 하드웨어 생태계는 인텔이, 윈도의 소프트웨어 기술은 MS가 맡아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일종의 공식처럼 여겨진 바 있다. 앤디 그로브가 인텔 인사이드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으로는 인텔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강했기 때문이지만, MS의 윈도라는 강력한 우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인텔과 MS의 동맹은 크게 흔들렸으며, 결국 MS는 인텔을 버리고 말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MS가 ARM 기반 CPU를 인텔의 대안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더더 흥미로운 것은 그런 인텔과 Arm이 소프트뱅크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고, 그 중심의 소프트뱅크는 Arm의 90% 주주면서도 Arm의 반발을 무릅쓰고 인텔과 AI칩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결국 무위로 끝나는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그 패턴 자체도 '비슷비슷'하다.

사진=퀄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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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AI칩 대전
소프트뱅크는 인텔과의 협력을 포기한 후 파운드리 측면에서는 TSMC와 논의를 시작했다. 다만 TSMC로 쏠린 물량이 지나치게 많아 실제 협력은 어렵다는 말도 나오며, 특히 설계에서는 명확한 파트너가 없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AI칩의 제왕 엔비디아가 건재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다. 엔비디아의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를 충족할 수 있는 곳이 사실상 TSMC외 없다는 것도 소프트뱅크에게는 불행이다.

다만 엔비디아도 걱정이 많다. 특히 중국 시장이 모호하다. H20 등 저가 제품으로 미중 패권전쟁의 엄혹한 '규제의 눈'을 피한다는 방침이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틈새전략'이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심지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화웨이는 이르면 오는 10월 대량 출고를 목표로 최신 AI 칩 ‘어센드 910C’ 샘플을 중국 현지 테크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알려진 대로 H100과 비슷한 성능을 자랑한다면 엔비디아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애플에 5G칩을 실제로 제공하지는 못했으나, 엔비디아 대용품을 자국 시장에 풀 수 있는 기회는 잡은 셈이다.

여기에 7조달러의 펀드를 목표로 하는 오픈AI, 자체 TPU 전략을 가동하는 구글은 물론 마이아100 등을 기점으로 판을 키우는 아마존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AI칩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엔비디아가 AI칩을 열심히 생산하면 오픈AI가 이를 열심히 소비하던 기존의 패턴이 오픈AI의 7조달러 펀드로 깨진 상태에서 범용 AI칩 전반을 두고 벌어지는 화려한 이합집산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이들은 각자의 시장 및 협력의 흐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설계와 제작의 연결, 혹은 극단적인 이원화 흐름이 포착되는 가운데 각 기업들의 경쟁은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 전자의 경우 HBM 등을 매개로 하는 다양한 기업들의 조합이 변수가 될 전망이며, 후자의 경우 덩치가 큰 빅테크들의 시장 나눠먹기 트렌드가 강해지는 방향이 유력하다. 이를 모두 아우르는 큰 그림은 역시 미중 패권전쟁 아래의 시장 세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