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탄소중립은 가야할 길이지만 녹록치 않다. 국내 탄소중립은 수출에 의지하는 산업구조 때문에 중요도가 높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최대 탄소배출 산업 1위는 ‘공공전기 및 열 생산’으로 전체의 35.5%를 차지한다. 전기를 RE100(재생에너지 100%)에 맞춰 생산하지 못하면 결국 국내 기업 수출 제약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해외 수출 기준이 RE100에 맞춰지는 가운데 신속한 전력업계 탄소중립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약 80%를 차지한다. 탄소 다배출 기업 자체가 기후위기 주범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이러한 탄소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 탄소배출권이다. 기업 처지에서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그만큼 탄소배출권을 사와야 하니 탄소 저감에 자발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반대의 경우 역시 가능하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배출권거래다.
우리나라에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시기는 2015년이다. 유럽연합(EU)의 배출권거래제를 본 떠 도입했다. 국내 배출권거래제는 현재 국내 총 탄소 배출량의 73.5%를 담당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규제 수단으로 평가된다.
제 역할 못한 배출권거래제
환경부는 각 기업에 탄소배출 할당량을 지정했다. 탄소배출권을 할당 받는 기업은 산업‧건물‧수송‧폐기물‧공공 등의 부문에 제한한다. 여기서 다시 연평균 12만5000톤 이상 탄소를 배출하거나 2만5000톤 이상 단일 사업장을 보유한 기업으로 제한된다. 배출권 대상기업은 2015년 526개에서 현재 684개 업체로 늘어난 상태다.
사업기간도 환경부가 정한다. 자발적온실가스감축목표(NDC) 계획에 따라 규정한 탄소배출 허용총량에 맞춰 ▲제1차 계획기간(2015~2017년) ▲제2차 계획기간(2018~2020년)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을 운영 중이다. 탄소배출권은 1차 계획기간에는 전량 무상할당하며, 유상할당은 2차(3%)와 3차(10%) 계획기간에 걸쳐 비중을 점차 늘렸다.
취지와 달리 탄소배출 감축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환경부 배출권거래제 통계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 도입 이후 할당대상업체의 총 탄소배출량은 2015년 5억4000톤에서 2020년 5억5000톤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에너지공단 조사에서도 동기간 기업의 에너지 절감 투자가 2015년 1625억원에서 2020년 1215억원으로 25.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배출권거래제가 기업에 탄소 감축 압박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탓으로 풀이된다.

기형적인 배출권거래제, 전기요금 부담 늘려
국내 배출거래제에는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 발전공기업 5개사(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가 70% 가까이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석탄 발전 비중이 40%로 높고, 공기업 특성상 사기업처럼 자유롭게 사업을 운용해 탄소감축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맹점을 이용해 일부 대기업은 쏠쏠한 부가수익을 얻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가 1~2차 계획기간 평균 배출권 가격을 분석한 결과 상위 9개사는 총 4155억원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포스코는 동기간 2018년을 제외하고 배출권 부족 없이 약 1100억원의 초과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포스코에 잘못을 묻기도 힘들다. 사기업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기업이 판매하는 배출권이 발전공기업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실제 1~2차 계획기간 동안 발전공기업 5개사에는 7150만톤의 배출권 부족분이 발생했다. 이는 대부분 탄소배출권을 보유한 대기업에서 사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용의 80%는 모회사인 한전이 부담하는 구조다. 현행 배출권거래제가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는 발전공기업 처지에서도 자금 부담이 상당한 상황이다. 국내 석탄발전소는 운영기간이 30년으로 해외 평균(50년) 운영기간보다 20년 정도 짧다. 이마저도 탄소중립을 위한 조기폐쇄로 현금창출이 어려운 좌초자산이 돼버려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크게 축소된 상태다. 발전공기업 처지에서는 투자금에 더해 추가비용이 늘어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해결책으로 배출권 가격과 유상할당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50 탄소중립과 배출권거래제의 활성화’ 리포트에서 “탄소시장의 목적은 탄소에 대해 적정한 비용을 오염자부담원칙에 따라 내부화해서 탄소를 줄이는 것”이라며 “최저가격 이하로는 입찰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최저가격제를 도입해 배출권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탄소배출국인 우리나라가 급속한 탄소감축을 이루기 위해 실보다 득이 많을 것이란 평가다.
플랜1.5도 ‘고장난 배출권거래제, 쟁점과 대안’을 발표하며 그 해법으로 ▲2030 NDC 강화에 따른 할당량 조정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 등을 고려한 유상할당 대폭 확대 ▲최소한의 감축유인 제공을 위한 최저가격제의 도입 ▲전환 부문 감축 촉진을 위한 석탄발전총량제/통합 BM 방안 구체화 ▲배출허용총량 산정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 등을 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