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한-우크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출입기자단에게까지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한 채 단행한 전격적인 방문인만큼 그 배경과 영향에 관심이 집중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10분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관저인 마린스키 궁에서 공식 환영식을 갖고, 11시 20분부터 정상회담에 들어갔다. 윤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약 1시간 5분 동안 단독회담을 가진 뒤 확대회담까지 이어갔다.
정상 회담 후 양국 대통령은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 추진에 합의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의 인프라 건설 등에 있어 양국 간 협력사업을 신속히 발굴해 추진하겠다는 합의를 이루면서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한국 기업들의 참여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층 더 커졌다.
정상 회담에서는 앞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안보, 인도, 재정 등 3가지 지원 방식을 밝힌 가운데 ▲안보 분야에선 ‘평화공식 정상회의’ 개최와 방탄복과 헬맷 등 군수물자 지원 확대 ▲인도 지원에선 지뢰탐지기 등 안전잡이와 인도적 지원 물품 지원 확대 및 1억5000만달러의 지원 이행 ▲재건 분야에선 한국 재정당국이 배정한 1억달러 사업기금을 활용한 인프라 건설 등 협력사원 발굴 및 추진이 포함됐다.
특히 재건 분야에서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양국 정부와 기업 간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양국 정상은 지난 5월 양국 간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기본협정이 가서명된 것을 환영하고, 한국 재정당국이 이미 배정해 둔 1억달러의 사업기금을 활용해 인프라 건설 등 양국 간 협력사업을 신속히 발굴하고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외 양국 정상은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을 신설해 우크라이나 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키로 했다.
비밀리 전격 방문 결정…배경은?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은 지난 10~14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 및 폴란드 공식방문 기간 중 극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젤렌스카 여사가 전달한 친서,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계기로 개최된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 당시 윤 대통령에게 초청 의사를 지속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청 대상에는 김건희 여사도 포함됐다.
이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간 순방 준비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사실은 출입 기자들 뿐만 아니라 비서실 직원들에게도 막판까지 철통 보안을 유지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현재 전시 상황에서의 협력 문제, 그리고 향후 폴란드를 포함한 재건 과정에서의 협력 문제, 구체적으로 별도로 논의할 사항이 많이 식별돼서 이번에 회담이 필요하게 됐다” 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대국 정상이 정중하게 방문 초청을 하는 것은 지금 국제사회의 초미의 과제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대한민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깔려있는 것이고, 그것을 담은 요청이라고 받아들였다”며 “경호와 안전 문제, 방문 필요성 문제를 놓고 당연히 고심 끝에 입장을 정하고 대통령께서 결심하셔서 방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재건협력 기대감↑

윤석열 대통령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하면서 재건사업 협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재건 사업 참여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발표되진 않았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고 비밀리에 추진된 이번 방문을 통해 국제사회에 우리 정부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외교를 확고히 알리는 동시에 향후 펼쳐질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우리 기업들의 활발한 참여를 위한 중요 포석이 될 전망이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재건사업의 협력 거버넌스 구축 ▲정부 지원이 시급한 분야에 파일럿 사업 적극 추진 ▲민간 주도 사업에 대해 맞춤형 지원 추진 등의 방향으로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접근하고 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의 핵심 거점으로 꼽히는 폴란드와 함께 삼각 협력체계를 갖춰 본격적으로 재건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윤 대통령은 폴란드를 순방중이던 13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한-폴란드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재건을 지원하기 위한 양국의 협업 강화와 공공·민간 기업들의 교류·협력활동 장려·촉진 등이 주요 내용이다.
우선 우리나라와 폴란드가 맺은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MOU에 따라 고위급 협의체가 구성된다.
최 수석은 "9월부터 한-폴란드 차관급 협의체를 구성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사업을 발굴·추진하기로 했다"며 "지난 5월 국토부와 우크라이나 인프라부 간에 동일한 내용의 MOU를 체결한 바 있으므로 사실상 대한민국, 폴란드, 우크라이나 정부 간에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의 3각 협력체계가 완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의 규모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최 수석은 "우크라이나는 지난 5월 정부 간 협력 창구를 통해 200억 불 규모, 5000여 개 재건 프로젝트 등에 대해 우리 기업의 참여를 요청한 바 있다"며 "우리 정부는 학교·주택·병원 등 긴급시설 복구를 위해 모듈러 건축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최 수석은 이어 "우선 ODA(공적개발원조) 자금 등을 활용해 후보지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파괴된 카호우카 댐에 대해서도 이미 시행한 인도적 지원과 더불어 수자원 인프라 재건 기술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폴란드 순방중 건설, 에너지, 수자원, IT, 철도차량, 건설기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 기업인들과의 간담회를 열고 현재 우크라이나의 사업 여건 및 기업별 진출 전략 등을 전하는 한편, 사업 추진상 애로사항을 서로 공유하고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현대건설 윤영준 사장은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아미랄 프로젝트 수주에 정상 외교가 큰 도움이 됐다”고 하면서 “300억 불 규모의 우크라이나 소형모듈원전(SMR) 시장 진출과 공항 재건 등 사업 참여를 추진 중인데 현지 입국 제한 완화와 주폴란드 한국대사관에 인프라 전담인력 보강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유신엔지니어링 박석성 대표는 “단순 인프라 복구 차원을 넘어 우크라이나 현지 회사와 MOU를 체결해 ITS 지능형 교통체계 등 첨단시스템 구축 사업 진출을 추진 중"이라며 "공적개발원조(ODA) 확대 등을 통한 마중물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이버 채선주 대표는 “우크라이나는 단순히 전쟁 피해 복구를 넘어 국가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추진 중이므로, 도시 인프라에 대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업 참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오롱글로벌 김정일 사장은 “전쟁으로 파괴된 상하수도 복구사업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 현지 네트워크가 없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팀 코리아’에 참여한 이후 현지 기업들로부터 입찰 참여 제안을 받고 있는 만큼, 우크라이나 진출에도 정부와 기업 간 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수자원공사 윤석대 사장은 “카호우카 댐 파괴 이후 위성 영상 분석 등을 통해 전면적 재건설 없이 파괴지점의 복구만으로 댐의 재건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우크라이나에 기술 지원을 할 계획”이라면서 “시급한 식수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로템 이용배 사장은 “우크라이나에 2012년 전동차 90량을 공급하고, 전쟁 중에도 유지 보수 업무를 진행하여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으며, 신뢰를 바탕으로 추가 수주에 나설 계획”이라면서 “현재 2~3년인 EDCF 지원 절차를 단축해 달라”고 건의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조영철 사장은 “현재 우크라이나 건설기계의 30%를 점유하고 있으며, 향후 40~50%까지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건설사 등과 패키지 수주를 추진 중이며, 재건사업 참여를 위한 수출금융 지원이 지금보다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LH 이한준 사장은 “민간기업과 협력하여 도시 재건 마스터플랜 수립, 산업단지 조성 등에 참여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해외건설협회 박선호 회장은 “한국-우크라이나-폴란드 정부 간 협력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 해외건설협회-폴란드 건설협회-우크라이나 건설협회 간 MOU를 오늘 체결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글로벌 플랫폼에 참여를 확대하고 한-우 양자 간 협의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상 간에 완성된 한국-폴란드-우크라이나 3각체계를 각료급-실무급까지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에 있어 금융 지원이 중요하므로 다른 재건 사례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의 금융 지원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재건사업 참여 경험이 부족한 기업들이 알기 쉽도록 파이낸싱 메커니즘을 정리하여 기업에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 부처에 “안전을 고려하면서 기업들이 현지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