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홍 산업1부장.
최진홍 산업1부장.

우리는 흔히 중남미 문명 멸망 원인을 두고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을 지목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잉카나 아즈텍과 달리 마야 문명은 사정이 약간 다르다. 기원전 800년 고졸기를 시작으로 유카탄 반도에서 융성했던 마야 문명은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에 마지막 숨통이 끊기기는 했으나, 사실은 전부터 이미 죽음의 정글로 스스로 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극의 정확한 내막은 무엇일까? 많은 역사가들은 마야 문명의 낮은 농업 생산성, 고립된 지형, 지배층을 중심으로 한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에 주목한다. 비옥한 농토가 아닌 독초만 가득한 열대우림은 통념과 달리 농업 생산성이 낮아 인구를 부양하기 어렵고 유카탄 반도 자체가 외부와 연결되어 있지 못했기에 새로운 문명의 전환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마야 문명의 지배층들은 거의 광적일 정도로 전쟁에 집착해 가뜩이나 부족했던 사회 자원을 갉아먹는데 크게 일조했다.

지금은 또 다른 학설이 부상하고 있다. 마야 문명에 결정타를 날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변화라는 주장이다. 커다란 강이 없는 유카탄 반도에 소빙하기가 시작되며 최악의 가뭄이 시작됐고, 가뜩이나 지력을 크게 소모시키는 옥수수 농사에 종사하던 마야인들이 농작지를 넓히려 무리하게 화전에 몰두하다 가뭄이라는 갑작스러운 변수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결국 대기근을 피할 수 없던 마야인들의 사회는 대혼란에 빠졌고 이는 곧 거대 문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최근 전 지구적 기후변화가 심상치않다. 지난달 세계 평균 기온이 역대 6월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나 13개월 연속 최고 수준을 기록한 가운데 해수면 온도 역시 15개월 연속 최고로 나오는 등 심상치 않은 데이터들이 쏟아지고 있다. 고온과 강풍을 동반한 기후가 이어지며 북미에서는 재앙에 가까운 산불이 연일 벌어지고 있으며 지난달 이슬람 성지순례 기간엔 온열 질환 사망자가 1300명을 넘겼다.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폭염과 폭우가 일상이 되는 중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의 '2023 국민환경의식조사'에 따르면 '한국이 직면한 중요한 환경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3개 복수응답)에 '기후변화'라는 응답이 63.9%로 가장 높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쓰레기·폐기물 처리문제'(58.4%), '대기오염·미세먼지 문제'(50.1%), '과대포장으로 인한 쓰레기 발생'(27.3%), '생태계 훼손'(25.6%), '생활 속 유해 화학물질'(21.1%) 등이 뒤를 이었다. 

다행히 인류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넷제로 등 다양한 제어장치를 고안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탄소 발자국 및 탄소배출권 등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등 많은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뒷맛은 씁쓸하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전 세계의 환경을 미친듯이 파괴한 서구사회가 지금에 이르러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구를 지키자"며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들에게 탄소규제의 유리천장을 덧씌우고 있기 때문이다.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작태다. 최소한 진심을 보이려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자행한 더러운 짓거리들을 먼저 반성하고 선제적인 책임을 졌어야 하지만, 서구사회는 입 싹 닫고 "우리는 이제부터 환경 지킬테니 너희들도 따라와"라고 피식거린다.

하지만 어쩌겠나. 지구는 죽어가고 있고 전 세계 산업의 규칙은 그들이 주도한다. 일단 급한 불은 꺼야하지 않겠나. 재생 에너지 중심의 관련 인프라를 빠르게 확충해 신속한 대응을 바탕으로 '전화위복'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수출 중심형 국가인 한국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에 정부부터 실질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소위 말하는 사회 지도층, 오피니언 리더들이 앞장서 난제와 정면승부를 벌여야 한다. 아직 위기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러나 이 난제는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 죽고 싶은가.

여담이지만 현재 마야 문명 유적지 곳곳에는 치아에 화려한 장식을 한 시신들이 마구 뒤엉킨체 자주 발굴된다고 한다. 유력 지배층들이다. 그런데 대부분 머리가 깨지는 등 치명적 부상을 입은체 죽었다고 한다. 살아생전 기세등등했을 그들이 왜 이렇게 비참하고 형편없이 죽어 묻혔을까. 역사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대기근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전쟁에만 몰두했던 지배층을 평민들이 습격해 죽여 인신공양한 흔적으로 본다. 그냥, 그렇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