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후판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후판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사진=포스코

2023년은 철강업계에 유난히 추웠다. 경기침체와 국내 건설시장 부진, 중국 부동산 경기 악화및 원자재가와 전기료 상승 등 여러 악재가 업계를 강타했다. 주력 후판 수요처인 조선업계와의 후판(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두께 3mm이상의 강판) 하반기 가격협상도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포항제철소가 태풍 힌남노에 의해 수몰되며 고로가 3개월간 멈췄던 지난해에 이어 실적 개선은 요원한 분위기다. 노사 협약도 내내 지지부진했다. 포스코는 창사 이래 첫 파업을 겪을 뻔했으며, 현대제철은 2023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대표 철강사 포스코는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58조563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10.7%가량 줄어들었다. 순이익은 2조1668억원으로 지난해의 4조2975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누적 영업이익도 40%가량 하락했다. 현대제철 역시 올해 3분기까지 누적매출과 누적 영업이익이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7.3%, 45.7% 감소했다.

이처럼 부진한 업황을 극복하기 위해 철강업계는 신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부진한 내수시장과 높은 중국의존도에서 탈피하고자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적극 개발·수출에 나섰다. 더불어 전통적인 철강 사업에서 벗어나 비철강 사업으로 진출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악재 겹치며 사면초가…눈물의 2023년

철강업황과 중국 경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중국은 세계 철강의 50%를 생산하는 철강 대국이자, 최대의 철강 소비국이다. 대 중국 무역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과 철강업 특성상 중국 경기 상황에 일희일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업계에선 중국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로 중국 철강사가 감산에 들어가 저가 철강이 시중에 많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하반기엔 중국 규제 당국이 자국 철강업체들에게 올해 연간 생산 한도 규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하며 철강 생산량이 폭증했다. 경기 부양을 위한 중국의 규제 완화책의 일환이었다. 철강 생산량 증가로 중국의 철광석 수입량도 급증했고, 국제 철광석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 게다가 생산된 철강이 내수시장이 아닌 해외로 풀리며 국제적 철강 가격 하락세를 불러왔다.

특히 선박용 후판은 중국산 저가 후판의 물량공세로 가격경쟁력에 직격타를 맞았다. 당초 철강업계는 업황 부진과 원자재가 상승을 이유로 후판 가격을 소폭 인상하고자 했으나, 조선업계에서는 저가 중국산 제품 대비 가격 차이가 심하다는 이유를 들며 역으로 가격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양 업계는 올해 상반기 후판의 납품가격을 톤당 90만원 후반~100만원 선에 합의했다. 반면 하반기에는 이보다 소폭 인하된 90만원 중반 선에서 협상이 마무리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중국 경기 문제에 더해 산업용 전기요금까지 철강업계를 울상짓게 만들었다. 지난 11월 9일 한국전력공사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kWh당 평균 10.6원 인상했다. 통상 전기료가 1kWh 오르면 철강사들의 평균 요금 부담이 100억원 가량 늘어난다. 업황은 부진한데 지출은 더 커진 상황이다.

고로 작업 중인 현대제철 노동자. 사진=현대제철
고로 작업 중인 현대제철 노동자. 사진=현대제철

고부가가치 산업 지속 투자 나선 철강업계

업황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업계는 건설경기와 중국 시장에 의존하던 전통적인 철강사업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친환경·에너지 등 미래 고부가가치 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해상풍력과 수소, 해상플랜트 같은 에너지 철강 분야다. 건설분야로 대표되는 중국산 철강재와 경쟁을 피하는 한편, 기술력이 중요한 산업인 만큼 한국 철강이 충분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 예로 세아제강지주는 에너지 산업용 강관 제품에 집중했다. 지난달 말 UAE 최대 국영석유회사 아드녹(ADNOC)과 20만톤 규모의 API 송유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아드녹의 ‘해일&가샤 가스전 프로젝트’에도 1만4000톤 규모의 클래드 강관을 공급하기로 했다.

세아그룹은 지난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국내 최대 수소전시회 ‘H2MEET’에 그룹 계열사 7곳이 총출동하며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수소연료 운반에 특화된 무계목 강관 등을 선보이며 업계 관계자들에 어필했다.

포스코는 탄소중립 마스터 브랜드 ‘그리닛’을 론칭했다. 저탄소 철강제품(그리닛 스틸)과 저탄소 철강기술·공정(그리닛 테크앤 프로세스), HyREX 등 저탄소 인프라(그리닛 인프라)의 카테고리 브랜드로 구성됐다. 유럽을 필두로 철강업계의 탄소중립 요구가 거세지는 추세인 만큼, 친환경 철강기술 선점을 통해 미래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SK에코플랜트와 개발 중인 부유식 해상풍력 부유체에 자체 개발한 '내피로 후판' 제품을 적용하는 등 신재생에너지용 강재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더불어 포스코는 이차전지 등 비철강사업으로의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리튬 생산공정의 핵심인 적기투석막의 국산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포스코의 2023년 3분기까지 비철강부문 누적 영업이익은 1조2490억원으로, 전체 3조4610억원의 36%에 달한다.

현대제철은 자사 철강 생산량의 55%를 차지하는 후판사업을 차츰 축소해나가고 있다. 해상풍력용 철강재 등 공급망 확보에 주력하며 비중을 10%이상 낮출 전망이다. 기존 초고장력강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성형성을 향상시킨 3세대 강판 생산 설비를 구축해 2025년 2분기까지 상업생산에 돌입, 자동차 전동화 전환 트렌드에 대응할 예정이다.

또한 국내 반도체 공장 프로젝트, 유럽‧동아시아 해상풍력 프로젝트 및 글로벌 건설기계용 수요 확보 등 비조선 후판 프로젝트 수주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강관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회사 ‘현대스틸파이프’를 신설하고, 글로벌 에너지용 강관 전문사로 도약시킨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액화 이산화탄소 이송 저장탱크 후판을 개발해 친환경 연료 운반선용 강재 포트폴리오 역시 확대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전방 수요산업 환경 변화에 맞춰 제품 판매를 강화하고 생산과 재고 최적화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동국제강은 올해 지주사 체제로 거듭나며 체질 개선을 꾀했다. 지주사 동국홀딩스와 열연사업법인 동국제강, 냉연사업법인 동국씨엠으로 분할돼 각자의 전문성과 시장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지난 19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주 전환 심사가 종료되며 공식 체제전환을 마쳤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동국씨엠의 컬러강판 ‘럭스틸’과 ‘넥스틸’을 더욱 고급화해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고급화 전략이 성공을 거두며 업계 부진에도 불구하고 2023년 3분기 영업이익을 지난해 동기 대비 80%이상 끌어올리기도 했다.

또한 세아그룹과 업무협약을 통해 고부가 강재 ‘클래드 후판’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 클래드 후판은 국내 공급 가능한 철강사가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지만, 지난 2020년부터 3년간 동국제강·세아제강· 세아창원특수강 및 15개 산학연관 기관들이 소재부품기술개발 관련 정부 과제를 수행하여 국산화에 성공한 제품이다.

동국씨엠 컬러강판 라미나강판 제품사진. 사진=동국씨엠
동국씨엠 컬러강판 라미나강판 제품사진. 사진=동국씨엠

신시장 개척으로 활로 찾는 업계

업계는 신사업 개척과 동시에 시장 포트폴리오 역시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탄소국경제도(CBAM) 도입을 앞둔 유럽 시장으로의 진출 기회를 잡으려 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저가 철강 공세의 배경엔 석탄 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저렴한 생산체계가 있다”며 “세계 철강업계가 친환경 흐름에 올라탄 지금이야말로 중국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유럽 시장 진출을 확대할 기회”라고 말했다.

한국철강협회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은 2568만톤 규모의 철강재를 수출했다. 이중 EU가 13.5%(345만9000톤)를 차지했다. 대 EU수출 비중은 2020년 9.3%에서 2021년 10.5%로 증가하는 등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다. EU의 친환경 요구를 충족시키며 수출 비중을 늘려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동남아 시장도 신시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현지 생산거점을 늘리고 적극적인 수주전에 나서는 중이다. 포스코는 오는 2027년까지 35억달러(약 4조6900억원)를 투자해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에 제2고로와 냉연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현대제철은 인도네시아에서 LNG생산 해양플랜트용 강재 수주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동국제강도 동남아 시장 확대를 통해 컬러강판 사업 매출을 2조원까지 늘리고 현재 85만톤 생산체제를 100만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