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사진=김연정 객원기자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사진=김연정 이코노믹리뷰 객원기자

무역자유화 기치를 내건 세계무역기구(WTO)는 1995년 출범했다. 세계 각국은 1980년대까지 유지되던 보호무역 기조를 버리고 다자무역체제에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 각 국가는 자연스럽게 ‘잘하는 산업’에 집중하게 됐다. 쌀, 옥수수, 사탕수수, 코코아 등 농산물 작황이 좋은 나라는 재배 특화에 나섰다. 공산품의 세계화는 ‘원재료→반제품→완제품’ 등으로 각 부문에 장점을 갖춘 국가들의 글로벌 밸류체인 조직으로 진화했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에서 원유(原油)를 공수해, 한국 석유화학사에서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만든다. 이를 중국이 수입해 장난감, 비닐봉투, 도시락 용기 등 다양한 완제품을 만들어 세계에 공급하는 구조다. WTO 체제가 공고해지며 글로벌 물동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 글로벌 밸류체인이 무너지며 ‘내 나라’, ‘내 지역’ 안에서 생산과 소비를 외치며 물동량이 줄고 있다.

8월 9일 이코노믹리뷰가 만난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WTO 체제 종말 속에서 우리 물류업계가 하루 빨리 종합물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전쟁 특수에 감춰진 물동량 축소

사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물동량은 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서 2023년 발표한 ‘글로벌 컨테이너 항만물동량 현황 및 분석’ 보고서에서는 2024년 글로벌 컨테이너 항만물동량이 전년 대비 3.1%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WTO 출범 이후 국가간 물동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발간한 ‘해상운송 검토 2017(Review of Maritime Transport 2017)’ 조사에서도 세계 해상물동량이 1980년대 30억톤대에서 2016년 100억톤대로 우상향 기조다. 

그러나 물류업계는 이미 ‘시대가 바뀌었다’고 평가한다. 구 협회장은 “국제 물류 트렌드는 무역과 관련 깊다”며 “WTO는 죽었다. 지금은 자유무역협정(FTA) 시대, 불록 경제 시대”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해상 운송 물동량이 느는 것처럼 추세 분석을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서 생산해 납품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이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 시행 1년간 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일본, 캐나다 등의 대미 투자가 급증한 것이 그 증거다.

구 협회장은 단적인 예로 HMM(구 현대상선)의 대만 가오슝 터미널 사례를 지적했다. 물동량이 줄자 HMM이 가오슝항 터미널 1개를 내놓은 것이다. HMM은 2016년부터 가오슝항 전용 부두에 장기임대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이 중 1개 터미널에서 운영하던 3개 부두는 지난해 9월 임대기간을 20년 연장했다. 나머지 1개 터미널에 속한 2개 부두는 적자를 지속하다 선석 계약기간 종료로 반납할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미국이 먼저 들고 나온 자국우선주의가 크게 작용했다. 구 협회장은 “먼저 전세계가 이제 현지 생산 방식인 리쇼어링(Re-shoring)을 택하고 있다”며 “두번째는 가까운 나라에서 공급받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세번째는 우방국과 교류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다. 이렇게 되면 한‧중‧일, 대만에서 올 물동량이 별로 없다”고 내다봤다. 

이외에도 코로나19, 전쟁, 기후환경 등 특수한 상황을 언급했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물동량 정체 현상으로 5000대까지 상승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며 같은해 상반기까지 4000대를 넘는 운임 고공행진이 이어졌다.

1000대로 잠잠하던 2023년을 지나, 올해 5월께는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지역 선박 공격으로 이집트 수에즈운하가 막혔다. 이에 SCFI가 반등했다. 8월 9일 현재 SCFI는 3253.89를 기록하고 있다. 올 초 가뭄으로 파나마 운하 운행이 막힌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구 협회장은 이러한 대외 변수로 실제적인 물동량 감소 현상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대세, 육해공 총집합 ‘종합물류’

해양수산통계센터에서 정리한 UNCTAD의 ‘해상운송 검토 2017’ 중 세계 해상 수송량 추이. 사진=해양수산통계센터
해양수산통계센터에서 정리한 UNCTAD의 ‘해상운송 검토 2017’ 중 세계 해상 수송량 추이. 사진=해양수산통계센터

물동량이 줄어들며 글로벌 물류업계는 ‘종합물류회사’로 변모하는 추세다. 한가지 물류 사업만 하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아마존을 비롯해 UPS, 페덱스, DHL, 머스크, CMA CGM 등 해외 유명 물류기업은 최근 몇년새 종합물류 사업을 강화하고 나섰다. 이들은 육상물류를 영위하는 트럭은 물론이고 선박, 항공기까지 사들이며 육해공 어디서나 연결 가능한 물류 밸류체인을 조직하고 있다. 

구 협회장은 세계적인 종합물류 흐름과 관련해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고객 중심 물류가 되어야 한다”며 “유럽은 이미 실천하고 있다. 영역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어 “카페에서 핸드폰을 팔고 쿠팡이 영화를 보여주는 시대”라며 “업의 경계가 무너졌는데 우리는 여전히 ‘해운만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틀이 있다”고 꼬집었다.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구 협회장은 포워더 중심으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포워더는 제품을 화주 대신 고객에 배송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을 뜻한다. 이때 배송은 수집, 저장, 운송, 관리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야말로 화주와 고객을 연결하는 중개자 역할인 셈이다.

구 협회장은 “글로벌 상위 포워딩 업체인 DHL, 퀴네앤드나겔, DB 쉥커, CMA CGM 등은 종합물류를 영위하는 회사로 해운‧항공‧철도‧창고‧3PL(3자물류)을 모두 담당해 잘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유럽은 포워딩 업체가 최고다. 우리나라 물류업계도 이러한 기업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계적인 종합물류기업 육성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인수합병(M&A)이 지목된다. 구 협회장은 “우리나라 포워더는 5000여개에 이르지만 영세해 운송회사(캐리어)에 휘둘린다”며 “구멍가게 가지고 종합물류를 할 수는 없다. 글로벌 종합물류 서비스를 하려면 수조원의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이 M&A를 통해 몸집을 불려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유럽은 포워더가 규모를 키워 물량을 주는 사람이 갑이다. 캐리어에 휘둘리는 구조를 뒤집을 만큼 힘을 키우려면 M&A가 필요한 이유”라며 “해외 포워더 기업들도 수백, 수천번의 M&A와 지분투자 등으로 기업 경쟁력을 키웠다”고 부연했다.

구 협회장은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국내 물류 기업으로 CJ대한통운을 손꼽았다. 그는 “CJ대한통운은 포워딩도 있고 화물차, 항만, 택배, 해운, 통관, 국제물류 등 글로벌 종합물류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재‧유통‧제약‧패션‧이커머스 등 다루지 않는 사업이 없고 B2B(기업 간 거래), B2C(기업과 개인 간 거래)를 모두 영위하는 부분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핵심과제, 소관 부처 정리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사진=김연정 이코노믹리뷰 객원기자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사진=김연정 이코노믹리뷰 객원기자

구 협회장은 국내 종합물류를 위한 핵심과제로 소관 부처 정리를 가리켰다. 구 협회장은 “해수부는 해운밖에 못하고, 국토교통부는 도로·철도·항공·창고·포워딩 등을 담당한다. 문제는 종합물류를 할 때 보고체계에 혼선이 생긴다는 것”이라며 “부처간 이견이 없도록 일본처럼 국토교통성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도로, 철도 해운, 항공, 관광 레저를 모두 담당한다”고 확인했다.

또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를 합쳐 (육해공 교통 관련 사업만 선정해) ‘교통물류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에 국토교통부의 국토는 국토건설부로 바꾸고 주택‧댐‧도로‧철도 건설 등을 담당하게 해야한다”며 “해양수산부는 해체수순으로 가야한다고 본다. 수산은 농림식품부에 더하고, 해양은 교통물류부에서 담당하게 하면 된다”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 협회장은 마지막으로 “지금은 세계 무역과 유통, 물류 트렌드의 터닝 포인트(분기점)”라며 “2~3년 전부터 이커머스업계를 중심으로 (직구‧역직구를 일컫는) ‘크로스 보더 트레이드(CBT, Cross Border Trade)’가 폭발적으로 성장해 향후 시장 규모만 170조원가량으로 예상된다”고 환기했다.

그러면서 “이 시장을 잡으려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며 “한국형 DHL을 만들어야 한다. 1000개 넘는 회사를 M&A해 100조원 넘는 규모를 만든 것이 DHL 그룹으로, 머스크 그룹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