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집을 나서기 전 휴대폰으로 미리 차량의 시동을 걸어 놓는다. 쌀쌀한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는 일기 예보에 열선 시트까지 작동하고 나면 오늘의 외출 준비가 마무리된다.
실제로 완성차 업체들이 제공하고 있는 홈투카(Home To Car) 서비스의 일종이다. 원격으로 차량에 있는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 또한 차량에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탑재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SDV 전환의 핵심은 ‘소비자의 편의’에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데이터를 수집하며 끊임없이 성능을 향상시키는 궁극적인 목적 또한 소비자의 안전과 편의를 도모해, 뒤쳐지지 않는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있다.
‘왜’ 완성차 업체들은 SDV를 선택할까
완성차 업체들이 SDV 전환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고객 확보다.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먹거리로 떠오른 SDV는 제조사 입장에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와도 같다. 기존에는 차를 판매하기만 하면 고객과 제조사 사이의 접점이 거의 사라졌지만, SDV 시대가 도래하면서 제조사는 차를 인도한 이후에도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성능과 시스템을 꾸준히 향상시켜야 한다.
SDV의 본질은 자동차가 스마트폰처럼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가능하다는데 있다. 자동차도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를 통해, 실시간으로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내비게이션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확보에 SDV 역할이 집중됐다면, 이후 차량의 점검 상태나 주행에 필수적인 정보까지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DV를 도입하면, 자동차 제조사 또한 차량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비용을 가시적으로 줄일 수 있다. SDV의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기능의 진가가 드러난 일례가 있다. 테슬라가 모델S 출시 이후 잇따른 화재 사고로 위기를 맞았을 때다. 낮은 차체로 인해 도로 위 파편이 배터리 팩에 튀면서 화재 가능성이 커지자, 테슬라 엔지니어들은 차체를 높이도록 소프트웨어 코드를 수정했다. 수정한 코드 배포는 무선으로 진행됐고, 테슬라는 전체 리콜을 실시하지 않고도 해당 문제를 해결했다.
일각에서는 SDV를 고객을 붙들어 두는 ‘락인(Lock in)효과’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고객에게 맞춤형 경험을 제공해 고객이 다른 대안을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모빌리티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애플은 자체 운영체제(OS)의 폐쇄성이 커, 아이폰 사용자가 아이패드, 애플워치까지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에는 전자기기 시장에서 락인효과가 두드러졌지만 완성차 업체들도 자체적으로 SDV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자동차 판매 이후에도 자사의 차량 및 시스템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SDV의 가능성은 자동차를 판매한 이후 시작된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SDV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뚜렷하다. SDV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테슬라의 경우 완성차 업체들 가운데 높은 수익성을 자랑한다. 앞서 말했듯 하나의 운영체제로 차량 전체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SDV를 통해 구독이나 추가 기능 제공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도 있다.
테슬라는 ‘옵션의 구독화’를 통해 추가적인 수익 확보에 나서고 있다. 옵션의 구독화란 고객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원하는 서비스의 잠금을 풀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중앙 컨트롤 타워에서 모든 차량의 기능을 제어할 수 있어 가능한 시스템이다. 지금은 구독 시스템 자체에 대한 반발이 크지만, 자동차 시장에 구독 시스템이 기본으로 안착된다면 SDV 경쟁력은 곧 수익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밖에도 현대차를 비롯한 여러 완성차 업체들이 SDV 개발 속도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빠른 데이터 확보에 있다. 고객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하고, 분석을 통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는 것 또한 SDV 시대의 새로운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SDV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수록 적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SDV가 당긴 방아쇠 ‘자율주행 상용화’

소프트웨어의 발전은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새로운 산업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SDV의 핵심 기능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자율주행’이다. SDV와 자율주행 차량을 동일 선상에 둘 순 없지만, 자율주행 차량은 반드시 SDV일 수 밖에 없다. 자동차에 내재된 소프트웨어 기능이 점차 고도화되기 시작하면서, 완전 자율주행 차량의 상용화도 가시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SDV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현대차·기아의 경우 최근 자율주행 차량에 쓰일 라이다 센서를 개발하기 위해 카이스트와 공동연구실을 설립했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포티투닷(42dot)도 자율주행 고도화 기술을 개발하는 알짜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송창현 포티투닷 대표는 CES 2024 미디어 인터뷰에서 “빅데이터 루프(big data loof)라 불리는 머신 러닝 인프라를 SDV 및 차량 데이터 플랫폼에 통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티투닷은 빅데이터 루프를 통한 대규모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자율주행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전장 회사들도 자율주행 시스템 선점에 나서고 있다. 국내 기업들 중에선 단연 ‘현대모비스’가 선두에 있다. 현대모비스는 완전 자율주행을 실현하기 위해 5세대 이동통신(5G) 기반의 차량사물통신(V2X) 통합 솔루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완전 자율주행의 선행 기술이지만, 현재까지는 차량에 장착된 센서가 주변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경고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완전 자율주행 레벨까지 가려면 차량 스스로 주행 환경을 판단하고 제어해야 한다. 결국 이동 중에도 주변 환경과 고속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5G 기반의 V2X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차량용 5G 통신 모듈 기술’과 V2X 기술을 융합해 선제적으로 자율주행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완성차 업체 중에선 같은 계열사인 현대차가 적극적으로 현대모비스가 개발한 인지센서, 라이다(RiDAR) 등 전장 부품을 장착하고 있다. 특히 제네시스에 곧 장착될 자율주행 3단계 시스템은 세계 최초로 100㎞/h 작동까지 노리며, 업계 선두로 앞장서기 위해 힘을 모으는 모습이다.
공간을 넘나드는 차세대 이동수단의 ‘다양화’

SDV 발전으로 모빌리티의 ‘모습’도 단계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기아가 공개한 자율주행 전기차 PBV(고객 맞춤형 목적기반차량)가 있다. 개인의 필요에 맞게 외형과 기능을 꾸릴 수 있는 차량으로써, 하나의 플랫폼을 활용해 배달용 차량부터 택시까지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하다. 기아는 지난 1월 우버와 PBV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상용화 준비에 나섰다.
도로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수직 공간을 활용하는 모빌리티도 등장한다. UAM(도심항공모빌리티)이 그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최대 시속 240㎞/h의 개인 항공기 ‘S-A1’ 공개를 준비하고 있다. 40㎞를 15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이동수단으로, 활주로가 필요 없고 소음이 적어 도심 이동용 항공기로 적합하다고 평가받는다. 기존 항공기가 ‘관제탑’의 지시를 따랐다면, UAM은 원하는 시간에 택시처럼 이용할 수 있는 개인화된 항공 모빌리티다. SDV의 발전된 형태로 여겨지는 이유다.
모빌리티의 변화는 곧 도시 생태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현대차그룹은 CES 2024에서 SDV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그룹의 중장기 전략 SDx(Software-defined everything)를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SDx의 최종 지향점은 사람과 디바이스, 도시 인프라가 연결된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를 의미한다. 도시 교통을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으로 새롭게 정의하면, 사용자는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맞는 이동 디바이스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2년 전 SDx가 현실화된 스마트시티의 청사진을 공개한 적 있다. ‘HMG 그린필드 스마트시티 마스터 모델’이 그것이다. 그린필드 스마트시티에서는 PBV가 도로 위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UAM이 하늘과 지상을 연결한다. 친환경 에너지 시설과 같은 인프라는 지하에 위치해 있다. 각 모빌리티들은 서로 구분된 공간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며 각자의 시너지를 더하고 있다. 자율주행부터 UAM까지, SDV에서 시작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