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인터뷰에는 기자의 ‘사심(私心)’이 가득 담겨 있다는 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강동원의) 잘생김으로 시작해 잘생김으로 끝났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을 보고 한 누리꾼이 남긴 후기다.
2003년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에 주인공 은희(배두나)를 짝사랑하는 의사로 잠시 등장했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그의 외모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드라마 <1%의 어떤 것>,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 이후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고등학생 정태성 역을 맡은 그는 우산을 든 단 한 장면으로 대한민국 여심을 들어 올렸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영화사에 회자되는 ‘우산 장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꽃미남 스타’가 아닌 진짜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형사, 사형수, 도사, 간첩, 초능력자, 사제, 사기꾼, 군인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작품의 ‘완성도’만 있다면 역할이 크든 작든 출연을 주저하지 않았다. 영화 <그놈 목소리>에서는 유괴범의 목소리만을 연기했고, <1987>에서는 잘생긴 남학생(이한열 열사)으로 특별출연했다.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도전이 무색하게도, 어떤 인물을 연기하든 화제가 된 것은 그의 외모였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는 강동원에게만 벚꽃을 뿌렸다는 오해를 샀고, <검은 사제들>을 본 관객은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후광이 비치며 종소리가 들린다는 착각에 빠졌다. <검사외전>에서는 남다른 피지컬로 죄수복도 수트처럼 소화하며 ‘같은 옷 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동안의 필모그래피가 조금씩 묻어나는 영화 <천박사>로 돌아온 그는 이번에도 ‘나이를 잊은 외모’로 주목받고 있다.
9월 2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동원은 ‘과묵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의 말처럼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천 박사’처럼 능청스러운 면도 있고 장난을 많이 치는 성격”이라는 그는 인터뷰 내내 유쾌하고 편안한 태도로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했다.
“잘생겨서 불편한 점 없다”

- <천박사>를 본 관객 사이에서 ‘강동원 잘생겼다’라는 후기가 많습니다.
“다행이네요. 잘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죠. 이번에도 그런 반응이 있다고 하니 좋네요.”
- <천박사>에 출연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미국에서 시나리오 브레인스토밍을 함께 하던 임필성 감독님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류승완 감독님을 만났어요. 류 감독님에게 오컬트 물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이것 좀 읽어보라’며 감독님 회사 ‘외유내강’에서 준비 중인 시나리오를 보내주셨죠.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액션도 많았고요. (김성식) 감독님도 신인 감독이지만 조감독을 오래 하셨고 연출부 하실 때 평판도 좋아서 같이 작품을 하기로 했습니다.”
- <그녀를 믿지 마세요>, <의형제>,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 <가려진 시간> 등에 이어 <천박사>까지 신인 감독과 자주 작업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요즘은 신인 감독님들이 저보다 어리긴 하지만 거의 제 또래예요. 비슷한 나이대니 작업할 때 서로 편하죠.”
-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뭔가요?
“시나리오를 보고 재밌으면 해요. 일단 구조가 좋아야 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나 명확한 메시지 혹은 새로운 그림이 있다면 선택하죠.”
- <검은 사제들>에 이어 퇴마를 다룬 두 번째 영화인데 퇴마 장르를 좋아하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나 봐요. 만화책을 워낙 좋아해 어릴 때 만화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드래곤볼>, <슬램덩크> 세대기도 하고, <아일랜드>나 <열혈강호>도 좋아했죠. 무협 만화는 많이 보진 않았어요.”
- ‘천 박사’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참고하거나 아이디어를 낸 부분이 있나요?
“무당분들이 굿하는 거나 점 보는 걸 찾아보고 그중에서 제가 인상 깊게 본 몇 가지를 영화 초반부에 활용했어요. 무당이 손님에게 화내는 모습이 재밌어 보여서 저도 퇴마할 때 화내는 걸로 설정을 바꿨죠. ‘천 박사’의 헤어 스타일도 제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영화에서 ‘칠성검’이 합쳐지는 장면도 무술 감독님과 얘기하다 (김성식) 감독님께 말했더니 감독님도 좋은 생각이라고 반영해 주시더라고요.”
“액션 좋아하지만, 코미디가 가장 좋아”

- 액션 장면이 많은데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특별히 따로 준비한 건 없어요. <천박사> 무술 감독님과는 처음 작업한 건데 저를 부르더니 앞구르기, 뒤구르기, 낙법을 시키셨어요. 십여 년 만에 기본적인 액션을 하면서 ‘내가 왜 여기서 이걸 하고 있지. 예전에 다 졸업했던 건데.’라고 생각했죠. 연기하면서 다치지 않으려면 중요한 부분이긴 해요. 감독님이 제가 기본은 갖췄다는 걸 알고 이후에는 안 부르시더라고요. 액션 신이 길면 합을 맞춰볼 필요가 있는데 이번 작품은 긴 액션 합이 없어서 미리 준비하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합을 맞추면서 찍었어요.”
- 액션 영화(연기)를 좋아하세요?
“운동을 좋아해서 몸 쓰는 걸 좋아해요. 액션도 좋아하고요. 사실 액션 영화를 찍으면 몸이 너무 힘들어서 코미디 영화를 더 좋아하긴 해요. 코미디 영화는 일단 웃으면서 찍을 수 있어서 좋아요. 심각한 분위기의 영화는 촬영할 때 분위기도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데 코미디 영화는 다들 즐겁게 찍을 수 있잖아요. 영화 촬영은 다 힘들지만 코미디는 현장 분위기가 좋으니까 덜 힘들어요. 웃음 참는 게 힘들죠.”
- 영화 초반에만 코미디 요소가 강하고 후반부는 분위기가 진지하게 바뀌는데 의도한 건가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중간중간 개그 요소가 있었는데 긴장감이 떨어져 편집 과정에서 다 뺐다고 하더라고요. 의도한 부분도 있어요. 상대적으로 극 초반에 코미디 요소를 더 많이 넣어서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처음에 관객을 즐겁게 만들고 후반부에서 본격적인 스릴러로 넘어가면 변화가 크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죠.”
- <천박사>는 <전우치>나 <검사외전> 등 전작과 비슷한 면도 있는데 이전에 맡은 역할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천 박사’는 ‘전우치’나 <검사외전> ‘한치원’의 중간 정도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극 초반에 그런 모습을 더 보여주려고 했고, 후반부에서 천 박사의 본모습이 나오며 진지하게 바뀌지만 항상 여유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캐릭터로 설정했죠. 제가 전우치를 연기한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그때 했던 연기를 똑같이 한다고 해도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전과는 다른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죠.”
- <전우치>나 <검사외전>처럼 능청스러운 인물을 연기할 때 관객에게 사랑받은 이유를 생각해 보셨나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코미디 연기를 가장 좋아하니까 잘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검은 사제들>이나 <마스터>처럼 진지한 영화도 흥행한 게 많아요. <전우치>는 제작비 대비 그렇게 흥행한 영화는 아니에요. <아바타>랑 동시에 개봉해서 극장도 못 잡았고요. 방송을 통해 많이 보셔서 천만 영화(천만 관객 돌파 영화)처럼 말씀하시는데 당시에 관객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 영화에서 시즌2를 암시하는 부분도 있고, 감독님과 다른 출연자들도 시즌2를 바라는 것 같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즌2가 나온다면 ‘강 도령(이동휘)’을 주인공으로 하면 좋겠네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시즌 2를 만드는 건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관객분들의 몫이니까요. 영화 개봉 후에 관객분들이 정말 좋아하시고 시즌2를 원한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죠.”
“‘그럴 때’가 됐다”

- ‘세월의 흐름을 거스른 외모’라는 평이 있는데, 늙지 않는 비결이 있을까요?
“이제 슬슬 제 나이 또래로 보이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연예계에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요. 비연예인 친구들보단 제가 어려 보이는 것 같아요. 젊게 살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부모님이 동안인가? (웃음)”
- 기자간담회에서 ‘이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은 뭔가요?
“이제는 화면을 통해 보이는 제 얼굴에 세월과 연륜이 묻어나는 것 같더라고요. 전에는 40대 역할을 못 했지만 지금은 40대 아저씨 같은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빈 ‘아저씨’ 같은 역할도 할 수 있고요.”
- ‘강동원 3대 착각 장면’이 있을 정도로 출연하는 영화마다 외모로 주목을 많이 받습니다. 출연작 중 시각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나 영화가 있나요?
“비주얼적으로는 <형사 DUELIST>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정말 훌륭한 장면이 몇 개 있죠. ‘담벼락 액션’신 같은 건 정말 잘 찍었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영화를 디지털로 제작하던 때도 아닌데 CG도 많이 쓰지 않고 빛과 어둠을 왔다 갔다 하면서 찍었죠.”
-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 나와 19년 만의 TV 예능 출연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영화 홍보를 위해 출연하긴 했지만 이제 예능에서 ‘내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2015년 <검은 사제들> 개봉할 때는 JTBC <뉴스룸>에 나갔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생각이었죠. 이번에도 <뉴스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 또 제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오랜만의 예능 출연이지만 긴장이 되진 않았어요. <유퀴즈>에서 ‘20년 후에 나오겠다’고 한 말은 농담이에요. 계속 저한테 20년 만에 나왔다면서 언제 또 나올 거냐고 물으시길래 그럼 20년 뒤에 보자고 대답했죠. 지금 당장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나갈 계획은 없지만 좋은 기회가 있다면 도전할 수도 있겠죠.”
- 최근 1인 기획사(AA그룹)를 세우셨는데요?
“1인 기획사는 아니고요. 마음이 맞는 분들이 있으면 영입할 수도 있죠. 이제 제가 갈 만한 소속사도 없고, ‘그럴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했어요.”
- OTT 플랫폼이 등장하며 미디어 환경이 많이 바뀌었는데 이제 드라마에 출연해도 될 때라는 생각은 하지 않나요?
“제안은 많이 옵니다. 지금 찍고 있는 작품이 끝나면 아직은 잡힌 스케줄이 없어요. 재밌는 건 제가 OTT라는 플랫폼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시리즈물을 만들자고 했던 사람이라는 거예요. 어떤 소설을 원작으로 시리즈를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자고 제안했던 게 벌써 10년이 다 돼가네요. 그때는 그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과 마음이 맞지 않아서 성사가 안 됐어요. 지금 OTT 시장이 이렇게 커졌는데 정작 저는 드라마를 안 찍었네요.”
“일하는 게 재밌어요”

- 좌우명이 있나요?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입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공자님의 말씀이에요.”
- 배우로서 일을 즐기시나요?
“저는 늘 즐겁게 일하는 편이에요. ‘남을 힘들게 하면서 일하진 말자’는 주의고 즐겁게 일하는 게 좋아요. (촬영) 현장에서도 분위기 메이커는 아니지만 (이)동휘 같은 친구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려고 하죠.”
- 2015년을 제외하고는 지난 2014년부터 매년 영화를 1~2편 정도 꾸준히 찍었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며 번아웃(burn-out·기력이 소진돼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을 겪는 현상)이 온 적은 없나요?
“전혀 없어요. 보통 2년에 세 작품 정도를 찍는데 그 정도 주기로 일하는 게 딱 좋은 것 같아요. 영화를 준비하면서도 너무 힘들지 않고요. 촬영이 끝나면 잠깐 쉬고 다음 작품 준비하고, 다시 촬영 들어가고 끝나면 홍보하는 사이클이에요. 예전엔 ‘일중독’이라는 표현도 썼던 것 같은데 일중독인지는 모르겠어요. 번아웃이 안 되는데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굳이 쉴 이유가 없잖아요.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재밌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요.”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지금 작품 제작을 준비 중이에요. 계속 여러 개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제가 출연하는 작품도 있을 것 같아요. 40대가 되면서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직접 써서 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제작은 시놉시스만 써서 넘기면 되기 때문에 괜찮은데 연출은 너무 스트레스받을 것 같아 엄두가 안 나요. ‘더 나이 들기 전에 열심히 일하자’라는 생각은 30대 때랑 똑같아요.”
-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진짜 좋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어떤 캐릭터든 다 소화하는 배우이자 뭘 해도 ‘정말 잘했다’라는 말을 듣는 배우가 되고 싶죠.”

강동원이 지금까지 소화했던 캐릭터가 조금씩 녹아 있는 영화 <천박사>는 추석 연휴를 겨냥해 지난 27일 개봉했다. 같은 날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과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도 출사표를 던지며 ‘추석 한국 영화 3파전’에 돌입했다. <1947 보스톤>에 출연한 하정우와는 전작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만났고, <거미집>의 주연 송강호는 <의형제>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다.
“이렇게 세 작품이 동시에 개봉하는 일은 별로 없잖아요.”
그는 “그만큼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모두 친분이 있는 형님, 선배님이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극장에 많은 관객을 불러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박사>만의 매력을 묻자 강동원은 “다른 두 영화보다는 좀 더 가볍게 볼 수 있고, 액션이 가장 화려한 영화”라며 “가족들과 편하게 <천박사>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2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천박사>는 전날 19만371명이 관람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개봉일인 27일 관객수 14만3000여 명으로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한 후 이틀 연속 1위를 유지했다. 누적 관객수는 35만6863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