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이기는 대화법 38>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대 옮김, 베가북스 펴냄.

이 책은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의 유작 <에리스틱 변증법>(Eristische Dialektik)을 토대로 쓰여졌다.

쇼펜하우어는 <에리스틱 변증법>에서 당시로서는 낯선 개념 '논쟁적 토론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다음,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38가지의 수사학적 기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에리스틱 변증법>의 전제는 이런 것이다. "논쟁의 근원적 목표는 어느 편의 주장이 진실인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논거가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모든 대화의 전략을 동원해서 이기는 것이다."

한 마디로, 쇼펜하우어에게 논쟁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토론술을 '칼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싸움'이라고 정의한다. 오로지 승패만을 따지는 싸움처럼, 토론술에서도 어떻게 공격하고,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므로 자신의 토론술에 대해 ‘논쟁적 토론술’이라고 불렀다.

어찌보면 <에리스틱 변증법>은 헤겔을 의식하면서 씌여진 것처럼도 보인다.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동시대를 살았던 헤겔을 매우 싫어했다. 두 사람은 성격이나 생활방식에서 극단적으로 대비되었다.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향해 온갖 독설을 내뿜은 철학자였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고통과 고뇌로 가득했고, 그는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 고독을 선택했다.

하지만, 헤겔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이성(理性) 중심의 계몽주의와 낙천주의의 주류를 이끄는 철학자였다. 이런 헤겔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어설픈 돌팔이", "협잡꾼"이라고 비난하곤 했다.

베를린 대학에 출강하게 되었을 때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강좌와 같은 시간대에 자기 강의를 개설했다. 결과는 쇼펜하우어의 일방적인 패배였다. 헤겔의 강의실은 매번 가득찼지만,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에는 단 한 명의 학생도 없을 때가 많았다.

38가지 수사학 기법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질문을 퍼부어 상대의 양보를 얻어내라.

고대의 철학자들은 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이를 ‘수사의문’(修辭疑問)이라고 부르고, 소크라테스식 방법이라고도 말한다. 질문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어떤 논점을 주장하기 위해 물음의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상대로부터 얻고자 하는 양보가 무엇인지 숨기기 위해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것도 효과적이다.

▲상대가 화를 내도록 유도하라.

사람은 화가 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자기가 이미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놓고도 깨닫지 못한다. 상대의 화를 돋우려면 드러내놓고 상대방에 대해 부당한 평가를 한다. 말로 괴롭힌다든지, 그냥 뻔뻔스럽게 대하면 된다.

▲상대가 발끈하면 바로 그 지점이 약점이다.

상대방이 느닷없이 성질을 부리거나 화를 낸다고 할 경우 바로 그 논거를 물고 늘어져 끈질기게 파고들어야 한다. 상대의 화를 돋우는 것이 내게 유리하다.

▲상대의 논거를 뒤집어버려라.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위해 동원하는 논거를 역으로 이용하여 도리어 그를 공격하는 데 써먹는다. 만약 상대방이 "그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그 점을 참작해줘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고 치자.

당신은 "아니죠, 한참 배워야 할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한층 더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반격하면 된다.

▲권위에 호소하라.

세네카가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판단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그러므로, 내가 상대방이 존경하는 권위를 갖고 있다면 논쟁에서 승리하기가 수월하다.

▲불리하면 방향을 전환하라.

논쟁 중에 불리해지면 재빨리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느닷없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 마치 논쟁의 대상이 되는 사안에 속하는 것처럼, 마치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반증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라는 얘기다.

트럼프는 논쟁하다가 불리해지면 언제든 논쟁의 물줄기를 틀어버리는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 그는 첫 대통령 선거 출마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오바마가 케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이 없으며, 역시 대통령으로 당선될 피선거권까지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오바마는 자신의 출생기록증명서를 전격 공개하고, "이런 바보 같은 놀음에 더 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트럼프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트럼프는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논쟁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 자랑스럽습니다. 과연 누가 대통령의 출생 기록을 공개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며. 오히려 트럼프의 인기가 올라갔다.

▲"형편없는 제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상대방이 설명하는 근거에 대해 내가 아무런 반론도 제시할 수 없을 때는 이런 식의 반어법을 이용한다. "당신이 말한 내용은 빈약한 저의 이해력을 훌쩍 넘어서는군요. 당신의 말이 정말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그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판단도 내릴 수가 없네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청중은 상대방이 한 말이 허튼소리일 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실제로는 틀려요!"

상대방이 주장하는 논지의 근거는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를 부정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궤변이다.

▲상대의 견해를 역이용하라.

논점이 아니라 논쟁을 벌이는 상대방에 대하여, 혹은 상대방이 인정한 내용에 근거를 두고서 논쟁을 펼치는 기술을 말한다.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내놓을 때 그 주장이 어떤 식으로든 그가 앞서 말했거나 인정한 내용과 모순이 되지는 않는지 살펴보라. 이 기술을 활용하면, 상대방을 애먹일 수 있는 트집거리를 하나 만들어낼 수가 있다.

상대방이 자살을 옹호한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즉시 소리 높여 이렇게 외치면 된다. "그러면, 왜 당신은 목을 매지 않는 거죠?"

상대방이 베를린은 거주하기가 불편한 도시라고 주장한다면, 곧바로 맞받아서 소리지르면 된다. "그러면 왜 당신은 첫 기차라도 잡아타고 베를린을 떠나지 않는 건가요?"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라.

상대방이 제시한 주장을, 논쟁 중인 사안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지점까지 최대한 확대시켜놓고는, 확대된 측면을 명쾌하게 공박함으로써 마치 내가 상대방의 원래 주장 자체를 제대로 반박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방법이다.

냉전이 지속되던 당시 레이건행정부는 B-1 폭격기 구매에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기에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서도 어김없이 질문공세가 펼쳐졌다.
"정부가 B-1 구매에 엄청난 예산을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난처한 질문이 나오자, 레이건은 옆에 서 있던 보좌진을 쳐다보더니 질책했다. "비타민 B1을 사는 데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썼나? 다시는 그러지 말게!"

회견장은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고, 레이건은 민감한 질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