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을 의식해 중고 노후 반도체 장비 판매를 중단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중 반도체 패권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도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분위기다.

"중국에 반도체 기술 넘어가지 말아야"
파이낸셜타임스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노후 반도체 장비 판매를 중단한 배경으로 '미국을 의식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노후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판매할 경우 대중 반도체 기술 수출 통제를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전략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노후 반도체 장비는 딜러들이 매입해 시장에 판매하는 구조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장비를 중국이 사들일 경우 몇몇 재조합만으로 최신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파이낸셜타임스의 설명이다. 이를 우려한 미국이 더욱 강력한 '봉쇄령'을 내린 가운데, 미국을 의식한 한국 기업들이 '혹여나' 중국 반도체 굴기에 협조할까 몸을 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분노
한국 기업들을 움츠리게 만든 미국의 분노는 실체가 있다. 최근 미국의 강도높은 '대중국 반도체 기술 유입 방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최신 기술들을 몇몇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화웨이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메이트60 프로를 발표하며 최신 7나노 공정 기술을 사용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 상무부의 강도높은 대중 반도체 기술 반입 금지에도 미세공정인 7나노 기술을 상용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0년 5월 미국의 기술을 사용하는 해외 반도체 기업도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하도록 하는 제재를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을 차단한 상태에서 일종의 우회 수출까지 틀어막은 셈이다. 그러나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로 14나노 이하 미세공정 칩을 생산할 수 없음에도 메이트60 프로에 SMIC가 제작한 7나노 칩을 넣는데 성공했다.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자력갱생을 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전은 최근 벌어졌다. 당시 메이트60 프로의 높은 기술력은 중국의 강력한 기술력 독립이 아닌, 미국의 기술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최근 메이트60 프로에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램리서치의 장비가 사용됐다고 보도했다.
압박의 강도 올라갈 듯
한국 기업들이 미국을 의식해 노후 반도체 장비도 제대로 판매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압박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당장 네덜란드 ASML은 미국의 압박으로 중국에 EUV를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바이든 미 행정부가 네덜란드 ASML의 심자외선(DUV) 장비의 마지막 중국 수출까지 틀어막는 일이 벌어졌다. 실제로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ASML은 지난해 말까지 DUV의 중국 수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었고, 올해 1월까지만 DUV 3개를 판매하려고 했으나 판매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DUV는 EUV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주로 범용적인 반도체를 제작할 때 사용된다. EUV의 파장은 13.5나노 제작도 가능하지만 DUV는 193나노로 굵다. 그러나 범용 반도체 제작에 쓰인다고 기술적 완성도가 EUV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 민감도에 있어서는 EUV에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이 당장 따라잡을 수 있는 기술력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대중국 압박을 위한 국제적 연대도 강해질 전망이다. 당장 미국 정부가 네덜란드, 독일,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에 중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기술을 더 엄격히 통제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연이어 나오는 중이다. 2022년 10월부터 시행한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의 틈을 메우는 한편 더욱 촘촘한 '그물'을 치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