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시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서부 팔로 알토에 위치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자택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지난 11일(현지시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서부 팔로 알토에 위치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자택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AI(인공지능), 에너지 대전환, 공급망 다변화 등 글로벌 경제가 대격변의 시대를 맞았다. 위기 속 기회를 잡기 위한 총수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4대 그룹 총수, 종횡무진

26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4대 그룹(삼성, SK, 현대자동차, LG) 총수들은 일제히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 들어 중동, 말레이시아, 유럽, 미국을 연이어 찾으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지난 2월 경영권 승계 관련 1심 재판 무죄 선고 후 하루 만에 중동과 말레이시아를 향하는 출장길에 올랐다. 말레이시아 스름반에 있는 삼성SDI 배터리 1공장 생산현장 및 2공장 건설현장을 살폈다. 

올해 이차전지 시장이 주츰하고 있지만 장기적 성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가운데 2020년부터 1조7000억원을 들여 2공장을 건설 중인 만큼 이재용 회장이 말레이시아를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 판결 이후 첫 행보 결정지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 

중동 및 말레이시아 출장 이후 이 회장은 유럽과 미국도 연이어 방문했다. 이재용 회장은 4월 유럽에서 독일 오버코헨에 위치한 자이스(ZEISS) 본사를 방문해 칼 람프레이트 최고경영자(CEO) 등 주요 경영진과 회동했다. 자이스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기술 관련 핵심 특허를 2000개 이상 보유한 글로벌 광학 기업으로, 양사는 EUV 기술 및 첨단 반도체 장비 관련 분야에서의 협력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5월에 있었던 미국 출장에선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를 만났다. 이 회장은 유럽과 미국 출장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미래 기술 경쟁력을 점검하며 반도체와 AI 등 미래 사업 전략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6월달에만 대만과 미국을 연이어 찾았다. 미국은 지난 4월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다. 

최 회장은 대만과 미국 출장에서 웨이저자 TSMC 이사회 의장(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과 만나 AI 및 반도체 시장을 점검하고 협력을 도모했다. SK하이닉스는 작년부터 엔비디아의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대부분을 충족시키고 있으며, TSMC는 SK하이닉스가 납품한 HBM을 사용해 최종적으로 엔비디아의 AI칩을 만든다. 

HBM은 일반 범용 D램과 달리 사용자 맞춤형 메모리이기 때문에 향후 이러한 협력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SK하이닉스는 HBM4부터는 TSMC의 로직 공정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 예정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글로벌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출장을 마친 그는 최근 방한한 척 로빈스 미국 시스코 회장을 만나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중이다.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 기업인 시스코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에 적용될 수 있는 AI 보안 솔루션을 보유한 회사다. 이날 정의선 회장과 척 로빈스 회장은 SDV 사업과 관련해 다양한 협력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으로 보여진다. 

구광모 LG 회장도 지난 17일(현지시간)부터 나흘 동안 미국 테네시주, 실리콘밸리 등을 방문해 현지 사업을 살피고 신사업 현황을 살폈다. 이번 출장 기간 동안 구 회장은 미국 테네시에서 LG전자 생산법인, LG에너지솔루션·GM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등을 방문하고, 실리콘밸리에서는 LG의 미래준비를 위한 스타트업 투자 허브 LG테크놀로지벤처스와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를 찾아 AI 분야 등 미래준비를 위한 스타트업 투자·육성 전략을 논의했다.

이뿐만 아니라 구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LG 사업장 외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AI 스타트업을 찾아 LG의 AI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AI 분야 최신 기술 동향을 살폈다.

이유는 ‘AI·에너지 등 급변하는 세계 정세’

재계 총수들이 바삐 움직이는 이유는 글로벌 경제의 빠른 속도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 펜데믹과 2022년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AI 웨이브가 특히 결정적이었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비대면 생활로 인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했고, 이것이 곧 전기차와 SDV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이어 2022년 오픈AI에서 챗GPT를 공개한 이후 전세계는 AI에 열광하기 시작, 각 기업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쏟고 있다. 

또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AI서버의 확장으로 인해 세계 전력 소비량은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 에너지원을 구함과 동시에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는 원자로 등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맥락에 주요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들은 석유 시대 이후를 준비하고 위해 네옴시티와 같은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흔히 ‘오일머니’라고 불리는 중동의 거대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만큼 한국 기업들은 이 기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재계 총수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 정의선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은 일제히 무함마드 대통령과 면담 시간을 가졌다. 이날 UAE와 한국 경제계는 에너지·방산·건설·첨단 기술 등 다방면에서 협력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는 7월 1일에는 재계 총수들이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만난다. 팜 민 찐 총리는 다음주 방한해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열리는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다.

포럼에서는 다양한 업무협약(MOU) 체결과 함께 ‘디지털 전환에 따른 한·베트남 금융 협력 방안’,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대응을 위한 양국 협력 방안’ 등의 발표가 이어질 예정이다.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기업인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코로나 펜데믹과 미중 분쟁으로 인해 세계 각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에 절감했고, 이에 저렴한 인건비가 장점인 동남아시아가 중국의 대체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이로 인해 인텔, 마이크론 등 세계 반도체 공장들은 동남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기업인들이 포럼에 참가해 공급망 다변화에 대한 협력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