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철강제품의 핵심이 될 ‘그린철강’을 두고 철강업계와 철강 소비업계가 동상이몽이다.

철강업계로선 국제적 친환경 움직임에 맞춰 친환경 철강 생산량과 인프라를 하루빨리 키워야 하지만, 철강 소비업계에는 그린철강 구매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그린철강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내수 수요가 먼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로 작업. 사진=포스코
고로 작업. 사진=포스코

비싸서 사용 망설여지는 그린철강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18일 ‘한국 철강산업의 그린철강 전환’ 보고서를 발간하며 “국내 철강 소비 기업 150곳 중 단 1곳만 그린철강 조달 목표를 세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KoSIF는 철강 소비 기업 150곳과 50개 생산 기업을 대상으로 그린철강 소비(생산) 경험과 의향, 향후 소비(생산)에 관련된 목표수립 여부, 그린철강을 위한 추가 지불 의향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소비 기업 150곳 중 135개사(90%)는 “그린철강에 대한 목표도 없고 향후 목표에 대한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14곳(9%)는 “목표를 세우지 않았지만 향후 목표 수립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149곳이 그린철강 사용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다는 뜻이다.

철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이다. 국내에서도 2020년 기준, 93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국가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14.2%가 철강산업에서 나왔다. 자연스레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주 타겟이 된다.

EU는 2026년부터 CBAM을 실시해 탄소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CBAM은 탄소배출량 규제가 강한 EU기업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막겠다며 만든 무역 장벽의 일종이다. 미국 역시 청정경제법을 발의하며 탄소 규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할 준비에 나섰다. EU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 철강 산업의 저탄소화를 목표로 삼아 2030년까지는 철강 생산 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30% 감축하고, 2050년까지 90% 이상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해외 수출 판로를 사수해야 하는 철강업체로선 그린철강 생산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실제로 포스코의 경우 2020년대 들어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하이렉스’를 선보이는 등 그린철강 확보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포스코가 공개한 ‘하이렉스(HyREX)’ 기술을 활용한 철강 생산 단지 조감도. 사진=박상준
포스코가 공개한 ‘하이렉스(HyREX)’ 기술을 활용한 철강 생산 단지 조감도. 사진=박상준

문제는 철강사들의 그린철강 개발·생산 의지를 소비 업체들의 그린철강 수요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KoSIF는 “소비기업의 62%가 비싼 가격 때문에 그린철강 도입 목표 수립을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고 설명했다. 생산 철강사들 역시 ‘원가 상승(31%)’, ‘소비자 요구 없음(21%)’ 순으로 그린철강 개발·생산의 애로사항을 꼽았다. 그린철강은 원재료 조달부터 생산 공정까지 기존 철강과 상이한 경우가 많다.

당장 포스코는 그린철강 원료 조달을 위해 서호주에 친환경 철강원료인 HBI 플랜트 건설 및 그린수소 생산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HBI는 직접환원철을 산화 방지 처리한 ‘고급’ 철강원료로, 가공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적지만 가격이 비싸고 조달이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특징이 그린철강의 가격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중소 생산기업들의 부담은 더하다. 자본력이 탄탄한 대기업인 포스코 역시 그린철강 도입은 장기 프로젝트로, 대대적 자금을 투자하며 추진 중이다. 영세한 중소 제강기업으로선 생산 단가도 비쌀뿐더러, 판매조차 미진한 그린철강에 온전히 투자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가 발표한 ‘한국 철강산업의 그린철강 전환’ 보고서. 사진=KoSIF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가 발표한 ‘한국 철강산업의 그린철강 전환’ 보고서. 사진=KoSIF

해외 지원 사례 참고해야

사실 그린철강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업계 내의 ‘가격 부담’에 대한 불만과 문제제기는 있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정부 차원에서의 대대적 지원이 이런 부담을 해소시켜 준다는 점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EU는 2030년까지 CBAM 수익금으로 49조원 상당의 기금을 조성해 혁신 친환경 기술 상용화를 위한 투자를 이어간다. 유럽이사회(EC)는 지난해 7월 프랑스와 독일 철강사들에 20억유로(약 2조9000억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프랑스 소재 세계 최대 철강사 아르셀로미탈에만 1조2000억원, 독일 최대 철강사 티센크루프에는 7700억원 가량이 지원된다. 티센크루프의 자체 투자액 약 1조2000억원의 60%를 상회하는 지원 규모다. 미국도 그린철강 산업을 탄소 감축을 위한 기후기술 연구개발로 분류하고 전폭적 지원에 나섰다.

국내 업계에서도 유럽과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전방위적 정책 수립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린철강 상용화는 업계의 최중요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KoSIF 조사 결과 생산기업과 소비기업 모두 “그린철강이 미래 경쟁력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5점 만점 기준 평균 3.65점)”고 답하기도 했다.

그린철강 소비 촉진을 위한 정책 제언으로는 ▲그린철강 공공조달 확대 ▲그린철강 사용 인증시스템 도입 ▲그린철강 기준 확립 ▲정부 차원의 그린철강 가격 영향 연구 등이 거론된다. 정부 주도적 수요진작과 모니터링으로 초기 시장을 견고히 다져야 한다는 뜻이다.

시설 인프라 투자 역시 중요하다. KoSIF는 ▲정부 주관, 민간 공동 참여 형식의 펀드 조성을 통한 자금 마련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및 이자 감면 혜택으로 금융기관의 투자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인프라 구축 특성상 철강업계에만 부담을 떠안게 하는 것은 그린철강 전환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는 설명이다.

그린철강 생산에 필요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도 뒷받침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포스코에 따르면, 수소환원제철 공정은 기존 고로보다 약 20~100%의 전력이 추가로 소모될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 전력까지 친환경화가 요구되는 그린철강의 특성상 전력 부족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에 재생에너지 발전소 추가 설립과 공급망 다양화 등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남나현 KoSIF 선임연구원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그린철강 수요 촉진의 열쇠”라며 “그린철강 기준 확립과 공공조달 확대로 수요를 촉진하고, 그린철강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재정 지원과 그린수소 및 재생에너지 확대로 생산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