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추억·향수를 팔아라”
경기침체 불안감에 자아찾기 나설 듯
<개그콘서트> 뜬금뉴스의 안상태 특파원이 “난~했을 뿐이고”로 인기다. 그의 유행어는 묘하게 최근 현대인들의 정서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나는 열심히 살았지만 운이 나빠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것뿐”이라는 의미다. 이는 펀드열풍으로 인한 전 국민의 자산 디플레이션 현상 등 대다수 국민들의 억울함과 무력감을 대변한다. 전문가들은 2009년을 최악의 불황에 직면하게 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들의 정서와 불황을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2009년 소비트렌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키워드, 불황형 실존주의·분구필합
2008년이 불확실성의 한 해였다면 2009년은 불황의 해가 될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장은 2009년엔 ‘불황형 실존주의’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극심한 경기침체의 불안감 속에서 실존의 근원인 ‘자아’를 찾아가는 소비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실존적 자아 찾기는 급변하는 세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자아를 적응시키려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타인과 차별화하려는 노력으로, 자기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상황적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김 교수는 2009년을 10대 키워드의 첫 자를 모아 ‘빅 캐시 카우(BIG CASH COW)’로 정의했다. ‘캐시 카우(Cash Cow)’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부문을 말하는데 건강한 젖소는 정기적으로 우유를 생산하여 낙농농가에 꾸준한 현금 수입을 보장한다.
그는 필사적으로 능력을 계발하는 직장인들이 튜터십 세대, 리셋터, 샐러던트의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봤다. 리셋터는 게임기를 초기화하기 위해 리셋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이직이나 전직 등의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최근 소비자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찾아 즐기면서 자아를 확인하는 데 더욱 몰입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 앞에서도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취향을 더욱 고급화한다고. 이에 자아도취에 빠지는 셀프홀릭(self-holic)족, 여러 가지 자아를 뜻하는 멀티미(multi-me) 현상이 늘어나고, ‘디지털 호모나랜스(digital homonarrans)’처럼 소비자들이 인터넷상에서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며 전파해 나가는 경향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콘텐츠를 재구성하며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항상 ‘나’를 둔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2009년은 소비자의 일과에서 다양한 자아확인적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9 트렌드 키워드스펙을 높여라
셀프 홀릭 | 디지털코쿠닝 | 치유·느림의 미학, 힐링 | 소비의 극심한 양극화 | 추억의 재발견과 재구성 | 가족을 위한 소비 | 소비자들간의 이합집산
또한 그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 불안을 털어내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집처럼 안전한 공간에서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현상이 늘어날 거라고. 이에 각종 디지털 기기들을 집에 갖추고 쇼핑, 게임, 동우회 활동을 즐기는 ‘디지털 코쿠닝’에 주목했다. 과거 코쿤족이 실업이나 소극적 성격 때문에 사회와 단절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했다면, 신 ‘코쿤족’은 안전한 환경에서 안정을 취하고 육체적·정신적으로 재충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집에 머무른다. 이들은 외부 사회와의 연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집에서도 즐겁게 놀거나 자기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밖에도 스파·리조트·템플스테이·명상여행 등 치유상품(healing product)이 각광 받고, 계약직 등으로 1~2년간 잠시 일해 번 돈으로 다시 여행이나 취미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누리는 생활을 반복하는 프리커족(free+worker=freeker), 인생의 속도라도 조절하기 위해 자진 휴학·휴직·퇴직 등을 결심하는 세미 프리커(semi-freeker)족의 증가도 예측해 볼 수 있다. 또 경제적 여건이 나빠지면 소비자들은 옛 시절에 대한 향수와 기억을 사서 위안을 삼으려 하는 경향이 있어 추억산업(nostalgia industry)이 파생될 가능성도 높다.
한편, 박재항 제일기획 브랜드 마케팅 연구소장은 2009년의 키워드를 ‘분구필합( 分久必合)’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분(分)’은 메스티지(Masstige)의 퇴보, 1인 소비 양극화의 축소 등‘소비의 극심한 양극화’를 말한다. ‘구(久)’는 ‘추억의 재발견과 재구성’을 의미하는데 과거회귀형 상품이 등장하고, 맞춤형·스킨십 서비스 등이 뜰 거라고 예측했다. ‘필(必)’은 ‘한정된 필수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구매 전에 정보탐색에 무게를 둘 것이며 브랜드에 대한 의존도 증대할 거라고 말했다. ‘합(合)’은 ‘가족을 위한 소비’다. 묶음, 공동 구매, 퓨전형 제품의 수요가 증대되고 소비자들 간의 이합집산이 늘어날 거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불황이 예견된 대내외 환경이지만 불경기라고 무조건 매출이 줄어들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불황형 소비’가 떠오르고 소비자들의 소비가치와 기준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그동안 소외시됐던 ‘가족의 재조명’ 현상이 현저히 두드러질 것으로 예측했다. 문화·마케팅·광고 등 여러 영역에서 가족관계에 대한 향수가 늘어나 ‘가족’은 화두 중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옛날에 대한 향수도 짙어져 그에 관한 소비가 늘어날 거라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유한호 삼성경제연구원 마케팅전략실 실장은 “불황에는 실질소득은 줄지 않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이 알뜰해진다”며 “정부가 2% 성장을 예고한 만큼 소비자들의 지갑은 더 얇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희나 기자 (hnoh@ermedia.net)
인터뷰 |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장
2009년 소비트렌드를 한마디로 예측한다면. 자아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2009년에는 ‘자기 찾기’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샐러던트, 리셋터들과 스포추어, 디지털 코쿠닝 등도 자아 찾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자아가 중시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회적 권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사회경제적인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 불황인지, 호황인지, 가계가 얼마나 지출할 수 있는지가 트렌드에 가장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구학적 변화도 중요하다. 1인 가구의 등장, 노년 단독가구가 늘어남으로 인해 새로운 소비트렌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기술적인 진보도 중요한 요건이다. 휴대폰, 인터넷 등은 소비자의 수요로 인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의 수요와 맞아떨어지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2009년은 우리에게 어떤 한 해가 될까. 소처럼 뚜벅뚜벅 자기 일에 매진해야 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절대적 신뢰의 근원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매달리는 한 해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성취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과거 연봉을 많이 받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중요시됐다면 이제는 생활 속의 소소한 행복이 돋보이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불황에 대한 개인들의 대처방법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작은 만족들이 쌓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일상적인 행복, 개인의 취미생활이 모여 큰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 큰 것을 추구하려 했지만 이제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행복을 모아 불황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