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의 전 국가주석 마오쩌둥은 1955년 농촌 현지지도에서 참새를 가리켜 "해로운 새(害鳥)"라 지목했다.

수 많은 인민들이 굶주린 가운데 농촌의 쌀알을 털어가는 참새가 곱게 보이지 않았을 터. 그렇게 권력자의 손가락에 찍힌 참새는 제사해운동(除四害运动)의 일환으로 멸절의 길을 걸었다. 이후로는 알려진 그대로다. 해충을 잡아먹던 참새가 사라지자 유례없는 대기근이 시작됐고, 결국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소련으로부터 참새를 수입해 풀어놓는 촌극을 연출해야 했다.

마오쩌둥은 힘들어하는 인민들을 위해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항상 의도가 좋다고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가정의 복원을 위해 주류유통을 금지했으나 오히려 부작용만 키웠던 미국의 금주법처럼, 선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생아실. 사진=연합뉴스
신생아실. 사진=연합뉴스

필리핀 가사 도우미 나비효과
"대한민국 정말 망했네요"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보고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이 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위기에 처한 것은 맞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명을 기록한 후 올해 1분기 기어이 0.76명을 찍어 최소치를 경신했다. 소멸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가운데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 관리사(도우미)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9월부터 최초 100명의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300가구에 연결해 돌봄사업을 펼친다는 설명이다. 벌써부터 5대1의 경쟁율을 기록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저출산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돌봄사업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필리핀 가사 도우미 사업은 일견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외면하는 임시방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인 가사 도우미에 대한 역차별이 문제다.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가사근로자고용개선지원 사업에 75억8900만원을 편성하고 한국인 가사 도우미들의 사회보험료 지원 사업으로 27억6400만원을 배정했으나 실제로 지원된 금액은 4억8800만원에 그쳤다.

실효성에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 도우미 도입으로 인해 저출산 문제가 일부 해결될 것이라 말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왜 돌봄은 값싸게 외주화되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 가운데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서울시는 홍콩과 싱가포르 등이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도입해 성과를 거뒀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한국 못지않은 저출생 국가"라며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들어온다고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 낙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돌봄사업의 지나친 민영화, 나아가 서비스의 질적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5월 공공돌봄을 책임졌던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해산을 승인하는 등 공공영역 돌봄사업이 위기를 맞은 상태에서 지나친 민간 중심의 서비스 확장이 고착화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다.

필리핀 가사 도우미 효과를 마냥 장담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업무 범위가 단순히 아동 돌봄뿐만 아니라 가사까지 포함되기에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핵심인 돌봄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돈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필리핀 가사 도우미 시간급은 최저임금(9860원)과 4대 보험료를 감안해 시간당 1만3700원으로 책정됐다.

이용료가 하루 4시간 이용 시 월 119만원, 8시간 이용 시에는 월 238만원에 달하는 가운데 금액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기존 서비스와 달리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반론도 나오지만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토론회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숙소는 강남구에 있다"면서 "결국 주 이용자들은 (소득이 높은) 강남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말했다.

필리핀 가사 도우미들이 대한민국 자본권력의 핵심인 강남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가뜩이나 돌봄사업의 지나친 민영화가 추진되며 모두를 위한 공공 서비스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한국 가사 노동자의 권익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사진=챗GPT
사진=챗GPT

최저임금 딜레마
필리핀 가사 도우미의 임금이 높은 이유는 1만원을 돌파한 최저임금제도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내·외국인 임금 차별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기반해 국내 노동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물론 1만5000원 안팎인 국내 가사 도우미와 비교하면 저렴한 임금이다. 그러나 가장 절실하게 돌봄사업이 필요한 중산층 및 저소득자들 입장에서 월 238만원의 필리핀 가사 도우미 임금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 도우미 사업으로 돌봄사업의 확산을 꾀하고 있으나, 실상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돌봄사업의 실질적 적용을 위해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사 도우미에 있어 최저임금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싱가포르 등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는 한편 강남을 넘어 대부분의 중산층 및 저소득자들을 위한 실질적 돌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르바이트생. 사진=연합뉴스
아르바이트생. 사진=연합뉴스

여세를 몰아 최저임금에 대한 심층적인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신중하게 고려하면서 산업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적절한 균형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높아진 최저임금으로 아르바이트생들은 종일이 아닌 파트타임으로 뛰어다니는 비극을 체험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과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취업자 2808만9000명 중 28.6%에 해당하는 802만8000명이 주 36시간 미만 취업자로 나타났다. 여기에 서울시가 야심차게 시작한 필리핀 가사 도우미는 소위 강남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상인가. 

알바천국이 아르바이트생 1,425명과 사업자 171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설문조사를 결과 아르바이트생 59.0%는 만족했으나 사업자 87.7%는 불만이라고 답했다. '59vs 87' 우리는 이러한 구도를 기형적 구도라 부른다. 당연히 기형적 구도는 오래가지 못하고 붕괴하기 마련이다. 이미 많은 사업장에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키오스크가 깔리는 중이다. 기술의 발전 뒤에 숨은 균형의 파괴다. 엔저의 영향도 있다지만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10월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9460원으로 책정됐다.

정부는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을 통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바 있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선한 의지다. 그러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해 주는 대신 2년이 되기 전에 근로계약을 파기하는 편법이 횡행하며 비정규직 보호법은 오히려 비정규직 파괴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다.

최저임금도 선한 의지다. 그러나 그 선한 의지로 최소한의 경제 생태계가 붕괴되면 모든 것이 끝장인 셈이다. 59.0%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만족한다지만 사업자가 모두 망해 일할 곳이 없어도 만족할 수 있을까? 부당한 착취는 없어야 하지만 최소한의 균형은 필요하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취약계층 노동자들과 최저임금을 지키지 못하는 사업자들이 벌이는 환장의 불법쇼를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책상에 앉아 손가락 하나로 휙휙 세상사를 재단하고 마는 공인들의 책임이다. 정말 지옥을 보고 싶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