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쳐 결과적으로는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졌다.”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는 지난 25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치료를 받기 위해 세 달 동안 기다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암 세포 증식 등) 진행이 되게 빠른 환자들은 몇 주만 지연돼도 사고가 터진다”는 것이 백 대표의 주장이다.
이처럼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속에서도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교수들의 사직 행렬도 계속되고 있다. 전북 원광대 의대 교수들이 단체로 사직서를 다시 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날도 수술·입원 지연과 취소 등 환자가 겪는 피해는 쏟아지고 있다.
백 대표는 “환자들이 이제는 한두 달 (치료가) 지연되는 건 그냥 감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의료진들 사직과 휴진으로 인한 환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상황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백 대표는 “의사들이 정원 늘리는 걸 되게 싫어하는데 이들이 설령 잘못된 제안을 하더라도 이마저 존중해 다시 합의점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양측이 서로 원만하게 사태를 풀면 좋겠는데 정부가 너무 독단적이어서 참 안타깝다“며 “의료진에게 너무 불리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게 환자 입장에서도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내용.

-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환자들이 어떤 피해를 겪고 있나.
“방사선 치료를 당장 받아야 하는데 3개월 뒤로 미루어지는 식이다. 이게 엄청난 피해다.”
- 치료가 미뤄지면 어떤 여파가 있길래.
“(암 세포 증식 등의) 진행이 되게 빠른 환자들은 몇 주만 지연돼도 사고가 터진다. 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쳐 결과적으로는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졌다. 환자들이 이제는 한두 달 지연되는 건 그냥 감당하고 있는 것 같다. 지방에선 국립대병원에서조차 치료에 대한 선택지가 거의 없어 서울로 올 수밖에 없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데 어려움이 생겼다.”
- 병원에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암 환자 치료의 병원 간 연계를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초진 환자는 아예 받지도 않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다른 병원으로 안내하는 식이다. 환자들이 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땐 제가 환자의 상태에 대한 얘기를 듣고 꼭 서울에 오지 않아도 될 분들에겐 그 지역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병원에만 가도 된다고 설명해주기도 한다”

“의대 정원 늘어나야 하나 환자 의사만 치료 가능…의∙정 갈등 풀어지길”
- 의∙정 갈등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의사들이 정원 늘리는 걸 되게 싫어하는데 이들이 설령 잘못된 제안을 하더라도 이마저 존중해 다시 합의점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양측이 서로 원만하게 사태를 풀면 좋겠는데 정부가 너무 독단적이어서 그게 참 안타깝다. 정부가 의료진에게 너무 불리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게 환자의 입장에서도 유리하다. 정부의 방침처럼 의대 정원이 늘어나야 하는 건 맞지만 결국 환자를 치료할 사람은 의사밖에 없다”
- 의료계에선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가 아니면 정부와의 대화는 없다며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의사들도 어느 정도의 증원에 대해선 정부와 합의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답답하다. 사실 조건 없이 의료 현장에 복귀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솔직히 의사가 근로 계약상 정부 말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공무원도 아니고 환자에 대한 생각이 없진 없겠지만 그냥 나가서 개업해도 그만 아닌가”
-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어느 정도인가.
“치료나 입원에 대한 일정이 미뤄지고 있는데 대한 불안감이 계속되고 있다. 치료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많이 암이 진행되고 전신의 상태가 나빠질지 불안하니까. 그러면서 언젠가는 의∙정 갈등이 해결되리라 마냥 기대하는 상황이다”
- 의사들의 빈 자리를 진료보조(PA) 간호사가 채우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잘 훈련된 분들이고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전제 아래 환자 입장에서 보면 그분들의 역할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갈리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몇몇 의사들로부터 PA 제도가 조직적으로 팀을 구성해서 수술을 보조하기에는 더 좋아 환자들에게도 더 낫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요즘 PA 간호사가 늘어난 이유가 아까 말하신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급하게 진행됐단 생각이다. 정부가 환자를 진심으로 위해서 PA든 뭐든 서둘러 추진했겠나. 그냥 양측의 싸움에 환자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을 뿐이다”

“환자 목소리 반영되지 않고 있어…국민 청원, 기대만큼 진척 안 돼”
- 정부는 필수∙지역 의료 수가(진료비)를 올리는 내용이 담긴 ‘필수 의료 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묶어 ‘의료 개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적 협의체를 꾸렸다. 이런 협의체뿐만 아니라 지금 대표를 맡고 있는 환자 단체를 포함해 환자들의 목소리가 정부에 얼마나 닿고 있나.
“우리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정말 생각 같아서는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다 모아서 어디를 가든 행동을 하고 싶은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
- 그럼 환자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나.
“아직은 그런 건 없다”
- 아직은 없다는 말을 언젠가는 계획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신장암단체가 소속된 한국환자단연합회에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회의를 며칠 전에 했다. 현재 뭘 받고 있기도 하다”
- 뭘 받고 있다는 건가.
“의료 공백 사태와 관련한 국민 청원을 연합회에서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건 그냥 청원일 뿐이고 이걸 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뭐라도 하려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청원을 공개한 뒤 정확히 언제까지인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아무튼 어느 기간 전까진 5만명의 국민 동의를 받아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돼서 본회의 의결로 채택될 가능성이 생기는 거 아닌가.
“사실 시작한 지 꽤 됐는데…”
- 목표 달성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신가.
“그렇다. 당초 기대한 것에 비해 너무 진척이 안 되고 있더라. 다만 응급 환자들의 피해가 심화되면 청원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남편 치료 위해 단체 결성…의사와의 소통 너무 힘들었다”
- 그럼 의∙정 갈등에 대해선 이 정도까지만 듣겠다. 그동안 환자 단체의 대표로서 돈을 많이 벌거나 선진국의 환자 단체들처럼 강한 권한을 갖지도 못했을 텐데 대표가 된 이유가 뭔가.
“제 남편이 신장암 환자였다. 2004년에 암을 진단받았다. 저희 부부는 애만 셋인데 막둥이가 그때 돌을 갓 지났고 크리스마스를 기념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래서 경기도에서 큰 병원으로 가 해를 넘기기 전에 수술했고 의사가 괜찮을 거라고 하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은 지 1년 반 만에 (암 세포가) 양쪽 폐로 전이돼 버렸다. 이후에 제가 의사에게 뭘 물어봐도 대답을 제대로 안 해주는 등 너무 의사소통이 안 됐다”
- 돌 된 아기를 포함해 딸린 자녀가 셋이나 되는데 병세가 악화되니 답답함이 컸겠다.
“그랬다. 그런데 의사는 지나치게 갑의 위치에 서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신촌 세브란스로 병원을 바꿨다. 그런데 이번에는 치료제가 없어서 의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부랴부랴 남편의 병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관련 학회장을 수소문해서 직접 만나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정말 남편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으니 해외에서는 환자들이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알아보다가 항암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다른 환자들도 의사로부터 정보를 잘 전달받는 데 한계가 있으니 대표가 됐단 건가.
“그렇다. 당시의 저뿐만 아니라 많은 환자와 보호자가 너무 병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겪어보니 어느 정도는 알아야 의사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 있더라. 그래서 교수들에게 환자들을 대상으로 강의 한 번만 해달라고 부탁한 걸 시작으로 단체가 하는 핵심 업무는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교육이다. 환자들끼리 꾸준히 모임을 갖게 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