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미분양 증가 등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PF 대출 부실 우려가 커졌다. PF 대출 부실은 내년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대구 수성구의 도시형생활주택 공사 현장. 사진 = 연합뉴스
건설사 미분양 증가 등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PF 대출 부실 우려가 커졌다. PF 대출 부실은 내년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대구 수성구의 도시형생활주택 공사 현장. 사진 = 연합뉴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가계대출과 함께 내년 우리나라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뇌관으로 떠올랐다. 

PF는 담보가 아닌 사업 계획으로 대출을 받는 조달 방법으로, 주로 부동산 사업에서 사용된다. 부동산 개발 사업자(시행사)는 토지 매입 및 인허가 승인 전단계에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우선 제2금융권으로부터 브릿지론을 받는다. 브릿지론은 착공 후 제1금융권으로부터 받는 대출, 이른바 본PF(이하 PF 대출)가 승인되기 전단계의 임시 대출이라는 점에서 금리가 높고 별도의 수수료가 붙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시행사들은 영세한 경우가 많아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도를 보강하기 위해 시공사인 건설사의 채무인수 약정, 연대보증 등 신용보강이 필요하다. 시행사가 토지를 매입하는데 필요한 브릿지론 대출 승인 여부를 금융사들이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있어서도 사업성보다는 건설사의 보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부동산개발사업 구조도. 자료 = 삼성증권.
부동산개발사업 구조도. 자료 = 삼성증권.

토지 매입후 사업인허가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PF 대출로 전환해 임시대출 성격이던 브릿지론을 상환한다. 그런데 만약 사업 인허가가 늦어지거나 부동산경기 침체로 PF 대출로 전환이 어려워지면 브릿지론을 갚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

'브릿지론→PF 대출' 전환, 사실상 멈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건설사들이 보증을 섰다고 해도 금융사들이 PF 대출로 전환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저축은행 업계 및 신용평가사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저축은행이 취급하고 있는 브릿지론이 PF 대출로 전환한 경우는 5%에도 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PF 대출로의 전환이 멈춰선 것이다.

브릿지론 구조도. 자료=삼성증권.
브릿지론 구조도. 자료=삼성증권.

7월 이후 전국 아파트 가격이 반등하며 미분양 주택 감소 속도도 빨라졌지만, 12월 첫주 서울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2차 조정기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신협과 새마을금고가 미분양 집합건물에 대한 대출 기준을 강화한데 이어 농협중앙회는 미분양 담보 신규 공동대출을 원칙적으로 전면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관련 지침을 전국 농·축협에 전달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사례가 급증하면서 PF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시행사들은 상호금융 업권 공동대출 등을 통해 미분양 담보 대출을 받아 PF 대출을 우선 갚아왔다.

대출금이 부동산 PF에서 미분양 담보 대출로 형태만 바뀌는 것일 뿐 부동산 PF 대출 리스크가 고스란히 미분양 담보 대출로 넘어가는 형태라는 점에서 상호금융 업권은 PF 리스크가 전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프리마호텔 자리를 49층 주상복합으로 개발하는 '르피에드 청담' 사업의 브릿지론의 경우 선순위 채권자인 새마을금고중앙회가 지난 10월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상환을 요구했다. 이후 상환 유예조치로 입장을 바꿨지만 강남 노른자 땅 개발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이면서 시장에선 PF 대출 연쇄 부실 우려가 한층 커졌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고급 주거시설 '르피에드청담' 완공 후 예상 모습. 새마을금고가 만기연장을 한때 거부하면서 PF대출 연쇄 부실 우려가 한층 고조됐다. 이후 새마을금고는 상환조치를 유예하고 있다. 사진출처 = 시행사 미래인
서울 강남구 청담동 고급 주거시설 '르피에드청담' 완공 후 예상 모습. 새마을금고가 만기연장을 한때 거부하면서 PF대출 연쇄 부실 우려가 한층 고조됐다. 이후 새마을금고는 상환조치를 유예하고 있다. 사진출처 = 시행사 미래인

이달 13일 광주광역시의 중견 건설사 해광건설은 금융권에 돌아온 당좌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이 건설사는 자체 브랜드 '해광샹그릴라'로 광주 지역에서는 나름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시공능력평가액 기준 으로는 263억6100만원(전국 908위)에 그치는 소형 업체다. 해광건설은 고금리와 자잿값 인상에 따라 자금난을 겪어오다 최근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에 앞서 11월에는 경남 지역 시공능력평가 8위(전국 285위) 업체인 남명건설이 12억4000여만원의 만기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중견 건설사 잇달아 부도...1군 건설사 건전성 '위험'

건설업계 침체가 계속되면서 소형 건설사 뿐 아니라 시공능력 100위권 안팎의 중견 건설사들마저 도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올해 들어 신일건설과 에이치엔아이엔씨·대우산업개발·금강건설·국원건설·대창기업 등 굵직한 건설사들이 부도처리됐다. ‘해피트리’로 유명한 신일건설은 시공능력 113위, 브랜드 ‘이안’의 대우산업개발은 75위였다.

법원 법인파산사건 인터넷공고에 따르면 이달 들어 18일까지 전국에서 법인회생을 신청하거나 심의가 진행 중인 건설업체(공고 기준)는 19곳에 달했다. 지난 9월에는 24개, 10월에는 5개, 11월에는 31개의 법인회생 공고가 있었다. 업계에서는 이달에는 건수가 올해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건설사 부실 우려는 1등급 건설사, 이른바 '1군 건설사'로까지 옮겨 붙었다. 1군 건설사라고 하더라도, 분양사업 건설 수주를 받을 때 시행사가 받은 PF대출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고 있고, 이같은 지급보증은 우발채무이긴 하지만 재무제표상으로 잡히지 않는다.

현대건설, DL이엔씨 등 일부 건설사들을 제외하면, 1군 건설사라 하더라도 보유하고 있는 현금보다 차입금이 더 많은 '순부채' 상태인 경우가 대다수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이 늘어나면 재무제표상 인식하지 않은 우발채무까지 늘게 될 경우 1군 건설사들도 재무건정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밖에 없다. 

태영건설 여의도 사옥 전경. 사진 = 태영건설.
태영건설 여의도 사옥 전경. 사진 = 태영건설.

태영건설이 KB증권에서 빌린 400억원 규모의 차입금 만기가 이달 18일 도래한 가운데, 양측은 대출 연장과 상환을 각각 요구했다. 이로인해 태영건설의 단기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기업 재무개선작업(워크아웃)설까지 나돌았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는 태영건설의 무보증 사채에 대한 등급 전망을 각각 '부정적', '하향검토'로 내렸다. 등급 전망을 하향한 주된 이유는 태영건설의 PF 보증 중 미착공 또는 착공 후 분양 전 사업장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PF 우발채무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태영건설의 PF우발채무 및 만기도래 현황. 자료 = 한국기업평가.
태영건설의 PF우발채무 및 만기도래 현황. 자료 = 한국기업평가.

한국투자증권은  보고서를 내고 태영건설이 보증한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3분기 말 기준 총 4조4100억원으로 미착공 현장이 대출 연장 없이 사업을 마감할 경우 태영건설이 이행해야 하는 보증액은 약 720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시행사가 받은 PF 대출에 건설사들이 연대 보증을 선 가운데, 부동산 시장 침체로 시행사의 PF 대출 채무를 떠안을 가능성이 커지며 위기설이 돈 것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국내 PF 대출 규모는 134조3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극심한 부동산 시장 침체에도 지난해 말(130조3000억원)보다 4조원이나 늘었다. 2020년 말(92조5000억)에 비해선 거의 42조원이나 급증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연체율은 올해 2배로 급등했다. 지난해 말 1.19%였던 연체율이 지난 9월 말 2.42%까지 상승한 것이다. 2021년 말(0.37%)과 비교하면 2년도 안 되는 사이 6.5배로 급등했다.

올해 9월말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현황. 자료 = 금융위원회.
올해 9월말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현황. 자료 = 금융위원회.

이같은 PF 대출 부실 우려는 자금시장에까지 연쇄적 영향을 주고 있다.

PF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PF 대출 금리는 선순위 기준 10%를 넘기며 최근 두 자릿수까지 올랐다.

PF 대출 금리 법정제한선까지 치솟아...채권 시장도 '급랭'

상환 순위가 뒤로 밀리는 중·후순위는 이자제한법상 상한선인 20%에 바짝 다가선 것으로 전해졌다. 금리와 별도로 수수료 명목으로 지급하는 금액까지 포함하면 이자제한법상 상한 한도를 훌쩍 넘긴 사례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기가 도래한 사업장은 공매로 넘어가지 않으려면 이자제한법상 상한 한도를 넘겨서라도 대출 연장을 해야 한다.

금융권은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PF 사업장에 대한 정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경매나 공매가 진행 중인 사업장은 120개에 달한다. 지난해 말 70개, 올해 6월 말 100개에서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만기가 긴 PF 대출을 1~6개월 단위로 쪼개 채권화한 유동화증권(ABCP·ABSTB) 금리도 치솟았다.

지난해 레고랜드 건설자금 지급보증 거부 사태,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한전채 등 공사채와 은행채, 일반 회사채, 여전채 등 채권금리가 연쇄적으로 치솟으며 벌어진 '돈맥경화' 사태가 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이대로라면 매해 초마다 통신사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유동성을 쌓아두는 자금 스케줄이 당장 내년 1월부터 차질을 빚게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증권가. 사진 = 연합뉴스
여의도 증권가. 사진 = 연합뉴스

ABCP는 PF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기업어음(CP)이다. 유동화전문회사(SPC)가 시행사의 PF 대출채권을 담보로 ABCP를 발행하면, 증권사는 신용을 보강해 주는 역할을 한다. 신용 등급이 높은 증권사가 '빚보증'을 서는 셈이다. 전자증권법에 근거한 특수사채인 ABSTB 역시 유사한 구조다.

증권사들의 단기 조달금리가 오르면 PF 대출 금리도 동반 상승하게 된다. 금융당국은 증권사들의 PF ABCP를 기초자산과 만기가 일치하는 장기대출로 전환하라고 유도해 왔지만, 삼성증권 등 보수적으로 리스크관리를 해 온 일부 증권사를 제외하면 신용공여 한도(자기자본 대비 100%)로 인해 당국의 지침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PF 유동화 구조도. 사진 = 자본시장연구원.
부동산PF 유동화 구조도. 사진 = 자본시장연구원.

HL디앤아이한라가 시공하는 '김해 안동 한라비발디' PF 유동화증권은 지난달 28일 3개월물이 9.5%에 발행됐다. 지난해 5월 27일 발행했을 때 금리가 3.08%였던 것과 비교해  무려 2배 이상 올랐다.

'대구 야외음악당 두류센트레빌'은 지난달 24일 3개월물 PF유동화증권을 9.6%에 발행했다. 이 역시 지난해 3월 24일 발행된 3.85% 대비 두배를 뛰어넘는 금리다.

두 곳 모두 시공사인 HL디앤아이한라와 동부건설이 자금 보충과 조건부 채무인수 부담을 지고 있음에도 금리를 크게 낮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