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양승훈 지음, 부키 펴냄

한국의 산업도시는 각자의 포트폴리오가 존재하며 그 포트폴리오가 흔들리면 도시 전체도 침체되는 장면을 연출한다. 철강 경기가 안 좋으면 포항이 휘청거리고, 조선 산업이 부진하면 ‘거제의 눈물’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식이다.

한국 3대 제조업 조선·자동차·석유화학을 동시에 정체성으로 삼은 울산은 어떨까. 나아가 그 울산이 흔들린다는 건,대한민국 산업도시 전반에 무슨 의미일까.

빛나는 과거, 낙관적인 현재, 흐릿한 미래

저자는 “산업도시 울산은 지속 가능할까”를 화두로 삼아 간결하면서도 담담하게 도시와 산업, 그리고 울산을 연결한다. 대한민국 산업 수도 울산, 그리고 제조업과 수출을 기둥으로 성장해 온 한국 경제의 미래라는 큰 그림 아래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에 따르면 울산은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을 위한 공업도시이자 석유비축기지로 설계됐다. 공업항▲물류항▲연락항▲공항▲어항이라는 5가지 지리적 요건이 맞물려 병참기지로서 중시됐다. 이처럼 유리한 입지를 박정희 정부에서 눈여겨보고 현대그룹을 필두로 3대 산업을 육성했다. 이후 60년 동안 울산은 대한민국 제조업계를 이끌어왔다.

축적된 부와 인프라도 상대적으로 풍부한 편이다.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에 빛나는 부자 도시이자, 인구의 44.7%가 생산직에 종사하는 중산층 노동자 도시다. 3대 산업 조선·자동차·석유화학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동남권 제조업의 축이자 남동임해공업지역의 중심 도시기도 하다. 자연스레 “3대 산업의 사이클만 회복된다면 울산의 경기도 살아난다” 등의 낙관론이 등장하기 쉽다.

그리고 책은 그 ‘낙관론’의 실체에 주목한다. 정확하게는 여전히 낙관론이 통할 수 있을지 반문한다. 울산은 고령화되고 청년 정규직은 줄어들며, 연구소는 판교나 용인 등으로 이전하고 있다. 울산 인재 양성의 중심이었던 울산대학교의 학생 수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인력과 인프라.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두 핵심 요건이 울산에서 점점 빠져나가고 있다.

“사람이 문제다”

최근 울산 노동현장에 잘 보이지 않는 세 계층이 있다.

바로 정규직·청년·여성이다. 이제 울산의 대공장은 더 이상 정규직 생산직도 많이 뽑지 않는다. 노동자 중산층의 자녀 세대는 이젠 조선소 사내하청과 현대차 1협력사 까지가 한계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비판한다. 울산의 ‘귀족노조’로 대표되는 노동운동이 임금평준화와 임금극대화를 목표로 움직였고, 결국 원청 노동자들끼리는 평등하고 타 지역 대비 높은 처우를 제공받았음을. 원청 노동자의 지나친 상향평준화가 미래 자녀 세대의 신규 고용 축소와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로 이어졌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펼쳐 놓는다.

울산 거점 대학도 인재 공급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울산 최상위 대학인 울산과기대(현 UNIST)는 동남권 최고의 이공계 연구 대학이지만, 지역 3대 산업에 필요한 인재는 원활히 공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역 3대 산업 중 UNIST와 계약학과를 체결한 기업은 전무하다. 지역 3대 산업과 연계한 취업 설명회나 컨소시움 등의 움직임도 없다. 그렇다고 취업 연계를 울산으로 한정 지으면 UNIST의 수요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교원이나 학생 모두 울산을 넘어 수도권을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울산의 일터는 여성에게 유달리 비호의적이다. 저자는 울산의 여성들이 안정적인 고임금 직장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돼 있다며 이를 ‘산업 가부장제’라고 지적한다. 현대자동차의 성비는 94대 6 정도다. SK이노베이션 산업단지의 성비는 93대7이다. 생산직 일자리에서 여성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울산 여성들은 대부분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울산의 제조업 임금은 전국 대비 33% 높지만, 서비스 산업 임금은 10% 가량 낮다. 심지어 울산의 여성 전문직 임금도 전국 평균 대비 13% 이상 낮다. 이런 환경은 울산 경제가 ‘남성 생계 부양자 경제’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당장 여성직 일자리를 만들든, 기존 고임금 일자리의 여성 차별을 철폐하든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에게 “왜 울산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급 인재의 이탈도 울산의 쇠퇴를 가속시킨다. 여전히 제조업 없는 울산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울산이 없는 한국 제조업’은 차츰 현실이 되고 있다. 울산 내 3대 산업의 두뇌,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센터가 대부분 수도권으로 이전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전문인력의 지방 기피 현상이 심해지자 회사들로선 인재를 좀 더 유입시키기 위해 R&D 거점을 위로 올릴 수밖에 없어졌다. 제조업의 본질은 지식기반산업이다. 저자는 두뇌가 사라진 울산이 과거 제조업 발전의 중심에서 현재는 단순 생산거점으로 쇠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단순 생산뿐 아니라 기술개발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울산 공업단지 야경. 사진=연합뉴스
울산 공업단지 야경. 사진=연합뉴스

“제조 역량 재평가 우선돼야”

현재 울산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울산을 둘러싼 국제경제 흐름은 녹록하지 않다. 미국 IRA로 자동차 부품사들이 미국 현지로 진출하고 있는 데다, 친환경 전기차 시장이 커지며 울산 자동차 생산거점은 일자리 감소 상황에 놓일 확률이 커졌다. 조선 역시 국제해사기구의 친환경 해사정책으로 호황을 맞이했으나, 필요 인력을 내국인으로 충당하지 않고 외국인 숙련공 쿼터를 30%로까지 늘리고 있다.

저자는 “제조업 관점에서 울산에 남은 것은 기존의 설비투자라는 ‘매몰 비용’과 기존 제조업 생태계가 보유한 ‘일자리 개수’ 정도”라고 냉정히 진단한다. 도시의 체질을 바꿔야만 ‘느린 질식’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만으로 가능할까? 오래된 산업도시가 미래 지향적 도시로 전환할 수 있을까?

저자는 충분한 성공 사례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 대표 철강 도시 피츠버그는 1990년대 철강업 제조 기능을 상실하자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통해 도시 재구축에 성공했다. 생산직 대신 서비스 산업과 하이테크 일자리를 대거 유치하는 데 성공하고 대표적 스타트업 도시이자 부촌으로 거듭났다.

물론 완전하지만 않다. 피츠버그도 여러 굴곡을 넘으며 기존 제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키지 못했다.

저자는 새로운 길을 주문한다. “기존 산업을 대체하기보다, 고도화시키면서 파생되는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도시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핵심엔 ‘제조 역량’에 대한 재평가가 있다는 설명이다. 울산에는 그동한 축적된 기술력과 개개인의 노하우, 최적화된 생산설비가 있다. 이들이 곧 제조 역량이다.

제조업이 휘청거릴 때 ‘문화도시’를 꺼내들며 서비스 콘텐츠 도시화를 제시하기보단 가지고 있던 것을 활용해야 한다. 조선사가 떠난 조선 도시에 새로 생겨나는 청년 문화공간이 조선소에 근무하던 청년 용접공에게 정말 도움이 될지 고려해야 한다. 울산을 제조업을 탈피한 IT 혁신도시로 키워 봐야 수도권의 인프라와 수요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피츠버그의 사례처럼 공장을 배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도시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시선이다.

‘노동자 중산층’의 꿈, 지속가능할까

산업도시 울산의 미래는 단순히 울산광역시라는 한 지자체나 특정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제조업과 산업도시 모두가 당면한 문제의 축소판이다.

저자는 울산의 도전 과제로 ▲지속 가능한 제조업 생산 클러스터 구축과 ▲엔지니어링 클라스터 만들기도 제시했다.

지속 가능한 제조업 생산 클러스터를 위해선 정부, 기업, 노조의 상생 거버넌스 구축이 핵심적이다. 노동자는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을 보장받고, 기업은 생산성과 혁신 역량을 보장받는 사회적 합의인 ‘고진로 전략’이 키워드다.

고진로 전략의 첫 번째 목표는 원하청 경계를 허무는 분배 동맹의 설계다. 직고용을 늘리거나, 원하청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다. 두 번째 목표는 도시의 산업 경쟁력을 향상할 수 있는 성장 동맹 전략 수립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조업 연구개발 투자, 중소기업 지원 등을 중앙정부에 요청해야 한다.

엔지니어링 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위해 지역 시니어 엔지니어의 기술 역량이 주니어 엔지니어·중소기업과의 협업에 활용될 수 있는 플랫폼 설립과 지원안도 필요하다.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상술한 해법들은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과 제조업 고도화를 함께 사고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 국가, 지자체, 대자본, 노조 어느 누구도 일방적으로 울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그 토대 위에서 저자는 울산과 함께 꿈을 꾼다. 60년 전 울산을 개척한 이들은 부국 대한민국의 산업 고도화를 꿈꾸며 도시를 일궜다. 노동자들은 울산에서 젊음을 불태우며 중산층의 꿈을 달성했다. 현재 울산은 다시 꿈을 꾸고 있다. 새로운 산업 클러스터로 거듭나고자 한다. 마지막까지 저자는 노동자 중산층이 울산에서 꿈을 꿀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자고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