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늘 아쉬운 달이다. 달력 한 장을 남겨두고 지난 한 해를 반추(反芻)해보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에 다가오는 새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매년 이러한 일련의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조금씩 발전해 나갈 수 있다면 참 다행인 일이다.
특히 2023년 계묘년의 끝자락에 우리에게 들려왔던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소식은 올해의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지난 몇 년 간 부산 시민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준비하고 염원하고 응원했던 유치 이벤트였던 만큼, 그 아쉬움은 더 크게 다가온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네 인생이 아쉬움으로만 점철(點綴)된다면 그 인생이야 말로 참으로 아쉬운 인생인 것이다. 물론 필자에게도 올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일이 많았지만, 일단 국민적 관심사였던 부산엑스포 유치 문제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 경영전략적 관점에서 꼭 짚어보고 싶다.
우리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하면 숫자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12척의 판옥선으로 330척의 왜군을 이긴 명량대첩은 여전히 후대에게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다. 여기에 또다른 ‘레전드’를 덧붙이자면 이순신 장군의 전적은 바로 ‘23전 23승’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한 번도 지지 않고 참전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 정도면 이순신 장군은 ‘레전드 오브 레전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 기록은 이순신이 거느리고 있는 군사도, 식량도, 무기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뤄낸 쾌거다. 일단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의 비결에 대한 여러 분석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가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전략을 펼쳤다는 것이다. 즉 이길 가능성이 높은 전투만을 선택했다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이순신 장군은 먼저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고 전투를 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역으로 지는 군대는 일단 전투를 시작한 뒤 그때부터 승리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승구전의 전략은 현실에서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유능한 장수는 전투 전에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짜고 형세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 이순신 장군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왜군의 약점과 조선수군의 강점을 정확히 파악했고 그 약점과 강점이 최대한 드러날 수 있는 전투를 기획했다. 일단 이순신 장군은 조선수군의 전력이 약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투의 구조를 짜는 것에 몰두했고 동시에 조선수군이 갖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애를 썼다. 당시 조선수군은 왜군보다 함포 활용 능력이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남해의 복잡한 지형지물을 잘 활용해서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 선택적으로 전선(戰線)을 형성했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관할 지역의 지형과 조류를 제일 먼저 조사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에 대한 정보 수집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탐망군과 탐망선을 파견해서 적의 규모와 이동 상황 등을 세밀히 파악했고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기반으로 일본 수군을 선제공격해서 적을 제압하고 봉쇄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학익진법(鶴翼陣法)을 실행하기 위해 노 젓기, 함대 진법 훈련, 방향 전환 훈련 등,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이기기 위한 모든 ‘조건’을 만드는 데에 힘을 썼다. 20세기 초 영국의 해군 전략가 발라드(Ballard)제독은 이순신의 이러한 선승구전 전략을 실제로 배우고 심취했다고 한다.
경영전략의 대가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경영전략적 문법으로 선승구전 전략을 설명한다. 기업이 경쟁해야 하는 산업에서 구성하고 있는 경쟁자, 구매자, 공급자를 파악하고 경쟁사의 수, 경쟁사의 핵심 역량과 파괴력, 새로운 경쟁사의 진입장벽, 사업철수를 위한 퇴출장벽, 대체 상품, 구매자의 협상력, 구매자의 수 등 기업이 진출하고자 하는 산업의 모든 것을 파악해서 ‘출전(出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터 교수는 이를 ‘산업의 매력도’라고 기술하는데, 기업이 승리하지 못할 것 같은 산업에 선제적으로 진출을 막기 위한 기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반대로 산업의 매력도가 높은 경우에는 바로 진출해서 ‘적’의 숨통을 끊는 것이다.
다시 엑스포 얘기로 돌아가자. 결과는 참담했다. 사우디 119표, 대한민국 29표, 이탈리아 17표. 더 뼈아픈 현실은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가 불참해 사실상 ‘엑스포 중도 포기’로 분석됐던 이탈리아와의 표차가 12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우디의 오일머니에 포섭된 다수의 국가, 우리 외교라인의 역할 등 백만가지의 패인이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압축해서 하나의 패인으로 정리하자면 선승구전의 전략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대한민국은 이번 2030 엑스포 ‘판’에 애초부터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결정적 이유는 단 하나다. 이미 2025년 엑스포가 일본 오사카로 결정 났는데 연속으로 같은 동아시아 지역의 대한민국 부산이 2030년 엑스포를 유치한다는 것부터가 무리였다. 상대적으로 사우디는 건국 100주년 차원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엑스포를 준비해 왔다는 점에서 이 전투에는 참전하지 말았어야 했다. 포터의 산업구조분석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판에 들어가면 속된 말로 탈탈 털리는 상황이었고, 이순신 장군의 관점에서 본다면 왜군에게 말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경영전략이나 전술의 기본은 적의 약한 곳을 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가나 기업이나, 처음부터 이기기 어려운, 어쩌면 이기는 게 불가능한 판에 무턱대고 뛰어들어서 장렬하게 전사(戰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조조에게 쫓기던 유비와 제갈공명이 30만 대군의 조조와 맞설 곳으로, 장강의 적벽을 선택하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까지 공격을 미뤘다는 얘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막상 실전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다가오는 2024년 갑진년(甲辰年)에는 우리 독자들 모두, 故 김현식의 ‘우리네 인생’이란 노래 가사처럼 ‘욕심이 나더라도 산마루 구름같이 쉬면서 가는’ 새해가 되시길 기원한다. ‘어제 일은 뒤로 남기고, 가는 곳은 내일을 향해, 쉬었다가 다시 떠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