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탄소중립은 가야할 길이지만 녹록치 않다. 국내 탄소중립은 수출에 의지하는 산업구조 때문에 중요도가 높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최대 탄소배출 산업 1위는 ‘공공전기 및 열 생산’으로 전체의 35.5%를 차지한다. 전기를 RE100(재생에너지 100%)에 맞춰 생산하지 못하면 결국 국내 기업 수출 제약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해외 수출 기준이 RE100에 맞춰지는 가운데 신속한 전력업계 탄소중립이 요구되는 이유다.

2021년은 우리 전력공기업에 잊을 수 없는 해다. 한국전력공사(한전)와 6개 발전자회사가 일제히 탄소중립 비전을 선포한 해이기 때문이다. 6개 발전공기업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등이다.
비전선포식에서는 탄소중립 시대 전력공기업의 역할이 언급됐다. 전력공기업의 탄소중립 비전은 ‘제로 포 그린(ZERO for Green)’이다. 에너지 생산(발전), 유통(전력망), 사용(소비 효율화) 등 전력산업 밸류체인 전 과정에 걸쳐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과감한 혁신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전력공기업의 의지를 담고 있다.
7개 발전공기업은 ▲2050년까지 석탄발전 전면 중단 ▲민간참여만으로는 어려운 대규모 해상풍력, 차세대 태양광 등 자본‧기술집약적 사업개발 ▲수소 기반 발전 확대 등을 약속했다.

전력공기업, 탄소중립 기술개발전략 구축 계획
탄소중립 기술개발전략도 발표했다. 주요 기술개발 분야는 총 4가지로 에너지효율화: HVDC(초고압 직류송전), 분산에너지 시스템 ▲재생에너지 확대: 해상풍력 발전량 증대, 그린수소 생산·저장·활용 ▲연료 전환: 수소‧암모니아 발전(혼소‧전소 터빈개발, 혼소‧전소 성능평가 및 제어),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 석탄 500MW‧LNG 150MW 포집 상용화‧MW급 CO2 재활용) ▲지능형 전력그리드 구축: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 배전망 관리시스템 운영고도화, 위험 평가기반 최적 설비투자 등이다.
전력공기업은 기술개발 증명과 확산을 위해 역할 분담에 나섰다. 전력공기업의 탄소중립 기술개발 주요 프로젝트는 ▲한전: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 전력계통 안정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수상 태양광 발전단지 개발 ▲한국남동발전: CO2 포집‧활용(CCU) 기술 개발 및 상용화 ▲한국중부발전: 블루수소 생산 플랜트 및 수소 가치사슬 구축 ▲한국서부발전: 액화천연가스(LNG) 복합발전소 수소 혼소 발전 실증 ▲한국남부발전: 석탄발전소의 친환경 융합에너지 캠퍼스 전환 ▲한국동서발전: LNG 복합발전 이산화탄소 포집기술 실증 및 상용화 등으로 나뉜다. 각사는 기술개발 프로젝트에 맞춰 세부 프로젝트 결정 방침도 함께 정했다.
기술개발 역할분담은 비용과 위험을 분산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술에 대해서는 회사별로 실증 및 상용화를 추진했다. 개발에 장기간이 소요되거나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사업은 공동 프로젝트로 추진해 위험을 분산하고 비용을 효율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한전은 탄소중립 이행에서 각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공동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한다는 부분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전력공기업 5개사, 연구‧실증 추진 중
5개 전력공기업은 2025~2030년까지로 정해진 사업 기간에 맞춰 탄소중립을 부단히 준비 중이다. 먼저 한국남동발전은 2025년부터 이산화탄소를 연간 2만톤 감축 목표를 앞두고 지난 2월 CCU 기술혁신 로드맵 중점기술 중 하나인 ‘광물탄산화기술’ 실증에 나섰다. 발전소 부산물인 탈황석고와 이산화탄소를 석회석과 황산암모늄으로 재생산해 석회석은 탈황 흡수제, 황산암모늄은 비료로 제품화하는 사업이다. 올 3월부터 실증설비를 삼천포발전소에 설치해 이산화탄소 연간 500톤 감축이 기대된다.
한국중부발전 프로젝트는 수소밸류체인 구축이 핵심이다. 2026년부터 블루수소(그레이수소처럼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얻지만 CCS 설비를 이용해 탄소 배출을 줄인 수소) 연간 25만톤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1년 충남도·보령시·SK E&S와 함께 손잡고 ‘보령 청정수소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기계연구원과 ‘가스터빈 수소 혼소 30%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협약을 진행한 데 이어, 그해 11월 ‘차세대 블루수소 생산기술’ 개발도 국내 최초로 성공한 바 있다.
가스터빈에서 굵직한 성과를 보인 한국서부발전도 있다. LNG 복합발전 수소혼소로 2026년부터 이산화탄소 연간 80만톤 감축이 목표다. 지난 6월 한국서부발전은 한화임팩트와 함께 진행한 중대형급 가스터빈인 80㎿급에서 세계 최고 혼소율인 59.5% 달성 실증 기념식을 진행했다. 이번 실증은 기존 LNG 발전설비에 비해 이산화탄소를 22% 감축하고, 대기오염물질(NOx)도 30% 줄이는데 성공했다.
한국남부발전은 석탄발전소의 친환경 융합에너지 캠퍼스 전환 실증사업을 담당한다. 2021년 한국남부발전은 하동화력발전소를 친환경 에너지밸리로 낙점했다. 하동화력발전소 이름을 하동빛드림본부로 바꾸고 1000MW급 LNG복합화력발전소로 전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남부발전은 2030년부터 이산화탄소를 연간 2000만톤 감축한다는 목표다.
석탄화력발전소의 LNG복합발전소 전환은 기존 설비를 그대로 유지한 채 터빈만 교체하면 돼 에너지 전환시 좌초자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LNG 발전소 또한 미세 먼지 등 환경문제가 발생해 주민 설득 과정에서 고전하고 있다.
LNG 복합발전에 나선 또다른 발전사는 한국동서발전이다. LNG 복합 포집기술 확보 및 상용화로 2026년부터 이산화탄소를 연간 50만톤 감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동서발전은 이달 초 미세먼지 계절관리제에 따라 석탄발전소를 정지하고 발전출력을 낮추는 조치 등을 취해 2015년과 대비해 2022년 미세먼지 배출량을 67%(4390톤) 감축했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폐쇄하는 6기의 석탄발전소를 단기적으로는 LNG‧수소혼소발전, 중기적으로는 수소전소발전으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지난해 11월 주민합의를 이끌어 내 음성LNG발전소 착공도 이뤄냈다.

한전‧한수원, 다른 곳보다 추진 늦어
전력공기업 7개사 중 탄소중립 지각생은 한전과 한수원이다. 타 전력공기업이 관련 기술개발에 이어 실증까지 나선 사이 아직 사업 기반을 닦는 수준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다.
새만금에 세계 최대 수상태양광 발전을 추진키로 했던 한수원은 특혜 시비와 사업비 문제 등으로 프로젝트에 난항을 겪고 있다. 2018년부터 추진된 해당 사업은 환경영향평가 초안부터 수질오염 가중과 멸종위기 조류 생태계보전 대책 부족 등을 이유로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에 질타를 받았다. 지난해 초에는 현대글로벌과 공동협약개발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약 230억원의 설계용역 수의계약과 하도급 특혜 등의 비리가 있었다는 감사원 감사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 사업은 새만금 일대에 총 2.1기가와트(GW) 규모의 수상태양광 발전설비와 전력계통 연계를 위한 송‧변전설비 등을 구축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사업비만 4조원을 훌쩍 넘는다. 최근에도 송‧변전설비 비용 지불을 놓고 한수원과 전라북도 등이 알력싸움을 이어가며 사업이 표류하고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RE100 난제는 전력계통 안정화에서 핵심 위치인 한전에 있다. 한전은 변동성이 강한 재생에너지 특성을 보강하기 위해 전력망을 선제적으로 보강하고 백업설비도 확충하는 임무를 받았다. 2021년 당시 계통 부담을 덜기 위해 자가소비 활성화 등 분산형 전원체계 확대도 언급된 이유다. 지난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통과되며 사업에 한발을 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주민 수용성 확보 실패로 예정된 송전망 설치 마저 미뤄지며 발생전력도 싣지 못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실제 동해안을 중심으로 늘어난 신규 민간발전사와 송배전 문제로 소송이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 등에는 반도체 클러스터 등 전력 다사용 생산시설이 구축되고 있어 한전의 송전망 설치 부담은 더욱 늘어난 상태다.
이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투자와 생산비율도 줄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향후 RE100 달성에 우려를 낳고 있다. 김용민 의원(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2022년 기준 발전5개사(한수원 제외) 발전설비 중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분석한 결과 한국서부발전이 5.1%, 한국동서발전이 1.6%, 한국남동발전이 12.4%, 한국중부발전이 1%, 한국남부발전이 3.2%였다. 한국남동발전을 제외하면 평균 2.7%이며, 한국중부발전과 한국동서발전은 1%대로 저조한 수준을 기록했다.
정우식 한국태양광협회 부회장은 “최근 국내 신재생에너지 부문이 위축돼 안타깝다”며 “투자비가 적게 들고 계통연계에 부담이 적은 산업단지 지붕에 태양광 설치 의무화 제도 등을 추진하면 속도감 있는 RE100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재 경기도는 RE100 달성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발전 중요성을 인식하고 산업단지 태양광 설치 의무화 제도를 추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