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방산업계에 2023년은 유독 따뜻했다. 유례없는 순풍을 맞아 연이어 글로벌 ‘빅 딜’을 성사시키며 호황을 이어나가는 모양새다. 한 예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3조4000억원대인 폴란드향 K9 자주포 수출계약을 성사시킨 데 이어, 호주와도 3조2000억원대 레드백 장갑차 수출을 계약하는 등 겹경사를 맞았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유럽과 중동, 동남아 등지에 ‘신시장’이 열린 것이 주효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에 납품한 레드백 장갑차.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에 납품한 레드백 장갑차.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중남미’ 주목한 LIG넥스원

유수의 국내 방산업체들이 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신 시장 개척에 나선 가운데, 조금 특이한 시장에 눈을 돌린 업체가 있다. LIG넥스원이다. LIG넥스원은 이달 5일부터 7일까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방산전시회 ‘엑스포디펜사 2023’에 한국 방산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참가했다.

콜롬비아를 거점으로 삼아 중남미 시장 개척에 뛰어든 것이다.

LIG넥스원은 해당 전시회에서 함대함 미사일 ‘해성’, 한국형 GPS 유도폭탄 ‘KGGB’ 등을 공개했다. 콜롬비아 해군을 비롯해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무기체계를 어필하고, 콜롬비아 국영방산기업 인두밀 사와 전략적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LIG넥스원의 콜롬비아 진출은 어제오늘 시작된 게 아니다. 지난 2011년부터 대한민국 방산기업 중 유일하게 콜롬비아에 중남미 사무소를 개설해 운영해왔다. 중남미 시장 개척과 신속한 사업관리가 목적이었다. 당시 콜롬비아는 중남미의 대표적 군사 강국으로, 노후화된 무기체계의 현대화를 대대적으로 추진 중이었다. 

그 노력 덕에 2012년부터 함대함 미사일 ‘해성’을 콜롬비아 해군에 납품하는 결과를 얻었다. 콜롬비아 해군은 지난 7월에도 해성 미사일을 운용한 훈련 영상을 공개하며 LIG넥스원과 여전히 끈끈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엑스포디펜사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를 비롯한 첨단 방공망 체계와 함대함 및 수중 유도무기, 소나, 탐색레이더, 전투체계 등 수많은 전략무기체계를 현지에 알려왔다. 

LIG넥스원은 중남미 시장뿐 아니라 근래 뜨거운 유럽·중동·동남아 시장으로도 진출 중이다. 먼저 사우디향 천궁II 수출계약의 연내 성사가 가시화되고 있다. 내년 초에는 사우디 방산전시회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이달 4일부터 7일까지는 이집트 방산전시회인 ‘EDEX 2023’에 처음 참가했다. 보병용 중거리 유도무기 ‘현궁’을 포함해 다양한 무기체계를 주변국에 알렸다. 11월엔 태국 국제 방산전시회에 참가해 태국군 및 현지 업체에 다양한 프로모션을 하기도 했다. LIG넥스원은 이처럼 활발한 세일즈를 바탕으로 4분기와 2024년 실적을 점차 개선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엑스포디펜사 2023 LIG넥스원 부스를 방문한 콜롬비아 해군 관계자들에게 LIG넥스원 관계자가 전시한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엑스포디펜사 2023 LIG넥스원 부스를 방문한 콜롬비아 해군 관계자들에게 LIG넥스원 관계자가 전시한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3분기 부진은 추진력을 얻기 위한 것”

업계는 호황이었지만 LIG넥스원의 2023년 3분기 실적은 다소 좋지 않았다. 3분기 매출액은 535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6955억원 대비 22.9% 줄었다. 영업이익은 41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583억원에 비해 29.6%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화에어로, KAI, 현대로템 등 다른 대형 방산업체의 실적이 모두 상승한 것과는 반대된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항공정찰과 정밀타격 분야 등을 비롯한 주요 양산 사업이 종료되면서 일부 매출 공백이 발생했으며, 미래 사업 성장을 위한 투자 금액이 비용으로 반영되면서 수익성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3분기 실적 부진은 일회성을 띠는 요인이 다수 반영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2월 UAR에 천궁II를 수출한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근래 다시 대형 사업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한동안의 ‘숨 고르기’ 이후 실적 개선과 함께 재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특히 신사업, 신시장 투자 내역이 눈에 띈다. 세계 최고의 방산 시장인 미국에도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LIG넥스원은 미국에 2.75인치 유도로켓 ‘비궁’을 수출하고자 시도 중이다. 국내 유도무기 최초로 미 국방부 주관 FCT(해외비교시험)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2024년 중 수주가 예상된다.

이치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당장의 실적보다 미국 수출 성공 레퍼런스에 주목해야 한다”며 “천궁II와 비국 수주 모멘텀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흐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근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자국 핵심 시설 방어·요격 무기체계의 수요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LIG넥스원의 주력 수출품 천궁II의 수출 확대를 기대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종교적·지리적 갈등이 반복되는 중동은 원유 생산 시설 등 국가기간시설 방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9.19 군사합의 중단으로 북한의 위협까지 날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천궁II 세일즈에 기회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 최대 방위산업전시회 ‘IDEX 2023’ 참가한 LIG넥스원 관계자들. 사진=LIG넥스원.
중동 최대 방위산업전시회 ‘IDEX 2023’ 참가한 LIG넥스원 관계자들. 사진=LIG넥스원.

로봇공학으로 미래 방산 선도

이달 8일엔 대형 투자 소식이 들려왔다. 4족 국방용 로봇으로 유명한 미국 ‘고스트로보틱스’의 경영권을 인수한다고 공시를 통해 알린 것이다. 인수를 위해 특수목적자회사 LNGR을 설립, 발행회사를 통해 고스트로보틱스의 지분 60%를 사들일 예정이다. 인수가는 3149억원이다. LIG넥스원은 LNGR에 지분 매매대금의 60%에 근접하는 1876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나머지 40%인 1259억원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의 교환사채인수대금으로 조달한다. 내년 6월 30일에 주식 취득 예정이다.

고스트로보틱스는 차세대 전장을 주도할 로봇 무기체계를 선도하는 기업이다. 전방 색상감지 카메라와 후방 색상 및 깊이 감지 센서 등을 장착한 로봇 군견은 군용·경비용·구조용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 향후 성장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LIG넥스원은 본업인 방위산업에 고스트로보틱스의 로봇 기술력을 접목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인수를 통해 미국 방산 시장에도 본격 진출하고 있다. 특히 현재 수출 추진 중인 ‘비궁’을 비롯, 천궁, 현궁, 신궁 등 자사 유도무기 세일즈의 교두보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로봇공학은 고도의 AI와 사물인터넷 등 첨단 기술이 전부 적용되는 분야다. LIG넥스원이 영위하고 있는 유도무기 사업과 결이 비슷하다.

지난 6월 미국 고스트로보틱스의 로봇개가 서울 용산공원에서 대통령 집무실 경호용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6월 미국 고스트로보틱스의 로봇개가 서울 용산공원에서 대통령 집무실 경호용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